국채 발행으로 추경 예산 마련…연말 나랏빚 580조 넘어설 듯
저성장·저물가 기조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부가 결국 빚을 택했다.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불러온 예기치 못한 경기 충격으로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지만, 이로 인해 재정건전성이 나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해 말 570조원 규모로 예상됐던 국가채무는 추경 편성 이후 580조원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지난해 35.7%에서 36∼37%대로 뛰게 된다.
◇ 적자국채 발행으로 추경 재원 마련할 듯
정부는 25일 추경 편성과 각종 기금, 정책금융 등을 활용한 15조원대 이상의 재정을 투입해 경기 보강에 나서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확한 추경 규모는 예산을 어떤 사업에 쓸지 확정해 새누리당과의 협의를 거쳐 내달 초쯤 결정될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편성하는 추경 예산 대부분은 ‘적자 국채(세입 부족을 메우기 위한 국채)’ 발행으로 마련될 가능성이 크다.
기획재정부가 최근 공개한 ‘월간 재정동향 6월호’를 보면 1∼4월 정부의 누계 총수입은 132조8천억원, 총지출은 141조9천억원이었다.
순수입에서 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가 9조원 적자다. 국민연금·고용보험기금 등 미래 지출을 위한 사회보장성기금을 제외한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22조1천억원으로 나타났다.
세수도 부족하다. ‘세수 펑크’는 2012년 2조8천억원, 2013년 8조6천억원, 지난해 10조9천억원으로 3년 연속 이어졌다.
올해도 정부는 5조원, 민간 경제연구기관은 6조∼8조원 정도의 세입 결손이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정부가 추경 편성을 위해 빚을 내지 않고 끌어올 수 있는 자금이 그만큼 없다는 얘기다.
정부는 2008년까지만 해도 추경 재원으로 전년도에 쓰고 남은 돈인 세계잉여금이나 한국은행 잉여금을 주로 사용했다. 경제성장률이 높은데다 세금도 예상보다 더 걷혔기 때문이다. 추경을 편성하더라도 재정건전성이 나빠질 우려가 크지 않았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상황은 달라졌다. 세수 부족으로 세계잉여금이 쪼그라들어 국채를 발행하지 않으면 추경 재원을 마련하기가 어려워졌다.
2009년 28조4천억원의 ‘슈퍼 추경’을 편성할 때도 55%였던 국채 충당 비중은 2013년 추경 편성(17조3천억원) 때 93%로 급증했다.
◇ 정부 “단기적 재정건전성 악화 불가피”
정부도 추경 편성 이후 단기적으로 재정건전성이 악화되는 것은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있다.
기재부의 ‘2014~2018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지난해 말 530조5천억원(잠정)이었던 국가채무는 올해 말 570조1천억원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추경 편성을 고려하면 올 연말 국가채무는 580조원 이상으로 불어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그러나 추경 예산이 ‘마중물’이 돼 경제가 살아난다면 중장기적으로는 재정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은 선진국과 비교해 양호한 편이기 때문에 재정을 좀 더 확대할 여력이 있다는 의견도 있다.
2013년 기준 한국의 일반정부 부채(중앙·지방정부 부채와 비영리 공공기관 부채를 합친 것)는 GDP의 39.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110.9%보다 훨씬 낮았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은 “추경 편성 효과가 크면 세수도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에 재정건정성 악화 우려가 완화될 수 있다”며 “지금 수준의 나랏빚은 우리 경내가 감내할만한 범위”라고 말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도 지난 15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추경 편성에 따른 재정건전성 악화 우려에 대해 “우리나라는 재정건전성이 세계에서 가장 양호한 국가 중 하나”라며 “단기보다는 중장기적 재정건전성을 보고 재정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는 게 각국의 방식”이라고 말했다.
◇ 복지수요 증가 속 나랏빚 ‘눈덩이’
그러나 복지를 위한 재정 소요가 급격히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지금처럼 ‘만성적 추경’이 편성된다면 한국의 재정건전성이 빠르게 악화될 것이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한국 경제는 수출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국가채무가 늘면 대외 신인도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적절한 관리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1990년대 적극적 재정정책, 소극적 통화정책을 쓰다가 ‘잃어버린 20년’을 맞은 일본의 전철을 밟으면 안 된다는 목소리가 크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관리재정수지 적자가 GDP의 3%를 넘어서면 적자 폭을 단기간에 줄이기 어려워질 수 있다”며 “정부가 재정적자 축소 방안, 세입 확대 방안을 함께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재정건전성 판단 기준인 관리재정수지는 지난해 29조5천억원 적자를 봐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43조2천억원) 이후 적자 폭이 가장 컸다. GDP 대비로는 -2.0%였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연구실장은 “재정정책으로 늘린 부채는 결국 미래 세대가 부담하게 되기 때문에 지금은 재정 확대보다는 통화정책을 적극적으로 쓰는 게 바람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내년도 국고보조금 사업 수를 10% 삭감하는 등 각 부처와 지방정부에 긴축 예산을 요구한 상황에서 추경 카드를 꺼내는 것은 ‘엇박자’라는 지적도 일각에서 나온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