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고갈론 득세 땐 ‘재정 건전성’ 우선
여야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40%에서 50%로 올리기로 합의하면서 공적연금의 노후소득 보장을 강화하는 게 우선인지 지금도 고갈우려에 시달리는 국민연금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는 게 먼저인지를 두고 사회적 논쟁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여야는 6일 본회의를 열어 공무원연금 개혁안과 동시에 공적연금 강화와 노후빈곤 해소를 위한 사회적 기구 구성안을 통과시키고 이 사회적 기구에서 도출한 단일안 또는 복수안을 검토하고 나서 9월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했다.
이 과정에서 2천100만명이 가입한 국민연금의 개편방향을 놓고 백가쟁명의 논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가장 치열하게 부딪힐 쟁점은 현 세대의 노후빈곤을 해결하고자 국민연금의 노후 소득보장 기능을 끌어올릴 것인지, 아니면 미래세대의 부담을 덜어주고 국민연금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재정안정에 방점을 찍을 것인지로 모인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1997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국민연금 개혁을 단행했다. 개혁논의 때마다 ‘연금기금 고갈론’이 압도하며 저소득층 지원 등 다른 쟁점을 집어삼켰다.
연금기금이 머지않은 시기에 바닥을 드러내고 국민연금 제도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국민 전반에 퍼지면서 국민의 최소한 노후 소득보장이란 연금제도 본래의 취지는 뒤로 밀렸다.
국민연금 장기 재정추계에 따르면 현재 약 500조원 규모인 연금기금은 2043년 2천561조원으로 불어나 정점을 찍고서 2044년부터 빠르게 소진돼 2060년에는 고갈될 것으로 추산된다.
이 때문에 개혁논의 방향은 연금제도의 존속을 위해서는 노후에 받는 수령액을 깎든지, 수급시기를 뒤로 늦추든지 하는 등 국민연금 노후보장기능을 약화하는 쪽으로 흘러갔다. 그 결과, 1997년 1차 연금개혁 때 소득대체율은 70%에서 60%로 떨어졌다. 2008년 2차 개혁 때는 소득대체율을 60%에서 2009년 50%로 떨어뜨린 데 이어 이후 해마다 0.5%포인트씩 낮춰 2028년에는 40%가 되도록 했다.
연금수급 연령도 60세에서 단계적으로 65세로 늦춰졌다.
현행 9%인 보험료율을 올리는 방안도 나오긴 했다. 그러나 연금 보험료 인상에 대한 국민저항과 거부감을 의식해 감히 추진 못 하고 흐지부지됐다.
이처럼 기금고갈론이 우세했던 데는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제도가 아직 무르익지 않다 보니 연금제도의 혜택을 받는 수급자도 적어 노후소득 장치로서 국민연금의 필요성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국민이 많았던 게 한몫했다.
국민연금이 시행되고서 26년이 지난 작년 말 기준 가입자는 2천112만5천135명이다. 하지만 노령연금, 장애연금, 유족연금 등의 연금을 받는 수급자 374만8천130명에 그친다. 가입자가 수급자보다 월등히 많다.
게다가 수급액수도 적다. 20년 이상 가입한 노령연금 수급자는 14만2천128명으로 이들의 월 평균 수령액은 86만9천800원에 불과했다. 그만큼 국민연금을 체감하는 사람이 아직은 드물다는 말이다.
그러나 국민연금 제도의 성숙과 함께 곧 대규모로 은퇴대열에 합류할 베이비붐 세대를 포함해 인구의 급격한 고령화로 수급자는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
국민연금연구원 신승희 재정추계분석실 전문연구원은 출산율 저하와 기대수명 연장에 따른 고령화로 국민연금 가입자는 점차 감소하는데 수급자는 꾸준히 증가해 2060년에는 노령연금 수급자가 가입자를 앞지를 것으로 전망했다.
유럽의 연금선진국처럼 국민연금에 전적으로 노후를 기대 생활하는 노인이 많아진다는 말이다.
이처럼 국민연금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끼는 노인이 증가하면서 재정안정론에 치우쳤던 사회 분위기가 노후소득보장과 노후빈곤 해결 쪽으로 조금씩 옮겨가고 있다.
여야 정치권이 국민연금과는 직접 관련없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만들면서 이번에 국민연금의 명목소득대체율을 올리기로 전격 합의한 것도 이런 사회 변화를 의식한 결과로 풀이된다.
당장 참여연대는 국민의 노후소득보장을 위한 국가의 바람직한 결정이라며 여야의 공적연금 강화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에 적극적인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참여연대는 지난 3일 성명에서 “그간 소득대체율을 축소하는데만 주력해오던 정치권이 우리나라 국민의 노후빈곤실태를 고려해 소득대체율 상향에 동의한 것은 한국판 사회적 타협의 최초 시도로 ‘역사적 사건’”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현재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겨우 최저 생계비를 겨우 웃돌 수준으로 턱없이 낮다. 40년간 국민연금에 가입해도 노후에 받을 수 있는 연금액은 수급자의 가입기간 생애 평균소득의 40%에 불과하다.
기업구조조정에 따른 실직과 조기 퇴직 등으로 직장인이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기간이 평균 20년 안팎에 머무는 현실을 고려하면 실제 연금액은 명목소득대체율의 절반밖에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명목상 약속한 국민연금 액수조차 다 받지 못하고 반 토막이 날 수 있다는 말이다.
노후소득의 최후 보루인 국민연금이 부실한 상황에서 우리나라 국민의 노후 생활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34개국의 평균 노인 빈곤율은 2007년 15.1%에서 2010년 12.8%로 2.3%포인트 줄었지만,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2007년 44.6%에서 2011년 47.2%로 2.6%포인트 증가했다. OECD 회원국 중 1위다.
이에 따라 여야 정치권이 곧 띄울 사회적 기구에서 국민연금의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면서 노후소득보장 기능을 강화하는 묘수를 도출해 낼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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