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국 관계 표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독도 문제로 촉발된 한일 관계 악화가 결국 한일 통화스와프 확대조치의 계약 종료로 귀결됐다.정부는 ‘순수한 경제적 결정’이라고 설명했지만 국민 정서를 감안한 정무적인 판단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이번 조치로 우리 금융ㆍ외환시장에 별다른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경제적 관점을 떠나 독도 문제로 불편한 양국 관계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표류할 가능성도 있다.
◇”금융ㆍ외환시장 안정돼 통화스와프 확대 종료”
기획재정부와 한은, 일본 재무성과 일본은행은 9일 공동 발표문을 통해 “한일 양국 간 통화 스와프 계약 규모를 일시적으로 확대하기로 한 조치를 예정대로 만기일인 10월 31일에 종료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통화스와프 연장 문제가 불거진 지난 8월15일 광복절 이후 두달 만에 종료로 결론이 났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에 후지무라 오사무(藤村修) 일본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에서 한일 통화스와프 협정의 재검토와 관련한 질문에 다양한 검토가 있을 수 있다며 연장 종료 분위기를 흘렸다.
이어 일본 측은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한국의 요청이 없을 경우 확대조치를 연장하지 않겠다’며 한-일 통화스와프 연장문제를 두고 한국을 압박하는 자세를 취했다.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 “재무성으로부터 공식 통보를 받지도 않았다”며 구체적인 언급을 꺼려왔다.
정부는 이날 한-일 통화스와프 확대조치를 종료하기로 한 것은 “순수한 경제적 관점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종구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정부과천청사에서 긴급 기자 간담회를 열고 “현재 금융ㆍ외환시장이 모두 안정되고 거시경제 상황과 전망도 매우 견고하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가 일본 측에 통화스와프 연장을 요청하지도 않았다고도 했다.
실제 대외 신인도 지표를 보면 우리나라의 대외 건전성은 1년 전보다 나아졌다.
부도 위험을 보여주는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지난해 10월말 137bp(1bp=0.01%포인트)에서 지난 5일 83bp로, 일본과 비슷한 수준까지 내려갔다.
외평채가산금리도 같은 기간 121bp에서 61bp로 떨어졌다. 외평채가산금리는 국제금융시장에서 유통되는 한국 정부 채권의 수익률로 미국 재무부 채권에 대한 가산금리로 표기되며 신인도가 개선될수록 낮아진다.
단기 외채 비중도 지난해 10월말 35.4%에서 올해 6월말 33.8%로 줄었다.
게다가 8~9월 3대 국제 신용평가사가 일제히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해 대외 건전성에 대한 자신감을 한층 높였다.
하지만 국민 정서를 고려해 ‘굴욕’을 피하려는 정무적 판단이 개입됐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긴 어렵다.
정부의 말대로 ‘순수한 경제적 관점’에서의 결정이라면 두달 가까이 침묵 속에서 장고(長考)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판단의 바탕이 되는 우리 경제 여건이 두달 사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8월말 9월초에 신용등급 상향조정이란 호재만 있었을 뿐이다. 이때 ‘당당하게’ 종료를 선언할 수도 있었다.
확대조치의 만기가 가까운 이날에서야 비로소 결론을 내린 것은 일본의 압박에 굴복하는 모양새를 피하면서 일본에 대한 외교적 배려도 감안해 적절한 시기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주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에서 양국 재무장관의 만남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사전에 양국 공동발표 형식으로 매듭을 지어 장관급 회담에서 결정이란 정치적 부담을 던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 “오히려 도움 될 수도”…외환시장·한일관계 우려도
이번 계약 종료로 달러 300억달러와 엔화 270억달러 상당 등 총 570억 달러 규모의 통화 스와프 라인이 사라지게 됐다. 우리가 현재 보유한 ‘외화 파이프라인’ 1천644억달러 중에 35%에 해당한다.
다음달부터는 560억달러(64조원-3천600억위안) 상당의 한중 통화 스와프,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CMIM) 기금 중 인출 가능액 384억달러, 한일 간에 남은 통화 스와프 130억달러 등 1천74억달러 가량이 남는다.
그럼에도 정부는 외환시장을 포함한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없을 것으로 봤다. 외화보유액이 역대 최고 수준인 3천220억달러나 되는데다 남은 스와프 자금이 충분하고 거시건정성도 안정됐다는 이유를 들었다.
CDS프리미엄은 일본 수준으로 좋아졌다. 지난 5~10월 외국인 주식 순매수 규모는 15조5천억원이나 된다. 이 때문에 국내 외환시장에서는 달러가 넘쳐나 원ㆍ달러 환율이 1,100원선 붕괴가 임박할 정도로 원화가 강세다.
최 차관보는 “특단의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 한 과거처럼 외환시장에서 변동성이 확대할 가능성은 작다고 본다”고 평가했다.
그는 “연장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도움되는 면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신용등급 상승과 거시 건전성 안정, 선진국의 양적 완화에 따라 고민거리가 된 대규모 자본 유입 우려를 줄일 수 있는 만큼 호재가 될 수도 있다는 평가로 보인다.
그러나 메가톤급 위기에 직면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한중 스와프는 원·위안 교환이고 CMIM의 대부분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는 상황에서나 끌어다 쓸 수 있는 돈이다. 달러 가뭄이 생기면 한일 스와프 중 원/엔·달러로 체결된 300억달러가 간절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위기 상황에선 일본과의 스와프 라인을 다시 틀 가능성도 있다. 양국 발표는 “향후 양국 및 세계 경제 여건을 예의주시하면서 필요 시 적절한 방법으로 협력해나가기로 의견을 같이 했다”며 ‘적절한 방법’의 협력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와프 확대조치의 이번 종료는 불편한 양국 관계를 대치상태로 몰아갈 가능성이 있다. 일련의 일본 측 조치가 갖는 방향성에서 양국 경제협력에 걸림돌을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은 이미 한·중·일 상호 국채투자 확대 결정에 따라 연내 한국 국채를 사들이기로 했던 방침을 지난 8월 유보한 바 있다. 이 유보조치가 외국인의 국내 채권투자 급증세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 내부에서 반기는 분위기도 있지만 독도사태에 대한 사실상의 보복 조치로 여겨진다.
이 때문에 양국 경제부처 간에도 당분간 서먹해진 관계를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동북아 경제협력의 틀이 3국 간 균형을 이루지 못한 채 한중 쪽으로 쏠림현상이 나타날 수 있어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에 따라 11일 도쿄에서 열리는 한일 재무장관 간 양자회담은 불편해진 관계를 연착륙시키는 계기가 될지 주목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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