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5년에서 3년 아니 2년으로 점차 짧아지는 요즘.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대학로에서 50년 넘게 자리 한 번 바꾸지 않고 옛 모습을 지키고 있는 곳이 있다. 70~80년대 젊은이들의 근거지이자 문화의 산실인 학림다방이다.
몇 차례 주인이 바뀌고 대학로의 그 대학이 자리를 옮긴 지도 오래건만, 학림만은 굳건하다.
Since 1956 학림. 건물 입구 간판에서 학림다방의 역사를 읽는다. 흰색과 녹색이 깔끔하게 조화를 이룬 커다란 간판엔 다방이란 말 대신 커피(coffee)를 붙여놔 최근 만들어진 듯 보이지만 학림다방은 무려 5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1956년 처음 문을 연 뒤 반세기가 넘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자리를 지키며 많은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학림은 이곳 대학로에서 유일하게 옛 모습을 지키고 있는 낭만의 장소다. 화려한 대학로의 분위기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70~80년대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
학림다방, 추억과의 재회
학림의 역사성은 입구에서부터 시작된다. 수없이 드나들던 사람들이 찍어놓은 발자국이 쌓이고 쌓여 거뭇한 나무계단. 그 계단 끝에 자리한 학림으로 향하는 길은, 실제로는 나지 않지만 한 발씩 뗄 때마다 삐거덕 소리가 날 것처럼 오래돼 보인다. 어디 그뿐이랴. 계단을 다 올라 문을 열면 시대극에나 나올 법한 풍경이 펼쳐진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복층식 실내구조. 친구들과 모여앉아 무언가를 모의하고 토론하기에는 딱인 구석자리가 많다. 곳곳엔 긁힌 흔적이 있는 나무탁자와 쿠션감 없는 빛바랜 의자가 조용하게 흐르는 클래식 선율에 감싸인 채 놓여 있고, 진한 갈색 톤의 어두운 실내는 공간 스스로 추억을 음미하는 듯 아스라하다. 베토벤 두상과 유명 음악가들의 연주 모습을 담은 사진, 그리고 벽 한쪽을 촘촘히 채우고 있는 LP판 등등, 계란 동동 띄운 모닝커피라도 팔 것 같은 그야말로 옛날식 음악다방의 모습이다.
이런 학림의 모습이 번쩍거리고 화려한 곳에 익숙한 이들에겐 다소 촌스럽게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낡은 탁자에 기대어 앉아 커피 향과 어우러지는 클래식음악을 들으며 넓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대학로의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오래된 공간이 주는 포근함에 취해 묘한 향수에 젖게 된다. 그 때문에 옛 추억을 찾아오는 중장년층도 많지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이들은 대부분 20~30대 젊은이들이다. 설탕과 프림 듬뿍 든 다방커피의 과거와 신선한 원두커피의 현재가 공존하는 학림은, 7080세대가 아니어도 추억이 서려 있지 않아도 찾게 되는 마력이 있는 추억의 명소이자 세대 간의 소통의 장소가 되고 있다.
7080세대의 문화의 산실
지금은 관악산 기슭으로 옮겨진 옛 서울대 캠퍼스 앞(현재의 마로니에 공원)에 문을 연 학림은 서울대생들의 단골 다방이었다. 오죽하면 서울대 문리대 학생들 사이에서 ‘제25강의실’이라 불렸고, 문리대의 옛 축제명 학림제란 이름이 학림다방에서 유래되었을까. 당시 위치적으로 가까워 서울대생들이 많이 드나들었지만, 학림은 그 시절 대학로 일대의 젊은이들이 공유하던 문화공간이었다.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를 외치던 대학생들, 즉 오늘날 7080세대는 그러한 현실 속에서도 통기타와 다방 같은 낭만의 문화를 잃지 않고 향유했다. 그 시절 학림은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학생들의 토론장이자, 커피 한 잔을 놓고 음악과 문학과 사랑을 논하던 젊은이들의 낭만의 공간이었다. 당시 학림을 드나들며 젊은 날을 보냈던 이들은 소설가 김승옥·박태순, 시인 김지하·황지우·김정환, 가수 김민기, 작곡가 김영동, 미술평론가 유홍준, 지금은 고인이 된 소설가 이청준과 시인 천상병 그리고 수필가 전혜린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자유와 낭만에 목말라하던 젊은이들의 거리 대학로에서, 학림은 그들만큼이나 뜨거웠던 한 시대를 보냈고, 아직도 그 자리에서 지금은 중년이 된 그때의 젊은이들을 맞이하고 있다.
2001년 4월 학림을 찾은 시인 김지하는 “학림시절은 내겐 잃어버린 사랑과 실패한 혁명의 쓰라린 후유증, 그러나 로망스였다”는 글을 낙서장에 남겼다. 전화번호부 두 권 분량의 두께를 가진 학림의 20년 된 낡은 낙서장에는 추억을 찾아 온 이들의 메모가 빼곡하다. 조심스레 종이를 넘기며 찬찬히 낙서를 읽다보면, 당시 젊은이들에게 학림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알 수 있다. 반세기 넘는 시간 같은 자리를 지켰기에, 20년이 지난 다음에도 장성한 아들과 함께 찾아 와 자신의 젊은 시절 향유했던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곳. 그렇기에 오랜 프랑스 망명생활 끝에 귀국한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의 저자 홍세화 씨는 낙서장에 이런 말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학림 이름은 안 잊었노라. 1999. 6. 14. 서울 학림에서 홍세화. 반갑구나, 학림!”
클래식만을 고집해 온 음악다방
소설가 김승옥이 <볼레로>를 청해 들으며 슬피 울고, 시인 김정환이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만 신청해 들어서 ‘황태자’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곳, 학림다방. 이곳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학림은 50여 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것 같이 쭉 클래식만을 고집해 온 음악다방이다. 마땅히 갈 곳도 없고, 오디오가 귀한 가난했던 그 시절. 다방은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종일 앉아 있을 수 있는 젊은이들의 사랑방이었다. 예전에는 DJ가 앉아 신청곡을 틀어주었을 음악박스는 지금은 계산대로 변해 있다.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들을 수 있는 베토벤, 슈베르트 등 클래식음악의 선율은, 다방커피가 원두커피로 대체되었듯 LP판에서 CD로 바뀌어 다방 벽을 타고 맑게 흘러내린다. 변한 세월 탓에 이제는 장식용일 때가 더 많은 턴테이블과 70~80년대를 수놓던 1,500여 장의 클래식 LP판들은 조용히 제자리에서 학림의 음악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비록 학림의 역사 때문에 옛날식 다방에 대한 환상을 품고 찾아와 다방커피도 없고, 턴테이블 위에서 지지직거리며 흐르는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아 실망스러운 마음이 든다 해도, 추억을 반추하게 하는 많은 것들이 도사리고 있는 학림은, 한 잔의 커피를 다 마실 때쯤 그 실망감도 비우게 해준다.
프랑스 파리의 생제르맹 거리는 서울의 대학로와 비슷한 문화의 거리다. 대학로에 50년 역사의 학림다방이 있다면 생제르맹 거리에는 100년 전통의 ‘카페 드 플로르(Cafe de Flore)’가 있다. 사르트르와 보봐르, 알베르 카뮈, 자크 프레베르 등이 자주 찾았던 이곳은 파리 여행자들에게 추천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혁명과 문학과 진실한 사랑을 나누던 수많은 예술인들의 향기가 서린 학림다방. 이곳도 카페 드 플로르처럼 100년 전통의 역사를 써내려가는 다방으로 남아, 역사와 함께 더욱 빛나는 우리의 자산이 되길 바란다.
글·사진 최수진 프리랜서 기자
유행의 첨단을 달리는 대학로에서 50년 넘게 자리 한 번 바꾸지 않고 옛 모습을 지키고 있는 곳이 있다. 70~80년대 젊은이들의 근거지이자 문화의 산실인 학림다방이다.
몇 차례 주인이 바뀌고 대학로의 그 대학이 자리를 옮긴 지도 오래건만, 학림만은 굳건하다.
Since 1956 학림. 건물 입구 간판에서 학림다방의 역사를 읽는다. 흰색과 녹색이 깔끔하게 조화를 이룬 커다란 간판엔 다방이란 말 대신 커피(coffee)를 붙여놔 최근 만들어진 듯 보이지만 학림다방은 무려 5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1956년 처음 문을 연 뒤 반세기가 넘은 지금에 이르기까지 한자리를 지키며 많은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학림은 이곳 대학로에서 유일하게 옛 모습을 지키고 있는 낭만의 장소다. 화려한 대학로의 분위기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70~80년대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
학림다방, 추억과의 재회
학림의 역사성은 입구에서부터 시작된다. 수없이 드나들던 사람들이 찍어놓은 발자국이 쌓이고 쌓여 거뭇한 나무계단. 그 계단 끝에 자리한 학림으로 향하는 길은, 실제로는 나지 않지만 한 발씩 뗄 때마다 삐거덕 소리가 날 것처럼 오래돼 보인다. 어디 그뿐이랴. 계단을 다 올라 문을 열면 시대극에나 나올 법한 풍경이 펼쳐진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복층식 실내구조. 친구들과 모여앉아 무언가를 모의하고 토론하기에는 딱인 구석자리가 많다. 곳곳엔 긁힌 흔적이 있는 나무탁자와 쿠션감 없는 빛바랜 의자가 조용하게 흐르는 클래식 선율에 감싸인 채 놓여 있고, 진한 갈색 톤의 어두운 실내는 공간 스스로 추억을 음미하는 듯 아스라하다. 베토벤 두상과 유명 음악가들의 연주 모습을 담은 사진, 그리고 벽 한쪽을 촘촘히 채우고 있는 LP판 등등, 계란 동동 띄운 모닝커피라도 팔 것 같은 그야말로 옛날식 음악다방의 모습이다.
이런 학림의 모습이 번쩍거리고 화려한 곳에 익숙한 이들에겐 다소 촌스럽게 여겨질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낡은 탁자에 기대어 앉아 커피 향과 어우러지는 클래식음악을 들으며 넓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대학로의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오래된 공간이 주는 포근함에 취해 묘한 향수에 젖게 된다. 그 때문에 옛 추억을 찾아오는 중장년층도 많지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는 이들은 대부분 20~30대 젊은이들이다. 설탕과 프림 듬뿍 든 다방커피의 과거와 신선한 원두커피의 현재가 공존하는 학림은, 7080세대가 아니어도 추억이 서려 있지 않아도 찾게 되는 마력이 있는 추억의 명소이자 세대 간의 소통의 장소가 되고 있다.
7080세대의 문화의 산실
지금은 관악산 기슭으로 옮겨진 옛 서울대 캠퍼스 앞(현재의 마로니에 공원)에 문을 연 학림은 서울대생들의 단골 다방이었다. 오죽하면 서울대 문리대 학생들 사이에서 ‘제25강의실’이라 불렸고, 문리대의 옛 축제명 학림제란 이름이 학림다방에서 유래되었을까. 당시 위치적으로 가까워 서울대생들이 많이 드나들었지만, 학림은 그 시절 대학로 일대의 젊은이들이 공유하던 문화공간이었다.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를 외치던 대학생들, 즉 오늘날 7080세대는 그러한 현실 속에서도 통기타와 다방 같은 낭만의 문화를 잃지 않고 향유했다. 그 시절 학림은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던 학생들의 토론장이자, 커피 한 잔을 놓고 음악과 문학과 사랑을 논하던 젊은이들의 낭만의 공간이었다. 당시 학림을 드나들며 젊은 날을 보냈던 이들은 소설가 김승옥·박태순, 시인 김지하·황지우·김정환, 가수 김민기, 작곡가 김영동, 미술평론가 유홍준, 지금은 고인이 된 소설가 이청준과 시인 천상병 그리고 수필가 전혜린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다. 자유와 낭만에 목말라하던 젊은이들의 거리 대학로에서, 학림은 그들만큼이나 뜨거웠던 한 시대를 보냈고, 아직도 그 자리에서 지금은 중년이 된 그때의 젊은이들을 맞이하고 있다.
2001년 4월 학림을 찾은 시인 김지하는 “학림시절은 내겐 잃어버린 사랑과 실패한 혁명의 쓰라린 후유증, 그러나 로망스였다”는 글을 낙서장에 남겼다. 전화번호부 두 권 분량의 두께를 가진 학림의 20년 된 낡은 낙서장에는 추억을 찾아 온 이들의 메모가 빼곡하다. 조심스레 종이를 넘기며 찬찬히 낙서를 읽다보면, 당시 젊은이들에게 학림이 어떤 존재였는지를 알 수 있다. 반세기 넘는 시간 같은 자리를 지켰기에, 20년이 지난 다음에도 장성한 아들과 함께 찾아 와 자신의 젊은 시절 향유했던 문화를 보여줄 수 있는 곳. 그렇기에 오랜 프랑스 망명생활 끝에 귀국한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의 저자 홍세화 씨는 낙서장에 이런 말을 남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학림 이름은 안 잊었노라. 1999. 6. 14. 서울 학림에서 홍세화. 반갑구나, 학림!”
클래식만을 고집해 온 음악다방
소설가 김승옥이 <볼레로>를 청해 들으며 슬피 울고, 시인 김정환이 하루 종일 죽치고 앉아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만 신청해 들어서 ‘황태자’라는 별명을 얻었다는 곳, 학림다방. 이곳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학림은 50여 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것 같이 쭉 클래식만을 고집해 온 음악다방이다. 마땅히 갈 곳도 없고, 오디오가 귀한 가난했던 그 시절. 다방은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종일 앉아 있을 수 있는 젊은이들의 사랑방이었다. 예전에는 DJ가 앉아 신청곡을 틀어주었을 음악박스는 지금은 계산대로 변해 있다.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들을 수 있는 베토벤, 슈베르트 등 클래식음악의 선율은, 다방커피가 원두커피로 대체되었듯 LP판에서 CD로 바뀌어 다방 벽을 타고 맑게 흘러내린다. 변한 세월 탓에 이제는 장식용일 때가 더 많은 턴테이블과 70~80년대를 수놓던 1,500여 장의 클래식 LP판들은 조용히 제자리에서 학림의 음악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비록 학림의 역사 때문에 옛날식 다방에 대한 환상을 품고 찾아와 다방커피도 없고, 턴테이블 위에서 지지직거리며 흐르는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아 실망스러운 마음이 든다 해도, 추억을 반추하게 하는 많은 것들이 도사리고 있는 학림은, 한 잔의 커피를 다 마실 때쯤 그 실망감도 비우게 해준다.
프랑스 파리의 생제르맹 거리는 서울의 대학로와 비슷한 문화의 거리다. 대학로에 50년 역사의 학림다방이 있다면 생제르맹 거리에는 100년 전통의 ‘카페 드 플로르(Cafe de Flore)’가 있다. 사르트르와 보봐르, 알베르 카뮈, 자크 프레베르 등이 자주 찾았던 이곳은 파리 여행자들에게 추천되는 곳으로 유명하다. 혁명과 문학과 진실한 사랑을 나누던 수많은 예술인들의 향기가 서린 학림다방. 이곳도 카페 드 플로르처럼 100년 전통의 역사를 써내려가는 다방으로 남아, 역사와 함께 더욱 빛나는 우리의 자산이 되길 바란다.
글·사진 최수진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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