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 ‘버그’로 몇 수 둔 듯… 5국선 어려운 흑돌로 이겼으면”

“알파고, ‘버그’로 몇 수 둔 듯… 5국선 어려운 흑돌로 이겼으면”

김민수 기자
입력 2016-03-13 23:04
수정 2016-03-14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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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승’ 이세돌 9단 인터뷰

“알파고, 백보다 흑 더 어려워해… 정보 비대칭 아닌 내 능력 부족
3연패 충격, 없지는 않았지만 즐겁게 바둑 둬 내상은 안 입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어치를 매길 수 없는 1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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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짝 웃는 이세돌
활짝 웃는 이세돌 이세돌 9단이 13일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호텔에서 치러진 인공지능(AI) 컴퓨터 알파고와의 5번기 제4국에서 승리한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활짝 웃고 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알파고 포기합니다’
‘알파고 포기합니다’ 알파고가 13일 이세돌 9단과의 제4국에서 불계패를 인정하며 ‘알파고 포기합니다’(AlphaGo resigns)라는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다.
방송화면 캡처
인공지능 컴퓨터 알파고와의 반상 대결(5번기)에서 3연패의 깊은 수렁에 빠졌던 이세돌 9단은 제4국에서 대망의 첫 승을 거둔 뒤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하며 그동안 겪었던 마음고생을 훌훌 털어냈다. 이 9단이 알파고와 대국을 마친 뒤 기자회견에서 밝게 웃은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이 9단은 “한 판을 이겼는데 이렇게 축하받은 건 처음이다. 3연패 후 1승하니까 이렇게 기쁠 수 없다”면서 “많은 격려 덕분에 한 판이라도 이긴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대국 전 5대0이나 4대1 승부를 예상했던 게 기억난다. 내가 3대1로 앞서다가 한 판을 졌다면 아프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취재진은 이번 4국이 의도한 대로 승리한 것인지, 아니면 알파고의 실수에 편승한 것인지에 주목했다. 이에 이 9단은 알파고가 드러낸 약점을 두 가지로 꼽았다. 우선 백보다 흑을 쥐고 승부할 때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생각하지 못한 수가 나왔을 때 일종의 ‘버그’ 형태로 몇 수를 둔 것 같다고도 했다. 생각하지 못한 수가 나왔을 때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이 9단은 4차례 대국으로 알파고와의 ‘정보 비대칭’을 극복했느냐는 질문에 “물론 알파고에 대해 처음부터 어느 정도 정보가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기본적으로 내 능력이 부족했다”면서 “정보 비대칭성은 문제가 안 된다고 본다”고 답했다. 패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변명하는 것을 바둑 기사답지 못한 태도로 여기는 일반적인 프로기사들의 태도와 다를 게 없는 모습이었다.

이어 중국 매체의 한 기자가 “3연패를 당한 뒤 정신적 충격은 없었느냐, 대국을 중단할 생각까지 하지는 않았느냐”고 묻자 이 9단은 “충격이 아예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대국을 중단시킬 만큼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어 “결과가 좋지 않아 스트레스가 있었지만 즐겁게 바둑을 뒀기 때문에 내상을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이번 승리로 스트레스를 많이 해소했다”고 설명했다.

또 “중국의 구리 9단이 이 9단의 78수가 ‘신의 한 수’라고 말했다”면서 당시 생각을 묻는 질문에 이 9단은 “쉽게 수가 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어려워 또 지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며 “당시 그 장면에서는 그 수밖에 없었고 다른 수는 보이지 않았다. 칭찬받아 어리둥절하다”고 말했다. 이날 대국에서 알파고는 78수에 대해 제대로 응수하지 못했고 85·87·89수에서는 이 9단에게 큰 집만 만들어 주고 말았다.

이 9단은 어김없는 승부사 근성을 드러냈다. 그는 최종 5국 승부에 대해서는 “이번에 백으로 승리했기 때문에 마지막에는 흑으로 이겨 보고 싶다. 흑으로 이기는 게 더 값어치가 있어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이 9단은 자리를 함께한 구글 딥마인드의 데미스 허사비스 최고경영자(CEO)에게 “마지막 대국에서는 돌을 가려야 하지만 흑을 쥐고 싶다”며 “수락해 달라”고 물었다. 허사비스는 곧바로 “그렇게 하시라”며 승낙했다. 이로써 5국은 이 9단의 흑번으로 치러지게 됐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2016-03-1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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