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표현은 집단적 폭력의 전조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혐오 표현은 집단적 폭력의 전조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입력 2022-11-13 17:36
수정 2022-11-14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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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베를린에 있는 유럽유대인학살추모관의 모습. 퍼블릭도메인 제공
독일 베를린에 있는 유럽유대인학살추모관의 모습.
퍼블릭도메인 제공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용자가 많아지면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해 차별하고 적의를 드러내는 혐오표현을 쉽게 접하게 됩니다. 혐오표현은 나와 다른 사람은 다른 존재로 보이게 만들어 분리시키게 됩니다. 이 같은 타자화와 비인간화는 집단 폭력의 전조로 보고 있지만 경험적 증거로 제시된 적은 거의 없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 스탠퍼드대, 캘리포니아 산타바버라대(UCSB),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동 연구팀은 독일 국가사회주의노동자당(나치)의 선전선동에 나타난 언어를 심리학적, 뇌과학적으로 분석해 홀로코스트 원인과 폭력성의 근원을 찾아 나섰습니다. 연구 결과는 미국공공과학도서관에서 발행하는 국제학술지 ‘플로스 원’ 11월 10일자에 실렸습니다.

연구팀은 홀로코스트라는 인류 최악의 범죄가 어떻게 시작해 진행됐는지 파악하기 위해 나치의 선전선동에 사용된 언어들에 주목했습니다. 연구팀은 나치가 독일 사회를 잠식하기 시작한 1927년을 연구 출발점으로 잡았습니다. 이 시점부터 독일인의 단합이라는 허울 좋은 목적으로 외부인을 배제하고 희생양을 만들기 위한 작업을 시작했고, 그 잔혹한 결과가 2차 세계대전 후반 홀로코스트로 나타났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연구의 논문 제목도 ‘비인간화와 대규모 폭력: 1927~1945년 나치의 선전선동에서 나타나는 심리상태 언어 분석’입니다.

연구팀은 1927년부터 1945년까지 나치가 발표한 포스터, 팸플릿, 연설문 등 선전선동 자료와 독일 신문 보도에 나온 단어와 문장을 정밀분석했습니다. 특히 ‘계획’, ‘생각’ 같은 대리능력에 관한 용어와 ‘상처’, ‘즐기다’ 같은 경험, 감정 관련 단어의 사용빈도를 구분했습니다.

그 결과 선전선동은 유대인이 인간의 기본 감정과 감각을 갖고 있다는 것을 점차 부정하는 방향으로 진행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나치가 독일 정치에 등장해 정권을 잡을 때까지는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유대인은 독일인들이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는 점이 강조됐고 홀로코스트가 시작되기 직전부터는 유대인은 인간이 아닌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는 비인간화 경향이 큰 선전선동이 대폭 증가했다고 합니다. 사회를 좀먹는 암적인 존재는 사라져도 괜찮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강조하면서 독일인들의 폭력에 대한 도덕적 저항판을 사실상 없애 버려 홀로코스트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든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모든 폭력에는 동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폭력을 없애기 위해서는 폭력을 유발시키는 동기를 찾아내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번 연구를 보면 인간성을 부정하고 조롱하는 언어가 폭력의 원인이라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조롱과 부정의 언어는 상대에 대한 도덕적 이해라는 장벽의 높이를 낮춰 폭력에 무감각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 정치권이나 사회에서도 상대를 조롱하고 비하하는 혐오 언어를 공공연하게 쓰는 것이 쉽게 눈에 띕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절대적으로 지키려는 가치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를 타자화, 비인간화시키는 언어를 사용해 자신의 지지층을 결속시키거나 돈벌이에 이용하려는 이들이 외치는 자유, 민주주의, 정의를 신뢰할 수 없는 것입니다.
2022-11-14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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