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집행정지 때 도피 행각…처벌 규정 없는 ‘입법 공백’
구속집행정지 기간 병원에서 몰래 달아났던 최규선(57)씨가 지난 20일 전남 순천에서 검찰 체포조에 검거됐습니다. 최씨는 김대중 정부 시절 ‘최규선 게이트’ 비리 사건의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수사망을 피해 보름 동안이나 도피 행각을 벌이며 공권력을 기만했지만 그에 대한 가중처벌은 어렵다는 것이 검찰 판단입니다. 그런데 최씨의 도피 생활을 도운 30대 여성 박모씨는 처지가 다릅니다. 그의 도주를 도운 혐의로 23일 구속됐습니다. 달아난 피의자는 처벌받지 않고, 그를 도운 사람은 처벌받는 황당한 상황입니다.왜 이럴까요. 법의 맹점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최씨를 처벌할 법규가 없습니다. 최씨가 마음 놓고 도주할 수 있었던 데에는 법·제도 미비도 한몫했을 것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형법 145조는 체포 또는 구금 상태인 사람이 달아나면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했습니다. 하지만 이 조항은 형이나 구속의 집행이 정지된 상태에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최씨는 이미 기소된 횡령죄 등의 선고에 따른 형기만 채우면 됩니다.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판사는 “구속집행정지 상태는 구금상태라고 하기 어려워 처벌하기 어렵다”면서 “굳이 말하자면 입법상의 공백”이라고 말했습니다. 법에 구멍이 뚫려 있다는 지적입니다.
최씨는 자신이 운영하던 업체의 회삿돈 430억여원을 횡령·배임한 혐의 등으로 지난해 11월 구속기소돼 1심 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후 2심이 진행 중이던 올해 1월부터 건강 상태를 이유로 구속 집행이 정지됐고, 두 차례 연장 후 이달 초 연장 재신청이 불허되자 바로 도주했습니다. 구속집행정지 상태는 교정당국이나 검·경의 감시망을 벗어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역시 관리 규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법원이 지정한 경찰서가 주기적으로 체크를 하는 정도지 당사자가 도주를 결심하면 막을 방법은 사실상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최씨의 도주를 도운 박씨 사정은 다릅니다. 형법 151조는 “벌금형 이상의 죄를 지은 자를 은닉 또는 도피하게 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합니다. 이번 도주극의 주범인 최씨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는 반면, 박씨만 형사 처벌을 앞두게 된 셈입니다. 서울 지역의 한 변호사는 “법원의 구속집행정지 심사를 강화하고 나아가 집행정지가 됐다면 이에 대한 감시책임을 관계 당국이 지도록 하는 법 규정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서유미 기자 seoym@seoul.co.kr
2017-04-24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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