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영향력 강한 임명구조 개선 시급” “정치사건 배제… 국민 기본권에 국한해야”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선고한 뒤 이번엔 진보 진영 쪽에서부터 헌재 무용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8대1이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헌정 사상 초유의 결정을 내리자 재판관 인적 구성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기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재판관 임명 방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21일 법조계에 따르면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심판, 2005년 신행정수도 특별법 헌법소원 심판, 2008년 BBK 특별검사법 헌법소원 심판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 대해 헌재 결정이 나오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 정당해산 심판도 마찬가지다.
재판관 임명 구조가 정치적인 한계를 갖고 있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일수록 논란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공통된 지적이다. 임기 6년의 헌법 재판관은 모두 9명으로, 대통령과 대법원장, 국회가 3명씩 지명 또는 추천하면 대통령이 임명하는 구조다. 국회 추천은 여야가 1명씩, 또 여야 합의로 1명이 선출된다. 대법원장의 임명권을 대통령이 갖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결과적으로 재판관 7~8명은 대통령 또는 대통령을 배출한 정당의 영향력 속에 임명되는 구조다.
공안 검사 출신 김하중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 재판관 외부 개방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최근 헌재 구성이 우리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헌법 재판은 때로는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필요하기 때문에 헌법 재판관이 모두 법조인으로 구성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종수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역시 “통합진보당 해산은 박한철 헌재 소장 취임 당시부터 예정된 결과”라면서 “재판관 9명 모두가 검찰 고위간부 또는 고위 법관 출신으로 그 어느 때보다 다양성이 결여돼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법원장의 헌법 재판관 지명이 문제라는 의견도 있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의 독립성을 위해서는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의 독립이 보장돼야 하는데 그러지 않은 것 같다”며 “대법원장 또한 대통령의 컨트롤하에 있어 더 큰 문제”라고 말했다.
정권에 따라 보수·진보를 오락가락하는 결정이 나오기 때문에 헌재가 ‘정치사건’을 맡아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본래의 취지대로 국민의 기본권 보장과 관련된 헌법적 판단에만 역할을 국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1988년 헌재 출범 취지는 소수자 억압과 인권침해 등을 헌법의 이름으로 막아달라던 것”이라며 “최근의 헌재 결정을 보면 헌재의 존재 필요성에 의문이 든다”고 꼬집었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2014-12-22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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