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人災’가 부른 70일의 공포
메르스 확진자 186명 가운데 방역당국이 놓친 비(非)격리자에 의해 감염된 사람은 136명(73.1%)이나 된다. 보건 당국이 처음부터 촘촘하게 방역망을 짰더라면, 최소한 14번째 환자(35)의 동선이라도 파악했다면 감염되지 않았을 사람들이 메르스를 앓았다. 메르스 사태는 사실상 보건 당국의 무사안일주의와 무능, 허술한 방역망이 부른 ‘인재’(人災)였다.정부가 메르스 종식을 선언한 28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간호사들이 텅 빈 메르스 의심 환자 선별진료소 앞을 지나가고 있다.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메르스 사태의 첫 번째 실책은 사태 초반 방역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접촉자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경기 평택성모병원에서 첫 번째 환자(68)에게 감염된 6번째 환자(71), 14번째 환자(35), 15번째 환자(35), 16번째 환자(40)를 방역 당국은 모두 놓쳐 버렸다. 후과는 컸다. 14번째 확진자가 5월 27~28일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방문했을 때 감염된 환자가 무더기로 발생하면서 2차 메르스 유행이 시작됐고, 확진자 수는 6월 9일 100명을 넘어섰다. ‘3차 감염만은 막겠다’던 보건 당국의 약속은 대전 건양대병원에서 16번째 환자와 접촉한 2명이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깨졌다.
정부의 실수는 반복됐다. 14번째 환자에게서 감염된 76번째 환자(75·여), 123번째 환자(65), 132번째 환자(55)와 16번째 환자에게 감염된 36번째 환자(82)도 격리 대상에 포함하지 않았다. 이들은 모두 14명에게 바이러스를 옮겼다.
정부가 메르스 환자와 2m 이내에서 밀접 접촉한 사람을 격리자로 분류한다는 기준을 고집하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었다. 170번째 환자(77)는 건국대병원에서 76번째 환자와 접촉했지만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진 병실에 머물렀다는 이유로 격리 대상에서 제외됐다.
170번째 환자는 이후 병원 2곳을 더 방문했다. 76번째 환자와 접촉했지만 격리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165번째 환자(79)도 이후 강동경희대병원에서 세 차례나 투석 치료를 받은 사실이 알려져 추가 감염 우려가 제기됐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감염병 유행 양상에 탄력적으로 대응해야 하지만 방역 당국은 현장과 동떨어져 케케묵은 매뉴얼만 바라봤다. 김홍빈 분당서울대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매뉴얼에 맞추다 보니 혼선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 실책은 뒤늦은 병원명 공개였다. 당시 보건 당국은 ‘병원명을 공개하면 혼란이 생길 것이다’, ‘민간 병원이 환자를 거부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병원명 공개를 거부했다. 한 보건 당국 관계자는 뒤늦게 “결국 국민을 믿지 못한 정부의 오만이 문제였다”고 털어놨다.
보건 당국의 관리 부실은 의료종사자 감염자까지 낳았다. 의사 8명, 간호사 15명을 포함해 방사선사, 이송 요원, 간병인 등 모두 39명(21.0%)이 병원 내 환자 진료 또는 이송 과정에서 감염됐다. 메르스 환자를 진료할 때는 레벨D등급 이상의 보호구를 착용해야 하지만 지난달 17일 이전까지는 병원에 제대로 된 지침을 내려보내지 않았다. 그러고도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정부의 이런 무사안일주의 탓에 메르스 환자 36명이 결국 숨을 거뒀다. 메르스 치사율이 19.4%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보듯 의료의 양적 팽창에만 집중한 자칭 ‘의료 선진국’의 부끄러운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2015-07-29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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