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나라 당근시 동묘구 번개동’… 고물가·빈티지 유행에 ‘사는 법’ 달라졌다

‘중고나라 당근시 동묘구 번개동’… 고물가·빈티지 유행에 ‘사는 법’ 달라졌다

송현주 기자
송현주 기자
입력 2024-10-10 18:28
수정 2024-10-10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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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이 아닌 보물찾기… ‘중고’에 반했다

MZ부터 노인까지 중고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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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원, 3000원, 5000원.”

10일 ‘중고 패션’의 상징이 된 서울 종로구 동묘구제시장의 한 좌판. 대학생부터 머리가 희끗한 70대까지 20여명이 10여m 길이로 바닥에 산처럼 쌓인 옷 무더기를 헤집었다. 유명 브랜드의 대표 상품으로 유명한 갈색 체크무늬 원피스부터 마치 쇼핑몰 판매 제품처럼 보풀 하나 없는 하늘색 카디건, 깨끗한 파란색 줄무늬 셔츠까지 연신 건져 올렸다.

정해진 가격은 없지만 흥정은 있다. 캡모자 두 개를 두고 머리에 써 보며 연신 고민하던 50대 남성이 “두 개 만 원에 안 되겠냐”고 묻자 사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검은 비닐봉투를 건넸다.

정근형(67)씨는 “새것처럼 질 좋은 게 많아 보물찾기하는 기분”이라고 웃었다. 이날 가방 하나와 신발 세 켤레를 산 김모(27)씨는 “중고 제품에 거부감이 없어 일주일에 4번 온다”고 했다.

빈티지 의류 매장을 운영하는 박지환(37)씨는 “유행은 어디든 똑같다”며 “성수동에서 ‘핫한’ 옷도 저렴하게 팔아 젊은 손님도 많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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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도 ‘득템’ 발굴에 푹~
어르신도 ‘득템’ 발굴에 푹~ 10일 서울 종로구 동묘구제시장의 미국 직수입 중고 의류 전문 매장 앞에서 70대 노인이 청재킷을 들어 살펴보고 있다.
송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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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층도 ‘득템’ 발굴에 푹~
젊은층도 ‘득템’ 발굴에 푹~ 평일 오후 시간인데도 다양한 연령대와 성별의 고객이 몰려 붐비는 동묘구제시장에서 여성들이 골목에 쌓여 있는 중고 의류를 고르고 있는 모습.
송현주 기자


요즘 중고 제품은 떨이가 아닌 ‘득템’(좋은 물건을 얻었다는 의미의 신조어)으로 여겨진다. 중고 제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빈티지 유행’으로 바뀌고 경기 불황이 계속되면서 마니아만 누리던 중고시장이 가성비와 개성을 한 번에 잡을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 됐다.

중고 제품을 사고파는 플랫폼의 사용자 수도 폭증했다. 중고 의류 플랫폼 ‘차란’ 애플리케이션(앱) 이용자 수는 지난해 8월 3만명이었는데 지난 8월엔 4.3배인 13만명으로 가파르게 뛰었다. 주된 사용자는 20대(43.6%)다. 중고 제품을 거래하는 앱 ‘당근마켓’ 이용자도 지난해 8월 1717만명에서 올 8월 1764만명으로 늘었다. ‘번개장터’는 269만명에서 296만명으로, ‘중고나라’는 85만명에서 95만명으로 상승세다.

지난 7일 서울 중구의 한 빈티지 의류 상점 앞에서 만난 ‘빈티지 마니아’ 남혜민(34)씨는 “흔한 기성제품이 아니라 특이하고 구하기 어려운 물건을 찾으러 온다”고 했다. 같은 날 용산구 신흥시장의 한 빈티지 의류 상점을 찾은 김효은(22)씨도 “‘감성’과 ‘돈’ 둘 다 놓치고 싶지 않아 빈티지 옷을 산다”고 말했다. 신흥시장에 빈티지 의류 가게를 연 김성진(36)씨는 “미국 빈티지 의류, 일본 브랜드 등 고객마다 다양한 중고 의류 취향을 맞추려 한다”고 설명했다.

중고 의류만 유행하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결혼한 이모(27)씨는 “혼수 가전과 가구를 중고로 샀다”며 “포장을 제거해 한두 번 사용했거나 유행이 지났을 뿐 성능이나 외관은 큰 차이가 없고 가격은 저렴해 합리적”이라고 했다. 인천 서구에 사는 장모(59)씨는 “14개월인 손녀를 위해 장난감 20여개를 정가의 4분의1 가격에 ‘당근마켓’에서 샀는데 아이가 크면 하나씩 되팔 생각”이라고 했다.

중고 제품이 소비자에게 하나의 대안이 된 건 ▲중고 제품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계속되는 고물가 ▲나만의 독특함을 보여 주고 싶은 욕구가 맞물려서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그간 ‘구제’는 누가 쓰던 것이라 꺼림칙하다는 인식이 강했는데 중고 물품이 친환경적이라는 긍정적인 인식이 커지고 연예인들도 빈티지를 찾는 등 중고 제품에 대한 저항감이나 사회적 낙인 효과가 줄어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빈티지가 유행하는 시기는 다들 주머니에 돈이 없을 때”라며 “안정적이고 질 높은 일자리가 점점 사라지는 상황에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현명한 소비 방법으로 빈티지가 부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2024-10-11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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