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못하면 밥도 사치”…자기 착취 빠진 ‘대한민국 고3’

“공부 못하면 밥도 사치”…자기 착취 빠진 ‘대한민국 고3’

김지예 기자
김지예 기자
입력 2019-01-25 18:13
수정 2019-01-27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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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센터 청소년 4명, 또래 심층 인터뷰

극한 상황·고통 익숙…자기 혐오 하기도
“‘스카이 캐슬’ 속 1% 보면 자괴감 들어”

“입시 아닌 삶 챙기는 교육 도입됐으면”
“나는 수능이 400일도 남지 않은 고2, 아니 사실상 고3이다. ‘넌 고3이야’라는 말을 365일 내내 듣고있다. 입시 탓에 건강을 잃었다. 주변 사람들은 매일 밤 (힘들어) 운다. 어쩌면 몇몇은 자살을 시도한다. 난 겉으로 늘 웃지만 사실 상처를 감추려는 것인지 모른다. 친구들과 밥 먹고 영화관에 가는 소소한 행복을 누리지만 이 행복이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미래가 두렵다. 초등학교 때는 7개에 달하는 학원에 다녔고 중학교 땐 특목고 준비를 위해, 지금은 좋은 대학에 가려고 공부에 파묻혀 있다. 내 삶이 과연 행복해 질 수 있을까.” (서울 거주 19살 A양)

전쟁을 방불케 하는 입시 경쟁 속에서 사는 대한민국 고3들의 평균적 삶은 A양과 크게 다르지 않다. 화제의 드라마 ‘SKY(스카이) 캐슬’이 보여주는 고교생들의 대입 경쟁과 스트레스는 다소 과장됐지만 본질을 꿰뚫었다는 평을 받는다. 고3들은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 버틸까. 청소년 4명이 또래들의 속내를 듣고 관찰한 결과를 내놨다.

26일 서울시청소년직업체험센터 ‘하자센터’에 따르면 ‘은별’(18), ‘나무’(20), ‘달’(18), ‘바에’(17, 이상 활동명) 등 청소년 4명은 또래들의 목소리를 직접 담아내는 연구를 진행했다. 하자센터 내 10대 연구소 소속인 이들은 지난해 3월부터 10개월 동안 청소년 25명을 인터뷰하고 참여관찰했다.

이들은 연구 전 “학생들이 입시 고통을 강하게 호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대답은 달랐다. “공부를 해야 밥 먹을 자격이 있다”, “끼니를 걸러가며 공부를 해도 매일 하니까 별 감각이 없다”, “밥은 사치” 라고 말했다. 예비 고3 B학생은 “밥 먹을 시간도 아껴 공부해야 하는 건 전날 공부를 못한 내 잘못”이라고 자책했다. 고통을 표출하기 보다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상황을 연구진들은 ‘자기 착취’라고 이름 붙였다.

독하게 공부할수록 자기 착취는 더 심해졌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보면서도 ‘나는 왜 더 독하게 못할까’하는 마음이 든다고 했다. ‘은별’은 “스카이 캐슬이 정말 청소년들을 생각해서 만든건지 잘 모르겠다”면서 “상위 1% 이야기를 보면서 대다수 학생들은 남들은 저렇게 하는데 난 뭘까’하는 자괴감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자기혐오도 심각했다. 조금이라도 나태해진 것 같으면 스스로를 욕하고 방학 때는 공부를 제대로 못했다는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고2인 D학생은 “스트레스를 가족한테 풀자니 ‘그 시간에 공부하라’고 할 것 같고 학교도 모든 걸 털어놓기에는 믿음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더 많은 학업량을 요구하는 사회의 요구를 쫓아가지 못하면 스스로 자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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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센터 10대 연구소 페이스북 캡처
하자센터 10대 연구소 페이스북 캡처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연구자들은 “외부의 강한 압박을 내면화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고3 E양은 “사람들이 하도 고3이 중요한 것처럼 말하니 ‘고3이 큰 일인가 보다’하고 살았다”고 말했다. 언론에서는 포크로 스스로 찌르거나 커피콩을 씹으며 잠을 깼다는 수험생들의 이야기가 무용담처럼 나온다. “영단어 때문에 죽고 싶다고 하니 엄마가 컨닝페이퍼를 만들어 줬다”고 한 고 3학생도 있었다. 연구자 ‘나무’는 “입시 스트레스의 구조보다는 다른 방법을 통해서라도 기준에 맞추도록 만들려는 사회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이라고 해석했다.

자기 착취와 혐오의 고리를 깰 방법은 없을까. ‘은별’은 “학교가 변한다고 해도 학생들의 내면화된 구조가 변하지 않는 한 어려울 것 같다”면서도 “교육기관 내에 학생들의 입시가 아니라 삶을 들여다 봐주는 대안교육이 도입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구를 도운 함세정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겸임교수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고통에 대해 돌아본 연구 자체가 흔하지 않다”며 “숫자로 보여줄 수 없는 학생들의 상황을 당사자의 관점에서 솔직하게 드러낸 작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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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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