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로 드러난 5·18 계엄군 추악한 만행
1980년 광주.민주주의는 없었다
신군부의 집권음모를 규탄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해 일어선 광주민주화운동이 38주년을 맞이하게 됐다. 1980년 당시 전남매일 사진기자로 활동했던 나경택 전 연합뉴스 광주전남취재본부장이 취재한 당시 계엄군에 구타 당하는 시민.
5.18 기념재단.연합뉴스 자료사진
5.18 기념재단.연합뉴스 자료사진
성폭행은 10대 학생부터 30대 주부까지 가리지 않고 자행됐다.
2명 이상의 군인이 한 여성을 집단 성폭행한 사실도 여러 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31일 여성가족부·국가인권위원회·국방부가 참여한 ‘5·18 계엄군 등 성폭력 공동조사단’에 따르면 지금까지 확인된 1980년 5·18 당시 계엄군 등의 성폭행 범죄는 17건이다.
피해자들은 총으로 생명을 위협당하는 상황에서 군복을 입은 다수 군인으로부터 성폭행 피해를 입었다고 진술했다.
상무대 등에서 진행된 수사과정에서도 성고문 등 각종 추악한 폭력이 발생했다.
속옷 차림 여성을 대검으로 위협하며 상해를 가하거나 성희롱을 일삼았으며 성고문한 사실도 확인됐다.
계엄군의 만행은 대상을 가지리 않았다.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시위대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에게도 성폭력을 저질렀다.
공동조사단은 시위에 가담하지 않은 여학생, 임산부 등을 대상으로 한 성추행 등 여성인권침해행위도 다수 있었다고 밝혔다.
여고생이 강제로 군용트럭에 태워져 가는 모습이 목격됐고, 사망한 여성의 유방과 성기가 훼손된 모습도 확인됐다.
광주지검 검시조서와 5·18 의료활동 기록에서는 일부 여성 피해자의 부상 부위가 유방 또는 성기라는 기록이 발견됐다. 여성의 옷이 찢긴 채 병원에 방문한 사례도 나타났다.
피해자들은 3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워지지 않는 상처로 고통을 겪고 있다.
한 피해자는 “지금도 얼룩무늬 군복만 보면 속이 울렁거리고 힘들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정신과 치료도 받아봤지만 성폭행당한 것이 잊히지 않는다”고 했고, “육체적 고통보다 성폭행당한 정신적인 상처가 더 크다”고 털어놓은 이도 있다.
피해자들은 “가족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스무 살 그 꽃다운 나이에 인생이 멈춰버렸다”며 젊은 날의 끔찍한 기억을 평생 떠안고 살아온 고통도 전했다.
공동조사단은 피해자 면담과정에서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5·18에 대한 이해와 상담 경험을 가진 전문가를 함께 파견했다. 피해자가 원하면 전문 트라우마 치유기관에 심리치료를 맡겼다.
또한 피해자들을 위해 국가의 공식적 사과 표명과 재발 방지 약속, 국가폭력 트라우마센터 건립,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별도의 구제절차 마련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조사단은 지난 5월 5·18 계엄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 증언이 나온 뒤인 6월 8일 출범했다.
공동조사단은 가해자 등에 대한 조사권이 없고 시간적 제약이 있어 5·18 당시 벌어진 성폭력 범죄의 진상을 완전히 드러내지는 못했다.
이번 조사 결과는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 이관돼 추가 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그러나 5·18 진상규명특별법에 따라 9월 출범 예정이었던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자유한국당의 조사위원 추천 지연 등으로 아직 출범하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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