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관광객과 ‘쓰레기 전쟁’ 주민들…“범칙금요? 출국하면 그만”

외국인 관광객과 ‘쓰레기 전쟁’ 주민들…“범칙금요? 출국하면 그만”

김헌주 기자
김헌주 기자
입력 2018-10-27 14:00
수정 2018-10-2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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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경범죄 위반 중 쓰레기 투기가 60~70%
현장 적발 어렵고 범칙금 부과해도 나몰라라 출국
북촌 주민 “말도 안통하고…차라리 내가 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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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 골목 입구에 ‘쓰레기 무단 투기 이제 그만’이란 글귀가 쓰인 벽보가 부착돼 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 골목 입구에 ‘쓰레기 무단 투기 이제 그만’이란 글귀가 쓰인 벽보가 부착돼 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외국인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관광 명소에서 관광객들의 쓰레기 무단 투기, 소란 행위 등으로 지역 주민들과 갈등을 빚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도 내국인과 똑같이 경범죄 위반 행위에 대해서는 범칙금을 부과할 수 있지만, 납부를 안 해도 강제할 방법이 없어 단속에 나서는 경찰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주민들은 자체적인 해법을 찾아나서며 관광객들과의 공존을 택하기도 한다.

27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대상으로 한 경범죄 위반 단속 건수는 3190건으로 집계됐다. 올해 1~9월 사이에도 1749건이 적발됐다. 이중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적발되는 행위는 쓰레기 무단 투기로 나타났다. 지난해 쓰레기 무단 투기는 2391건으로 전체 단속 건수의 75.0%를 차지했다. 올해는 1173건으로 67.1%를 기록했다.

쓰레기 투기는 기본적으로 지자체가 단속에 나서지만, 현장에서 적발하지 않는 이상 과태료를 부과하기가 어렵다. 지역 주민들의 민원을 접수받아도 해당 행위를 한 관광객을 찾아내는 것이 쉽지 않다. 경찰도 쓰레기 무단 투기를 금지하는 경범죄처벌법 제3조에 따라 범칙금 3만원을 부과하고 있지만, 납부 기간 만료 전에 자국으로 돌아가면 받아낼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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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의 전봇대에 ‘이곳은 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입니다. 조용히 해주세요’라는 내용의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4개 국어로 쓰인 안내문이 걸려 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의 전봇대에 ‘이곳은 주민들이 거주하는 지역입니다. 조용히 해주세요’라는 내용의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4개 국어로 쓰인 안내문이 걸려 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쓰레기 투기 다음으로 지역 주민을 괴롭히는 음주 소란 행위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외국인이 공공 장소에서 술에 취해 소란을 벌이다 적발된 인원은 187명에 달한다. 올해 1~9월 사이에도 139명이 적발됐다. 지난 4월 28일 오전 6시 50분쯤 서울 광진구 지하철 5호선 군자역 승강장에서 술에 취해 승객들에게 고성을 지르고 이를 제지한 역무원 앞에서 윗옷을 벗은 외국인이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하지만 음주 소란 행위에 대해서도 범칙금(5만원) 통고 처분을 하는 것 외에 경찰이 손 쓸 방법이 많지 않다. 현재로선 범칙금을 일정 기간 내에 안 내거나 주소지가 불분명한 경우 법원에 즉결심판 청구를 한다. 2014년 7월 11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에서 담배꽁초 투기로 경찰관에게 적발된 외국인은 3년이 지나도록 범칙금을 안 내 결국 즉결심판에 회부됐다. 즉결심판을 통해 벌금 수배를 내리면 나중에 외국인이 재입국할 때 벌금을 납부할 수밖에 없다. 다만 이조차도 관광객이 다시 한국을 찾지 않으면 소용 없다는 점에서 실효성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범칙금을 내지 않은 외국인에 대해서는 체류기간 제한 조치 등 추가적인 제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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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중순 경찰청이 배포한 외국인 관광객 상대 기초질서 준수 안내문. 기초 질서 위반 시 범칙금, 과태료가 부과되고, 납부하지 않으면 수배자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경찰청 제공
이달 중순 경찰청이 배포한 외국인 관광객 상대 기초질서 준수 안내문. 기초 질서 위반 시 범칙금, 과태료가 부과되고, 납부하지 않으면 수배자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경찰청 제공
현재 경찰과 지자체는 고육지책으로 ‘소란을 피우지 맙시다’, ‘쓰레기를 버리지 맙시다’ 등의 안내문을 배포하는 식으로 관광객들의 질서 유지를 독려하는 방법을 쓰고 있다. 경찰청은 최근 외국인 관광객 대상으로 기초질서 준수 안내문(한국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10만부를 제작해 배포했다. 서울 종로구청 등도 지역 주민들의 양해를 얻어 안내문을 새로 제작해 부착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주민들은 자체 해결 방안을 모색하기도 한다. 종로구 북촌 한옥마을에 사는 김모(57)씨는 주말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집 앞에 담배 꽁초, 음료수 컵 등 쓰레기를 버리면 잽싸게 주워 집으로 갖고 들어온다고 했다. 관광객들에게 “쓰레기 버리지 말라”고 따끔하게 주의를 주고 싶어도 언어가 통하지 않고, 막상 항의를 해도 그때뿐이기 때문에 차라리 ‘청소부’ 역할을 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는 것이다. 김씨는 “깨진 유리창 법칙처럼 쓰레기를 방치해 놓으면 관광객들이 ‘이 곳에는 쓰레기를 버려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해 마구 버리는 경향이 있다”면서 “관광객들에게 틈을 주지 않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을 수 년 간의 경험을 통해 체득했다”고 말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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