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범벅 인형 탈·체감 70도 공사현장… “車보닛서 일하는 기분”

땀 범벅 인형 탈·체감 70도 공사현장… “車보닛서 일하는 기분”

이영준 기자
이영준 기자
입력 2018-07-19 21:52
수정 2018-07-23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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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살려고”… 노동자들 뜨거운 사투

인형 탈 홍보, 5년째 여름철 최악 알바
휴대용 선풍기로 더위 식히는 게 전부
주차요원들, 매연·소음·車열기 ‘3중고’
1평짜리 휴게 공간엔 시원찮은 바람만
땡볕 공사 현장, 달궈진 철근에 화상도
“1시간에 15분 휴식? 이동조차 힘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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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특보가 내려진 19일 낮 12시 15분쯤 서울 중구 명동에서 카페 홍보를 위해 고양이 모양의 인형 탈을 쓴 20대 남성이 걸음을 멈추고 손 선풍기로 바람을 쐬고 있다.
폭염특보가 내려진 19일 낮 12시 15분쯤 서울 중구 명동에서 카페 홍보를 위해 고양이 모양의 인형 탈을 쓴 20대 남성이 걸음을 멈추고 손 선풍기로 바람을 쐬고 있다.
‘폭염 아래 하루 노동/천근만근 그 새부터 짓눌러오네/이러케 살아야 쓰는 거시냐고 차라리 하루/포기해버리자고/주저앉다가 다시 일어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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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낮 최고 기온이 34.1도까지 치솟은 19일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 마련된 휴게 공간에서 현장 노동자들이 수박 화채를 나누어 먹으며 잠시 땀을 식히고 있다.
서울의 낮 최고 기온이 34.1도까지 치솟은 19일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의 한 아파트 건설 현장에 마련된 휴게 공간에서 현장 노동자들이 수박 화채를 나누어 먹으며 잠시 땀을 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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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낮 12시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주민들이 더위를 식히기 위해 그늘에 앉아 있다. 한 주민은 “쪽방에 있으면 등이 뜨거워서 누울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19일 낮 12시쯤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에서 주민들이 더위를 식히기 위해 그늘에 앉아 있다. 한 주민은 “쪽방에 있으면 등이 뜨거워서 누울 수가 없다”고 토로했다.
35년째 철근 노동자로 일하며 시를 쓰고 있는 김해화 시인이 1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새벽 세시’의 한 대목이다. 서울신문이 19일 만난 노동자들은 김 시인의 시처럼 무거운 노동을 어깨에 멘 채 폭염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낮 기온이 섭씨 35도에 이른 이날 서울 중구 명동 거리 한복판에서는 고양이 모습의 인형 탈을 쓴 아르바이트생이 전단을 나눠주며 고양이들이 놀 수 있는 카페를 홍보하고 있었다. 인형은 마냥 웃고 있었지만, 인형 속 알바생의 얼굴은 땀에 흠뻑 젖어 일그러져 있을 게 뻔했다. 그는 아이스팩 3개를 가슴 쪽 주머니와 바지 양쪽 주머니에 하나씩 차고 다니며 견디기 힘들 때마다 꺼내 더위를 식혔다. 하지만 아이스팩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뜨근뜨근해졌다. “인형 안에서 땀으로 세수를 해요. 손 선풍기로 더위를 식히는 게 전부예요.”

또 다른 인형 탈 알바생은 “인형 속은 그야말로 사우나”라면서 “살은 뺄 수 있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하루 5시간 일하고 4만원(시급 8000원)을 받는다”면서 “다른 매장에서 시급 1만원 이상 준다고 했지만, 이곳 사장님이 좋아 더워도 참고 일한다”고 덧붙였다.

알바 포털사이트인 알바몬이 지난달 29일 알바생 1488명을 대상으로 ‘여름철 최악의 아르바이트’를 설문한 결과 인형 탈 알바가 29.8%로 5년 연속 1위로 꼽혔다.

명동의 백화점 앞 주차관리 요원들도 햇볕에 노출된 채 일하고 있었다. 한 손에 무전기를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쉼 없이 수신호를 하는 이들에겐 물 마실 시간조차 없었다. 한 20대 남성은 “땀이 주체할 수 없이 나지만 손님들을 맞이하는 일이다 보니 표정을 밝게 유지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공영 주차장에서 일하는 주차 요원들도 땡볕 아래에서 이리저리 뛰고 있었다. 마포구의 한 공영주차장에서 일하는 김모씨는 “낮 12시부터 밤 11시까지 일한다”면서 “휴게 공간은 있지만 1평도 채 안 되는 곳이고 에어컨도 신통치 않아 차라리 밖에 나와 있는 게 낫다”고 말했다. “매연을 고스란히 다 마시고, 소음도 견디기 힘듭니다. 차량 열기에 사람이 익을 지경이죠.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어요.”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의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는 노동자들이 햇볕에 벌겋게 익은 얼굴로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현장 직원 김모(71)씨는 목에 두른 수건으로 줄줄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 내며 “아무리 더워도 일을 중단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고용노동부가 제시한 ‘열사병 예방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폭염주의보(33도 이상), 폭염경보(35도 이상) 발동 시 1시간 일하면 10~15분간 휴식을 취해야 하고, 고용주 측은 음료수와 그늘막 등을 제공해야 한다. 하지만 현장 노동자들은 이런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김씨는 “현장에서 1시간에 15분씩 쉬고 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휴식 장소가 있지만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이동하는 것조차 힘들다”고 말했다. 공사 현장의 노동자들은 “체감 온도는 70도가 넘는다”고 입을 모았다. 달궈진 철근에 화상을 입을 때도 있다고 한다. 한 노동자는 “뜨거운 자동차 보닛 위에서 일하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야외 놀이공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도 힘겹긴 마찬가지였다. 경기 과천시 서울랜드에서 범퍼카를 관리하는 서모(22·여)씨는 “야외 근무이기 때문에 더위를 온몸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휴대용 선풍기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사건팀 dream@seoul.co.kr
2018-07-2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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