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불 껐지만… 수거 진통 예상
수도권 재활용업체들이 하루 만에 백기를 들면서 ‘재활용 쓰레기 대란’은 피할 수 있게 됐지만, 현장의 뒷수습은 고스란히 경비원들 몫으로 남게 됐다. 당장은 재활용업체들이 정부의 지시에 따라 폐비닐·스티로폼을 수거해 간다 해도 ‘돈이 안 된다’는 근본 원인은 해결되지 않아 수거 과정에서도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2일 인천의 한 재활용 수거업체 작업장에 폐비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지난 1일 수도권의 일부 민간 재활용업체들이 비용 부담을 이유로 폐비닐과 스티로폼 수거를 중단하면서 혼선이 커지자 환경부가 이날 긴급 대책을 내놓고 “기존처럼 분리 배출하면 된다”고 밝혔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2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 1일 경기 김포시 한강신도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경비원 김모(66)씨는 입주자 김모(70)씨에게 “비닐을 버리면 안 된다”고 했다가 수차례 얼굴을 가격당했다. 당시 가해 주민은 술에 취한 상태였다. 옆에서 말리던 30대 남성도 가해자로부터 “뭔데 참견이냐”면서 폭행을 당했다. 피해 경비원은 경찰 조사에서 “왼쪽 귀 안이 찢어져 네 바늘을 꿰맸다. 틀니를 했던 치아도 흔들린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하지만 이 경비원은 3일 근무일에 다시 출근해야 한다. 대체 인력이 없기 때문이다.
단독주택의 경우 지방자치단체에서 생활폐기물을 수거하지만 대부분의 공동주택(아파트)에서는 입주자 대표회 또는 부녀회가 민간 재활용 업체와 계약을 맺고 고철, 폐지 등 ‘돈이 되는’ 재활용품을 처리한다. 이 과정에서 관리사무소와 계약을 맺은 용역업체 소속 경비원들이 ‘쓰레기 전담 처리반’이 돼 재활용업체가 수거해 가는 데 용이하도록 생활폐기물 재분류 등의 작업을 한다. 재활용이 안 되지만 주민들이 몰래 버린 폐기물을 골라내는 일도 경비원이 해야 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물질이 없는 깨끗한 비닐·스티로폼은 수거한다고 했지만, 경비원 입장에서는 부담이 더 커질 뿐이다.
실제 재활용 분리 수거장에서는 음식 국물이 줄줄 흐르는 비닐을 재활용 수거함에 마구 욱여넣거나, 컵라면 찌꺼기가 그대로 붙은 스티로폼 용기가 너저분하게 배출돼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재활용업체는 폐기물을 수거할 때 현장에서 이물질이 발견되면 아예 수거 자체를 하지 않는다. 서울 성북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5년째 경비원으로 근무 중인 장모(69)씨는 “밀려드는 택배에 주차 관리를 하느라 정신없는데 언제 재활용 폐기물의 이물질을 씻고 있느냐”면서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 우리가 ‘동네북’도 아니고 다들 너무한다”고 하소연했다. 경기 북부 지역의 한 재활용업체 대표는 “아파트마다 인력이 부족해 이물질 제거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우리도 무작정 생활폐기물을 가져올 수 없다”면서 “깐깐하게 살펴도 나중에 가져와 보면 가방, 신발 등 각종 폐기물이 섞여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사태 이후 경비원들의 업무 분장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사적 계약의 영역이라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경비업법 개정안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실 측은 “이번 법안은 시설 경비를 하는 경비원의 물리력 동원을 금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 아파트 경비원의 업무 범위까지는 정하지 않고 있다”면서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파트 경비원의 업무와 관련해서는 별도로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아파트 입주자 단체와 재활용업체의 ‘깜깜이 계약’이 결국 문제를 키운 것”이라면서 “정부가 나서서 통합 시스템을 정비하지 않으면 주민들은 물론 경비원들도 계속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김현경 서울환경연합 활동가는 “지자체가 사실상 재활용 처리 과정에서 손을 놓고 있었다”면서 “입주자 단체와 업체 간 계약 단계부터 단가 책정 등에 (지자체가) 개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2018-04-03 2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