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연구자 “우발적 사건 아니라 사전 계획…20사단 역할 주목해야”
5·18 민주화운동 주요 사건 중 최악의 학살로 손꼽히는 전남도청 앞 집단발포가 병력수송헬기 착륙공간 확보작전이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연구자는 다수 시민이 목격한 헬기사격 역시 이 작전의 일환이라고 분석했는데 발포가 ‘자위권 차원의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주장해온 신군부 논리를 반박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김희송 전남대학교 5·18연구소 연구교수는 19일 발표한 논문 ‘5·18 민주화운동의 재구성-계엄군의 사격행위를 중심으로’에서 1980년 5월 20일 광주역 앞 사격, 다음날 집단발포와 다수 시민이 목격한 헬기사격 모두 20사단 투입 작전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는 1980년 당시 계엄군 작전 내용은 기록의 왜곡·누락·은폐가 많아 개별 부대에 주목해서는 파악되지 않고, 다른 부대와 연계해서 살펴봐야 실체가 드러난다고 전제했다.
그는 21일 집단발포를 감행한 11공수의 주요 작전은 병력 배치를 위한 헬기장 확보였으며 계엄 당국이 헬기로 실어나르려 했던 병력은 당일 오전 8시께 광주 시내 진입을 시도했다가 시위대에 막혀 상무대로 차를 돌린 20사단이라고 지목했다.
김 교수는 3공수가 20일 밤 광주역 앞에서 부대 단위 사격까지 감행하며 시위대를 진압하고도 뚜렷한 이유 없이 전남대로 철수했던 사건 또한 20사단과 관련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기차를 타고 광주로 출동한 20사단 61연대의 1차 집결지 확보를 위해 3공수가 광주역 주변 시위를 진압했는데,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철수 배경은 집결지가 광주역에서 송정리역으로 변경됐기 때문이라고 육군본부 작전 조치사항·전교사 작전 일지·계엄사 계엄상황일지·3공수 전투상보 등을 종합 해석했다.
김 교수는 같은 시각 11공수 3개 대대, 7공수 35대대가 도청 앞에서 비박을 하면서까지 작전지역을 사수했던 사실과 군 관계자 증언 등을 통해 이러한 정황을 뒷받침했다.
다수 시민이 목격한 21일 헬기사격에는 20사단 병력 수송을 위해 파견된 UH-1H 기동헬기보다는 항공정찰과 무장지원 임무를 수행하는 500MD 소형공격헬기일 가능성이 크다고 김 교수는 추론했다.
그는 광주역과 도청 앞 발포, 헬기사격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이 우발적이거나 자위권 발동 차원이 아니라 20사단 투입을 위한 수단이었다고 결론 내렸다.
김 교수는 “5·18 초기 항쟁 성격을 규정한 중요한 사건들 모두 20사단과 관련됐다”며 “공수부대 잔혹성에 집중했던 진상규명활동에서 20사단 역할은 질문 자체가 제기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진행할 진실규명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다양한 방면에서 심층 조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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