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망한 安양 죽은 뒤 언급 없고 태어날 딸에 대해서만 메모”
가혹 행위로 네 살배기 친딸을 숨지게 한 한모(36)씨는 ‘인천 맨발소녀’, ‘평택 원영군 사건’ 등이 잇따라 터지자 ‘악몽’ 같았던 5년 전의 일이 떠올랐다.한씨는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둔 2011년 12월 딸 안모양이 소변을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것에 흥분해 물이 담겨있는 욕조에 딸의 머리를 몇 번 밀어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딸은 싸늘한 시신으로 변했다.
딸의 시신을 며칠간 베란다에 방치했다가 남편 안모(38)씨와 함께 암매장했다.
그 뒤 한씨는 딸을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아무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생활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부터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미취학 아동에 대한 전수조사가 시작되자 딸의 죽음이 자신을 옥죄어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일기처럼 써왔던 메모가 떠올렸다.
딸의 죽음과 관련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메모로 인륜을 저버린 자신의 악행이 만천하에 드러날지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자 2011년 12월을 전후해 쓴 메모장을 모두 찢어버렸다.
현재 남아 있는 메모에는 보육원 등을 전전하던 딸이 4살이 돼서야 같이 살면서 불거진 가족 갈등이 담겨 있다.
“애가 자꾸 거짓말을 한다”, “애만 없었으면…쟤가 내 인생을 망쳤다” 같은 딸을 원망하는 글들이 있다.
딸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으면서 가졌던 남편에 대한 증오에 가까운 심정도 써놓았다.
이 사건을 수사하는 청주 청원경찰서의 곽재표 수사과장은 24일 브리핑을 통해 “친딸이 죽었을 당시를 전후한 기록이 통째로 없어졌다”며 “딸이 죽은 뒤에 쓴 메모에는 친딸의 기록은 전혀 없고, 다시 태어난 막내딸과 관련된 것뿐”이라고 말했다.
또 “딸이 가정을 망쳤다고 생각하면서 아이와 남편을 증오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며 “이런 것은 일반적으로 편집증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특히 딸이 죽은 뒤에 쓴 메모에는 안양과 관련된 이야기가 단 한 줄도 없다. 안양의 존재 자체를 기억에서 완전히 지워버리려고 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수사가 시작되면서 안양 학대의 정황이 하나둘씩 드러나고 있다.
경찰이 안양의 병원 진료기록을 조사한 결과, 2011년 5월과 2월 두 차례에 걸쳐 타박상 치료를 받은 것이 확인됐다.
딸이 죽기 전 남편이 두 차례가량 폭행했다는 계부 안씨의 자백도 받았다.
한씨가 딸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베란다에서 벌을 주며 밥을 굶기고 구타하는 장면을 수차례 목격했다는 진술 역시 확보했다.
그나마 엄마 한씨는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오자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마지막 순간 속죄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씨는 경찰의 조사를 받고 귀가한 지난 18일 밤 “가족에게 미안하다. 나 때문에 우리 아이가 죽었다. 하늘에 가서 부모로서 못다 한 책임을 다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한씨가 메모를 찢어버려 안양의 죽음과 관련된 진실은 감춰지게 됐다.
계부 안씨의 진술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그 탓에 암매장된 안양의 시신은 수사가 시작된 지 7일이 되도록 흔적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