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잡 없인 못 살아… 동네 책방 ‘슬픈 귀환’

투잡 없인 못 살아… 동네 책방 ‘슬픈 귀환’

이민영 기자
이민영 기자
입력 2016-02-25 23:42
수정 2016-02-26 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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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 ‘할인폭 제한’ 계기 이태원 등 명소 위주 잇단 개점

연간 1인당 독서량은↓ ‘9.1권’
“서울서 책만으로 수익 2~3곳뿐… 책값 거품 빼고 할인 금지해야”

“커피와 책이 잘 어울리니까 다른 분이 운영하는 카페 내부에 동거 형태로 서점을 열었는데, 생각처럼 시너지 효과가 나지 않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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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 자리한 문학서점 ‘고요서사’의 모습. 차경희 사장은 “좋아하는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게끔 하고 싶은 생각에 서점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강성남 선임기자 snk@seoul.co.kr
25일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 자리한 문학서점 ‘고요서사’의 모습. 차경희 사장은 “좋아하는 책을 많은 사람들이 읽게끔 하고 싶은 생각에 서점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강성남 선임기자 snk@seoul.co.kr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서 문학서점 ‘고요서사’를 운영하는 차경희(32·여) 사장은 25일 “최근 2년간 해방촌에만 5곳의 책방이 새로 문을 열었을 만큼 동네서점이 늘었다”며 “하지만 잘된다고 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40㎡(약 12평) 남짓한 서점은 한산했다. 문학책을 중심으로 500권 정도를 보유하고 있는데, 평일이라 그런지 저녁 퇴근 시간에 들른 손님은 채 열 명이 되지 않았다.

서울의 홍대입구, 이태원, 대학로 등 20~30대가 자주 찾는 명소에 동네서점들이 속속 귀환하고 있다. 디자인, 문학, 사진 등 특화된 분야의 책을 파는 소규모 형태들이다. 젊고 신선한 분위기가 장점이다. 주말이면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가 된다. 반기는 사람들은 많지만 매출은 부진하다. 반짝 하고 부활 조짐을 보이던 동네서점이 다시 퇴조의 길을 걸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구글맵을 이용해 ‘동네서점 지도’를 만든 남창우(43)씨는 “최근 2년간 서울에 동네서점이 50곳 가까이 늘었지만 지난해 4곳이 문을 닫는 등 어려운 곳이 늘고 있다”며 한숨을 쉬었다. 남씨는 조만간 폐점이 급증할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2년 전 동네서점 창업 바람이 불면서 문을 연 서점들이 많았는데 통상 2년인 부동산 계약 기간 만료가 앞으로 집중적으로 도래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동네서점이 늘어난 계기는 뭐니 뭐니 해도 2014년 말 시행된 ‘도서정가제’다. 온·오프라인 서점의 할인폭을 최대 15%로 제한하자 온라인의 ‘반값 할인’이 사라졌고, 상대적으로 동네서점에 가격 경쟁력이 생겼다. 가게 보증금, 인테리어 비용, 책값 정도의 소자본으로 창업이 가능한 점도 동네서점이 증가한 이유다.

하지만 책 읽는 독자들의 감소세는 멈추지 않았다. 우리나라 1인당 연간 독서량은 2007년 12.1권에서 지난해 9.1권으로 4분의1이 감소했다. 지난해 서점을 연 A씨는 “하루에 한 권도 팔지 못하는 날이 많다”며 “서울 시내 동네서점 중 책으로 수익을 내는 곳은 2~3곳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네서점 주인들은 카페를 겸하거나 번역 등 ‘투잡’을 하면서 근근이 버틴다. 동작구 상도동에서 대륙서점을 운영하는 박일우(40)씨는 “인건비는 고사하고 월세만 내도 다행”이라며 “같이 서점을 운영하던 아내는 다른 일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동네서점 주인 B씨는 “1년간 운영해 보니 적자만 쌓여서 따로 책 번역 일을 하고 있다”며 “서점을 차린 건지 작업실을 차린 건지 헷갈릴 때도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 서점의 마진율은 35~40%에 이르지만 소규모 서점은 25% 정도에 불과하다. 또 도서정가제의 최대 할인폭은 15%이지만 할인카드 등을 이용하면 30%까지 할인율이 껑충 뛴다. 동네서점의 경쟁력은 그만큼 낮아진다. 일부 동네서점 주인들은 책값에서 거품을 빼고 아예 할인이 불가능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서울 강동·종로·은평구, 경기 포천시, 경남 창원시, 경북 경산시, 대전시 등 여러 지방자치단체들이 동네서점 살리기에 앞장서고 있다. 강동구 관계자는 “동네서점은 누구에게나 열린 사랑방이자 사라져 가는 활자 문화를 지키는 문화 공간”이라며 “올해는 동네서점에서 지난해보다 1억원 많은 3억원어치의 책을 구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2016-02-26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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