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지방의회·교육청 극한 대립…해넘겨도 타결 ‘난망’학부모들 “살림살이 빠듯한데 추가부담까지…학부모입장부터 생각해야”
해를 넘겨서도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문제의 해결 전망은 여전히 ‘시계 제로’의 안갯속이다.누리 예산을 둘러싼 경기도의회의 여·야 충돌로 경기도가 광역자치단체 초유의 ‘준예산’ 사태를 맞으면서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장관 교체로 어수선한 교육부는 7일로 예정된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가 끝나는 대로 전열을 재정비해 시·도교육청과 협의를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 학부모들 “의식주부터 줄여야 할 판…총선서 가만 안 있겠다”
서울 노원구에서 네 살 난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는 직장맘 서모(36)씨는 누리과정 예산 부담을 놓고 정부와 지방의회, 교육청, 여·야가 벌이는 싸움에 불안하기만 하다.
직장에 다니는 처지에서 누리과정 지원금이 끊긴다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안 보낼 수도 없고, 살림은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봐도 정치권의 원만한 타결 외에 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정치적인 공방만 계속되고 있는데 영유아자녀를 둔 학부모들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 달라”고 호소했다.
4월 총선에서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들은 누리과정 예산 문제를 실질적으로 풀어줄 당과 후보에게 기울 수밖에 없다는 여론도 전했다.
서씨는 “총선을 코앞에 두고 정치권이 정말로 누리과정 예산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릴지 궁금하다”며 “만약 그렇다면 총선에서 학부모들이 가만 절대 있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올해 일곱 살(만 5세) 된 아들을 유치원에 보내는 전업주부 전모(39·서울 서초구) 씨는 “지금도 방과후과정비까지 포함해 유치원비가 매달 60만원이나 나오는데 여기서 29만원을 더 내야 한다면 당장 먹을 것부터 줄여야 할 판”이라고 토로했다.
아이 둘을 각각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보내는 전씨의 지인은 누리과정 지원이 실제로 끊기면 어린이집에 다니는 둘째는 집에 데리고 있을 생각이다.
전씨는 “우리 아이는 내년에 학교에 가기 때문에 유치원을 안 보낼 수도 없다”며 “지금도 월세에 학비로 살림살이가 빠듯한데 누리과정 지원이 끊기면 옷 사입고 여행가고 하는 부가적인 삶은 아예 꿈도 못 꾼다”며 한숨을 쏟았다.
세 살 난 쌍둥이 여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는 직장맘 이모(39·서울 영등포구) 씨도 “우린 쌍둥이라서 더 타격이 크다. 무조건 지원을 받아야 한다. 지원금이 끊기면 매월 50만원 이상을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 경기도, 초유의 준예산 사태…35만명 원아들 학부모 ‘막막’
유치원의 경우 매달 25일 교육비 지원금이 각 유치원에 지급되는 점을 고려하면 20일 내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서울, 경기 등을 중심으로 1월분부터 교육비 지원이 끊기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어린이집은 학부모가 매월 15일께 신용카드로 보육비를 결제하면 다음달 20일 이후 카드사에 보육비가 지급되는 방식이어서 1월분 보육료가 실제 정산되기까지는 50일가량의 여유가 있다.
현재 17개 시·도교육청 중 7곳은 어린이집 예산을 한 푼도 편성하지 않았고, 서울·광주·경기·전남 의회는 교육청이 편성한 유치원 지원분도 전액 삭감했다.
이런 가운데 경기도의회의 여·야 충돌로 예산안처리가 불발되면서 광역단체 초유의 ‘준예산’ 체제가 4일부터 가동되자 학부모의 불안감은 극심해지고 있다.
준예산 체제에서는 법령이나 조례에 의한 시설유지비와 운영비(인건비·일반운영비·여비 등), 법령 또는 조례상 지출의무 이행을 위한 의무경비(일반보상금·연금부담금·배상금·국고보조사업 등), 미리 예산으로 승인된 계속사업의 예산만 집행 가능하다.
이에 따라 당장 이번 달부터 누리과정 지원금 지급이 중단돼 유치원 19만8천여명과 어린이집 15만6천여명 등 원아 35만여명에 대한 보육 대란이 눈앞에 닥쳤다. 35만여명은 전국 누리과정 대상 아동의 27%나 되는 숫자다.
교육부는 일단 이준식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7일)가 끝나는 대로 누리과정 예산을 미편성한 서울·경기 등 7개 시도 교육청과의 협의를 다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교육부와 시·도 교육청 모두 학부모를 볼모로 해선 안 된다는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며 “따라서 1월 지원금이 나오는 25일 전까지 해결이 되도록 발 빠르게 나서겠다”고 말했다.
◇ 정부-시·도교육청 양보 없이 평행선…“법적 다툼 불사”
교육부는 누리과정 예산을 미편성한 시도 교육청 모두 1월 중으로 조기 추경을 편성하도록 해 1월분 지원이 끊기는 사태를 막아보겠다는 방침이다.
교육부는 앞서 지난달 29일 서울·광주·전남 교육청에 대해 해당 시도 의회에 예산안 재의요구도 하도록 했다. 교육청이 따르지 않으면 지방자치법에 따라 대법원에 직접 제소할 계획이다.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도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시·도교육감을 직무유기로 형사 고발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교육청들은 법정싸움도 불사한다는 입장과 함께, 정부·여권이 누리과정 문제를 지자체와 시도교육청에 떠넘길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예산 지원을 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무상보육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예산 여건이 열악한 시도교육청에만 보육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라는 것이다.
한 시·도교육청 관계자는 “문제 해결을 위해 무상보육을 공약했던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며 “박 대통령의 명확한 입장 표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