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제업체 과장 범행에 속수무책…인증번호 절차없는 간편결제 악용
성인사이트 4만 명 ‘소액결제 사기 사건’은 불법 수집된 개인정보를 활용한 범행이 이제 일상화되다시피 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이 사건 범행에는 신용을 생명으로 하는 국내의 대표적인 휴대전화 소액결제 대행업체 영업과장의 실적 과욕에서 비롯된 협조가 결정적이었다.
여기에 소액결제 대행업체의 시스템상 ‘허점’과 통신사의 ‘방관’이 더해지며 그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진 것으로 드러났다.
소액결제 피해액 수억원은 직접 범행한 성인사이트 운영자에게 대부분 돌아갔지만 결제업체와 통신사도 ‘수수료’라는 명목으로 10% 안팎을 챙겼다.
경찰에서 집계한 피해자는 3만7천486명에 달했다. 금액으로는 4억8천만원이다.
3천650명은 소액결제 사기를 눈치 채고 통신사나 대행업체에 환불을 요구, 돈을 돌려받아 다행히 피해를 면했다.
이번 범행은 소액결제 대행업체 직원이 도와줘 가능했다.
결제업체 영업과장 이모(38)씨는 하청업체 대표(40)를 통해 성인사이트 운영자 서모(33)씨의 부탁을 전달받았다.
이씨는 회사 개발자(문자 담당자)들에게 고객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결제확인 문자 내용을 바꾸도록 지시했다.
결제가 이뤄졌음을 알리는 정상적인 내용이 아닌 ‘초특가 대박 이벤트 9900원’ 등의 문자를 보내 마치 이벤트 당첨이나 스팸인 것처럼 꾸몄다. 문자 담당자들은 이게 사기 범행인지 알지 못했다고 경찰은 전했다.
이씨는 경찰에서 ‘실적을 올리고 싶어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이 업체의 시스템상 허점도 작용했다.
’간편결제’라는 결제 방식이 있었기에 범행이 가능했다.
보통 소비자들이 소액결제할 때는 휴대전화 문자로 보내주는 ‘인증번호 확인절차’를 한 단계 더 거친다.
그러나 간편결제 프로그램은 인증번호 없이 통신사 정보, 휴대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만 입력하면 된다. 서씨는 이것을 이용했다.
서씨는 불법 수집한 개인정보를 간편결제에 적용해 하루에 적게는 700∼800건, 많게는 2천여 건까지 소액결제해 가로챘다.
이런 방식 자체가 현재 불법은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결제해 소비자 민원이 잇따르면 결제 대행업체에서는 결제금액을 사기로 의심하고 일괄취소해 피해를 막는 보호장치는 있다.
지난 2월 28일 또 다른 결제 업체는 서씨가 운영하는 사이트에서 1만9천800원씩 5만 명의 소액결제가 시도되고 문의가 잇따르자 당일 결제 전액을 취소해 피해를 막은 사례가 그것이다.
이 업체 대표는 “사이트 운영자인 서씨에게 고객들의 문의 사항을 묻기 위해 연락했으나 연결되지 않아 결제 전액을 일괄 취소했다”고 경찰에서 밝혔다.
그러나 영업과장 이씨가 속한 대행업체는 ‘민원 건수가 일상적인 수준’이라며 직접 문의한 피해자에 대해서만 결제를 취소해줬다.
통신사들이라도 적극적으로 대처했다면 사기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지난해 9월 27일 서씨의 범행이 시작되자마자 우리나라 3대 통신사 가운데 1곳에는 이번 사기 범행을 의심하는 문의 전화가 잇따랐다.
이 통신사는 서씨의 사이트 결제 코드를 차단, 피해자가 25명에 그쳤다.
그러나 나머지 통신사 2곳은 역시 같은 시기에 비슷한 문의가 들어왔음에도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사기결제가 수개월에 걸쳐 지속되며 피해 금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데 일조한 꼴이 됐다.
통신사들은 결제 건수가 증가할수록 수수료 수입이 늘었다.
일반적으로 소액결제를 하면 결제업체와 통신사가 각 10% 안팎의 수수료를 가져간다. 9천900원을 결제하면 약 1천원씩 돌아가는 셈이다.
박민순 사이버수사팀장은 “결제 건수에 따라 사이트 운영자뿐만 아니라 결제업체와 통신사도 이득을 본다”며 “가담자들에게는 ‘땅 짚고 헤엄치며’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영업과장 이씨 같은 사람이 또 가담한다면 얼마든지 비슷한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콜센터업자 이모(37)씨는 사이트에서 불법 결제가 이뤄지는 걸 알면서도 피해자들이 문의하면 결제취소나 환불을 해줘 정상적인 업체인 것처럼 위장했다.
경찰은 서씨에게 성인사이트를 팔며 불법으로 개인정보까지 넘겨 준 또 다른 이모(46)씨를 쫓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