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운동이나 현실비판적인 학습행위 죄 성립 안돼”
부산지역 최대 공안사건인 이른바 ‘부림사건’의 재심은 영화 ‘변호인’이 흥행을 하면서 주목을 받았다.부림사건은 1981년 공안 당국이 사회과학 독서모임을 하던 학생과 교사, 회사원 등 22명을 영장 없이 체포해 20∼63일간 불법 감금하고 고문해 국가보안법, 계엄법, 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한 공안사건이다.
부림사건은 ‘부산의 학림사건’이라는 뜻에서 붙여진 명칭이다.
같은 시기 전민노련·전민학련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치안본부 대공분실에 끌려가 온갖 고문과 구타를 당한 학림사건 피해자들도 최고 무기징역 등을 선고받았으나 2012년 재심을 청구해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바 있다.
부림사건 피고인들은 1977년부터 1981년까지 반국가단체 등을 찬양 고무하거나 그러한 목적으로 서적을 갖고 있었고 계엄령에 금지된 집회를 하거나 사회적 불안을 야기할 우려가 있는 집회에 참가했다는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19명은 법원에서 징역 1∼7년형을 선고 받아 1983년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됐다.
부림사건 피해자들은 이후 1990년대 들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았다.
김재규(65)씨 등 부림사건 피해자들은 1999년 한 차례 재심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2006년 5.18 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을 근거로 재항고해 2008년 대법원으로부터 계엄법 위반 혐의에 대해 재심판결을 받아냈다.
2009년 부림사건 피해자 7명에 대한 재심에서 법원은 게엄법 위반과 집시번 위반에 대해서만 무죄 또는 면소 판결했다.
당시 재심 재판부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대법원이 파기하지 않아 따로 결정할 수 없다면서 피고인들에 대해 각각 집행유예 2년∼징역 1년6개월과 함께 자격정지 8개월∼1년6개월을 선고했었다.
13일 부산지법에서 진행된 부림사건 재심 청구자 5명에 대한 선고는 부림사건 피해자들이 민주화운동으로 인정받은 이후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한 법원의 첫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부산지법 형사항소2부(한영표 부장판사)는 경찰의 불법구금과 자백강요로 인한 임의성 없는 심리상태가 검찰 수사단계에서도 계속됐다며 검찰이 제시한 피고인들의 진술서와 압수물이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단해 국가보안법과 반공법 위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국가보안법과 반공법은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줄 명백한 위험성이 있는 경우에 적용되기 때문에 피고인들의 학생운동이나 현실비판적인 학습행위만으로는 이 죄가 성립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가지고 있던 서적에 대해 이적성이 있다는 내용의 감정서를 검토한 결과, 그러한 사정만으로 국가의 존립 등을 위협할 정도라고 보기 어렵다며 서적의 이적성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1981년 부림사건으로 유죄를 선고받은 19명 중 이날 무죄를 받은 나머지 14명도 법원에 재심을 청구할 것으로 보인다.
또 고문과 구타 등으로 조작된 공안사건으로 드러나 무죄를 선고받음에 따라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전망이다.
이날 무죄를 선고 받은 고호석(58)씨는 “재판부의 현명하고 합리적인 판단에 감사하고 이 사건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여준 언론과 국민들께 감사하다”며 “오늘 무죄 선고는 33년 전 우리들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변호했던 노무현 변호사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