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행 7일째 검거…현장 속 승용차가 단서경찰, 엉뚱한 인물 수배로 초동수사 혼선
지난 7일 오후 전북 전주시에서 백화점을 폭파시키겠다고 협박한 백모(45)씨가 범행 일주일째인 13일 경찰에 붙잡혔다.백씨는 지난 7일 오후 3시께 한 방송사 기자에게 미리 제보를 한 뒤 전주시 완산구 효자동 효자공원묘지 주차장에서 모닝 승용차를 폭파시키고 “롯데백화점 전주점을 폭파시키겠다”며 5만원권 10㎏(4억5천만원 상당)을 요구했다.
백씨는 협상금을 받으려고 이날 접선 장소를 세 차례나 바꾸면서 방송기자와 접촉을 시도했지만 경찰이 따라붙은 사실을 알고 행적을 감췄다가 이날 자신의 집 앞에서 검거됐다.
◇의문의 전화로 시작된 ‘백화점 폭파 협박’
사건은 6일 오후 1시께 전북 지역의 한 언론사에 제보전화가 걸려오면서 시작됐다.
이 제보자는 “제보할 것이 있으니 만나자”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로부터 하루가 지난 7일 오후 2시30분께 제보자인 백씨는 다시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자살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데 사이트가 폐쇄됐다. 회원들 간에 음모를 꾸미고 있다. 만나서 이야기하자”며 “촬영장비를 가지고 약속 장소(전주 효자공원묘지 주차장)로 나오라”는 말을 남겼다.
제보 전화를 받은 기자는 경찰과 함께 약속 장소에 나갔고, 제보자의 지시대로 약속 장소에 세워진 파란색 모닝 승용차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이 승용차가 폭발했다. 이 차량은 4일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에서 도난된 것으로 밝혀졌다.
승용차가 폭발한 뒤 다시 전화를 건 백씨는 “우리 회원들이 백화점에도 폭발물을 설치했다. 경찰에 신고하거나 시민이 대피하면 폭발시키겠다. 5만원권으로 10㎏를 준비하라”고 재차 요구했다.
◇긴박했던 대피 상황
협박범이 지목한 롯데백화점 측은 ‘백화점 안에 있는 고객들을 대피시키면 폭발물을 터뜨리겠다’고 위협함에 따라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질 것을 우려, 오후 5시까지 대피 안내방송을 하지 못했다.
당시 백화점에는 영화 관람객까지 합쳐 모두 3천∼4천명이 있었다.
경찰과 협의한 백화점 측은 1시간 30분가량이 지난 오후 5시께 ‘백화점 안에 비상상황이 발생했으니 대피하라’는 방송을 내보냈다.
또 자체 매뉴얼에 따라 암호를 사용해 직원들에게 긴급 상황을 전파했다.
7층 롯데시네마 영화관도 상영을 전면 중단하고 고객들을 대피시켰다. 경찰도 구급차와 소방차 등을 동원, 만일의 사태에 대비했다.
갑작스런 대피 방송에 한가롭던 백화점 안은 일순간 술렁이기 시작했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달려온 고객들로 1층 4개의 출입구는 한때 인산인해를 이뤘다.
영문도 모른 채 밖으로 몸을 피한 고객들은 그제야 폭발물 협박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부 중년 여성들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털썩 주저앉기도 했다.
김모(61·주부)씨는 “처음에는 건물이 붕괴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빠져나오는 2분이 20년쯤처럼 길었다”면서 “다리가 후들거려 진짜 죽는 줄 알았다”며 긴박했던 순간을 전했다.
백화점 측은 고객들이 모두 빠져나가자 출입구를 봉쇄했다.
이후 폭발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오후 6시께 출입을 재개했다가 고객의 안전을 우려, 평소보다 1시간 빠른 오후 7시30분께 영업을 종료했다.
◇협박범, 장소 옮겨가며 ‘줄다리기’
백씨는 협상금을 받기로 한 약속 장소 근처에서 경찰과 방송 기자의 동태를 살피며 ‘심리전’을 펼쳤다.
협박범이 협상금을 받기로 한 장소는 전주 롯데백화점, 전주세무소 인근 한 병원, 전주역 등 3곳.
당시 협박범은 모든 약속 장소 인근에서 경찰과 제보를 받은 기자의 동태를 살핀 것으로 드러났다.
협박범에게서 처음 협상금 전화가 온 것은 7일 오후 5시30분께.
그는 협상금을 준비해 백화점 여직원 한 명에게 들게 하고 백화점 앞에 도로에 서 있는 흰색 마티즈 승용차에 실으라고 요구했다.
경찰과 백화점 측은 약속대로 협상금을 준비했고, 오후 5시45분 약속된 차량에 돈을 전달하는 척하며 운전자를 검거했다.
하지만 이 운전자는 협박범의 전화를 받고 나온 퀵서비스 기사였고, 협박범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다시 걸려 온 전화에서 협박범은 “왜 경찰을 데리고 나왔느냐”며 “너희와는 이야기 못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전화 내용으로 봐서 백씨는 약속 장소 근처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본 것으로 추정된다.
협박범은 그 뒤로 약속 장소를 전주세무소 인근 한 병원, 전주역 등으로 변경하며 추이를 살폈다.
협상범의 요구에 따라 처음 제보 전화를 받은 기자가 협상금을 든 채 택시를 타고 약속 장소에 나갔지만 협박범은 의심의 끈을 놓지 않고 끝까지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이 기자에 따르면 협박범은 택시로 이동 중에 전화를 걸어와 “경찰이 따라붙은 것 같은데 내가 당신을 만날 수 있겠느냐”는 말을 남기고 오후 7시40분께 연락을 끊었다.
◇일주일 추적해 검거
사건이 발생 후 경찰은 용의자의 신원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협박범의 뒤를 쫓았다.
확실한 증거도 없는 데다가 설 연휴가 시작돼 수사는 지지부진하게 진행됐다.
경찰이 확보한 유일한 단서는 차량이 폭파된 효자공원묘지 인근에서 찍힌 범인으로 추정되는 40∼50대 남성의 인상착의가 전부였다.
그러던 중 경찰은 사건 발생 7일째인 13일 오전 0시께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에서 백씨를 검거했다.
백씨는 경찰의 수사망이 좁혀지자 도주하기 위해 짐을 싸 자신의 집에서 나오던 중이었다.
경찰은 지난 7일 범행 현장을 배회하던 산타페 승용차의 소유주를 추적해 용의자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이 차량은 용의자가 모닝 승용차를 폭파시킨 효자공원묘지와 협박 전화를 건 덕진동의 한 공중전화 박스 주변에서 잇따라 발견됐다.
경찰은 이 차량을 추적, 용의자 백씨의 집 앞에 주차된 것을 확인하고 잠복, 백씨를 검거했다.
백씨는 당시 도주하려고 짐을 싸 차량에 옮겨싣던 중이었으며 차량 소유주는 백씨의 매형인 이모(52)씨로 확인됐다.
또 폐쇄회로(CC) TV를 분석한 결과 용의자 백씨가 훔친 모닝승용차로 이동하면서 또 다른 1명의 일행과 동행한 사실을 확인하고 그가 공범인지도 캐고 있다.
백씨는 강도와 특수절도 등 전과 19범이며 실제 자살사이트 운영자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백씨가 범행 사실은 부분적으로 인정했으나 동기 등에 대해서는 ‘변호사를 선임하기 전에는 이야기할 수 없다’며 입을 다물고 있다”고 전했다.
◇수배전단과 다른 제3의 인물
백씨는 경찰이 사건 초기에 공개수배했던 인물과는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사건 직후 모닝 승용차 폭파 현장에서 찍힌 40~50대에 검은색 등산복과 갈색 계열 가방을 멘 인물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공개 수배했다.
하지만 수배 전단 인물과 달리 검거된 백씨는 키가 제법 크고 몸도 건장해 경찰이 수사 초기 ‘헛다리’를 짚은 것으로 밝혀졌다.
◇ 범행 계획
백씨는 범행 후 매형 명의의 스마트폰으로 ‘롯데 협박범’, ‘축제라이브’(모닝 승용차를 훔친 술집) 등을 수차례 검색했으며, 자신의 컴퓨터로 ‘무선송수신기’(차량 폭파에 사용 추정), ‘중국밀항’, ‘백만원 무게’ 등의 단어도 검색했다.
그는 단순한 협박이 아님을 알리려고 백화점에서 3㎞ 정도 떨어진 효자공원묘지 주차장에 주차된 모닝 승용차를 폭파시키고 방송기자를 불러 이를 촬영케 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불에 탄 차량은 4일 전주시 완산구 평화동에서 도난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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