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명 거론 비난한 김기덕 ‘아리랑’ 엇갈린 반응

실명 거론 비난한 김기덕 ‘아리랑’ 엇갈린 반응

입력 2011-05-16 00:00
수정 2011-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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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덕 답다’ 동정론 vs. ‘섣부른 행동’ 비판 맞서

김기덕 감독의 신작 ‘아리랑’이 지난 13일(이하 한국시간) 칸 영화제에서 공개되면서 파문이 격화되고 있다.

국내 영화인들을 실명으로 거론한데다 정부와 한국영화 산업계 등을 무차별적으로 비판한 데 따른 것으로, 국내 영화인들과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김 감독에 대한 동정론과 함께 섣부른 행위라는 엇갈린 반응이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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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김기덕
영화감독 김기덕


일부 누리꾼들은 “참으로 김기덕스러운 영특한 복수” “당신을 괴롭히는 한국을 떠나 유럽에서 당신의 영혼을 마음껏 발산하라” “’아리랑’, 부도덕한 사회에서의 도덕적 인간 해프닝” “씁쓸한 사회적 현실에 상처받은 그가 측은해 보인다”라는 입장을 보이며 김기덕 감독을 지지하고 나섰다.

반면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은 진정 비주류라고 할 수 있을 것인가?” “한 사람의 말만 듣고 평가하기는 이르다”라는 신중한 입장에서 “김기덕이 한국 영화계의 얼굴이라면, 다시는 한국영화 따윈 안 볼거다”라는 극단적인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김기덕 감독의 변화막측한 행보도 칸에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 13일 사진기자들 앞에서 태권도시범을 보이며 해맑은 모습을 보였던 그는 프랑스의 카날 방송사와 한 인터뷰에서는 돌연 ‘한 오백 년’과 ‘아리랑’을 번갈아 부르며 서럽게 울기도 했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보거나 어떤 내용인지를 전해 들은 영화인들은 심정적으로 이해가 가지만 미성숙한 행동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화인은 15일 “자기 위안을 위해 여러 영화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이라고 비판했고, 또 다른 영화인은 “그렇게까지 실명을 거론해서 거명된 감독에게 국제적인 망신을 줄 필요가 있을까”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일부 영화인은 “역시나 표현력은 뛰어나지만, 사고에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으며 또 다른 이는 “한풀이했다”라는 다소 동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외신들의 반응도 엇갈리고 있다.

칸영화제 기간 매일 발간되는 일일소식지인 ‘스크린데일리’는 “김기덕 감독 홀로 출연하는 의심할 바 없는 궁극의 작가주의 영화”라고 평가했다.

스크린데일리는 김기덕 감독이 과거에 거둔 성취, 자기 자신과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에 대한 중요한 질문 등에 대해 질문하는 작품이라고 소개하면서 이 영화에서 제기하는 문제는 정당하며 자신을 양심적인 작가라고 여기는 영화작가라면 마땅히 제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썼다.

반면 데일리인 ‘버라이어티’는 자신의 내면을 치료하기 위한 영화라고 소개하면서도 “괴짜 팬조차도 보기에 따분한 영화”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제가 잠을 자고 있는데 칸이 저를 깨웠습니다.이 영화는 제 자화상 같은 영화입니다.13년 동안 15편의 영화를 만들면서 그 시간을 되돌아 보기 위해 (이번 영화를) 만들었습니다.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해 저 자신에게 하는 질문입니다.”세계 3대 국제영화제 중 베를린영화제와 베니스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김기덕 감독.

13일(이하 현지시간) 칸영화제 공식부문인 ‘주목할 만한 시선’ 초청작이 상영된 프랑스 칸의 드뷔시관에서 김기덕 감독은 자신의 신작 ‘아리랑’에 대해 이렇게 소개하며 오랜 침묵을 깼다.

그는 데뷔작 ‘악어’(1996)부터 ‘비몽’(2008)까지 15편의 영화를 만들며 각종 국제영화제를 석권한 국내를 대표할 만한 감독이었다.

인간의 은밀한 욕망을 밀도 깊게 그린다는 상찬과 여성을 남성의 시각에서 도구화한다는 악평 사이에서 서성이긴 했지만 그는 거의 매년 1편씩을 꾸준히 만들어온 ‘왕성한 창작자’였다.

그러나 2008년 ‘비몽’ 이후 작품활동을 돌연 중단했다.그가 시나리오를 쓰고 제자인 장훈 감독이 연출한 ‘영화는 영화다’를 놓고 배급사와 소송 전을 벌이며 구설에 올랐다.김기덕 사단으로 분류되는 장훈 감독이 메이저 영화사와 계약하면서 그를 배신했다는 이야기가 나돌기도 했다.급기야 작년 연말에는 김기덕이 폐인이 됐다는 뜬소문까지 번졌다.

도대체 이 유능한 작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진출한 그의 열여섯 번째 장편영화 ‘아리랑’은 왜 김기덕 감독이 그간 영화를 만들 수 없었는지를 스스로 자문하고 영화를 통해 자신이 받았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강원도의 한적한 한 시골마을.

머리가 긴 50대 남자가 텐트 문을 열고 나온다.개울가로 가 세안을 하고 다시 돌아와 식사한다.가끔 간식으로 밤을 까먹는다.고적한 산골마을로 찾아오는 이는 한 명도 없다.오로지 도둑고양이만이 유일한 친구인 양 가끔 그의 오두막에 들를 뿐이다.

영화는 시작 후 십여 분간 대사가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커피 내리기,세안하기,밥하기 등 한 남자의 일상을 묵묵히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길고 긴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이 남자의 입에서는 속사포와 같은 정제되지 않은 언어들이 쏟아진다.그 말 속에는 회한과 증오,그리고 자기 모멸감 같은 어두운 삶의 조각들이 무질서하게 뒤섞여 있다.

‘아리랑’은 다큐멘터리인지 드라마인지 판타지인지 장르가 불분명한 영화다.김기덕 감독은 자신,또 다른 자아,자신의 그림자,그리고 이들을 지켜보는 감독 등 1인 3역을 소화했다.

황량하고 소슬한 삶의 터전인 오두막과 함께 영화를 구성하는 것은 그의 거친 육성,배신한 인간들에 대한 상처로 뒤범벅된 언어다.

어떤 관계는 고인 물처럼 시간과 함께 썩어간다는 것을,그리고 자본의 유혹 앞에 인간들이 쌓아온 정이라는 것은 순식간에 배덕으로 치닫는다는 것을 영화는 김기덕 감독의 육성으로 보여준다..

“사람이 오면 가는 날도 있는 거야.널 존경한다고 찾아와서 너를 경멸하며 떠날 수도 있는 거야.우정을 끝까지 선택하는 사람은 없어.세상이 그런 거야.네가 영화를 통해 수없이 얘기했잖아.네 영화의 주인공이 네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워할 것 같아.”김기덕 감독은 ‘영화는 영화다’ 이후 2편의 영화를 장훈 감독과 하기로 했지만 “장 감독이 자신도 모르게 메이저와 계약을 했다”고 주장한다.장훈 감독은 김기덕 감독이 각본을 쓴 ‘영화는 영화다’를 통해서 장편 데뷔했으며 546만명을 모은 송강호·강동원 주연의 ‘의형제’를 통해 스타급 감독으로 부상한 젊은 연출자다.

김 감독은 또 그의 영화에서 자주 악역으로 등장했던 어떤 배우를 겨냥한 듯 “악역 잘한다는 건 내면이 그만큼 악하다는 거야”라고 통렬히 비판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배신자들,너 같은 쓰레기들을 기억하는 나 자신을 죽여버리겠다,악마들이 영화를 못만들게 했다” 등 날 것 그대로의 언어들이 거침없이 스크린을 유영한다.

“사람에 대한 상처와 배신감” 외에 그가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비몽’을 찍으면서 배우가 죽을 뻔했던 ‘아찔한 기억’ 때문이다.

‘비몽’ 촬영 중 자살하는 장면을 찍던 여배우가 죽을 뻔한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다.

“사고였잖아 사고,내가 사다리 타고 올라가 구했잖아.그럼 된 거 아니야? 그때 다시는 영화 찍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나?”이 밖에도 영화는 인간 김기덕에 대한 연민도 녹였다.어렸을 적부터 또래와 잘 어울리지 못했던 그는 친구도 별반 없고,전자제품 수리공,자동차 정비공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지만 영화감독만큼 존경받은 직업은 없다고 말한다.

“나는 외로움이야….영화감독만큼 행복 받고 존중받은 직업은 없어.”“영화를 어떻게 찍는지,배우 연기를 어떻게 가르치는지 까먹었다”는 김기덕 감독은 “레디 액션”이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하며 영화를 다시 만들겠다는 뜻을 천명하기도 한다.

“2008년부터 3년째 영화를 안 만드는 거야? 그러니까 폐인됐다는 기사가 나오잖아.사람들도 안 만나고,너 왜 이렇게 살고 있어.사는 게 이게 뭐야? 네가 개야?…네 영화 기다리는 사람 많아 뭘 찍어도 찍어라.”그리고 고백한다.“무엇인가를 찍어야만 행복한 나 자신을 찍고 있다”고.

영화 ‘아리랑’은 김기덕 감독이 영화에서 밝혔듯 삶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의미한다.그는 삶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오르내리면서 계속 영화를 찍고 싶다는 뜻을 피력한 셈이다.

영화가 끝난 후 드뷔시극장에서는 약 3분의 기립박수가 이어졌다.주목할 만한 시선에 진출한 영화 가운데 이러한 기립박수를 받은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김기덕 감독은 영화가 끝난 후 인터뷰를 청하는 기자들에게 단 한마디 말만을 남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제가 하고픈 말은 영화에 다 있습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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