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락씨 이름 꺼내자 영업정지도 면해”

“이후락씨 이름 꺼내자 영업정지도 면해”

입력 2010-09-16 00:00
수정 2010-09-16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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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음식점 1호 업소로 57년여간 영업한 종로구 익선동 오진암(梧珍庵)은 1970∼1980년대에 삼청각, 대원각과 함께 서울의 ‘3대 요정’으로 꼽혔다.

한때 요정 정치의 근거지였던 오진암은 특히 1972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과 북한 박성철 제2부수상이 만나 7.4 공동성명을 논의한 장소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탔다.

연합뉴스는 이곳에서 1969년부터 1994년까지 줄곧 종업원으로 근무하며 후반부에 지배인으로 일했던 김석웅(70)씨를 16일 만나봤다.

그는 오진암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데 대해 “보전이 돼야 했는데 하루아침에 사라져 많이 아쉽다”고 소회를 밝혔다.

김씨는 오진암에 대해 세간에 잘못 알려진 게 많다고 지적했다.

요정으로 문을 열기 전 오진암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 영화계 대부였던 임화수가 살던 집으로 알려졌으나, 실제 임화수의 집은 오진암 왼편의 종로 오피스텔 건물 자리에 있었다고 했다.

또 1953년 오진암을 인수해 최근까지 이곳을 운영하다 건강 문제로 폐업한 것으로 알려진 주인 조모(92)씨는 건물주일 뿐 실제 운영주는 매번 바뀌어 총 6~7명이라고 했다.

김씨는 “주인 조씨는 가게 주인에게 세를 줬을 뿐 (운영에) 관여하지 않았다. 주인들은 대개 몇년씩 맡아 돈을 잘 벌어 나갔고, 2000년부터 10년간 운영한 마지막 주인만 돈을 못 벌고 나간 걸로 안다”고 말했다.

야당 국회의원 시절 김영삼 대통령과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도 가끔 들르는 등 정계, 재계 등 고위 인사들이 자주 찾은 곳인 만큼 뒷얘기도 무성했다.

한 기업 총수가 오진암을 찾기 전 비서가 차에 자기 회사에서 만든 생수, 컵 등을 가득 싣고 와서 미리 눈에 띄는 곳마다 그 회사 제품을 배치해뒀다고 한다. 주인은 “공짜로 오는 것이니까 손해볼 것 없다”며 반겼다고 한다.

1972년 전후로 한 주에 한번 꼴로 오진암을 찾을 정도로 단골이던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먹다 남긴 양주를 한 직원이 기념으로 장롱에 보관했다가 당시 외제품 판매규정에 걸려 영업정지를 당할 뻔 한 일도 있었다.

이때 주인 조씨가 “(단골) 이후락씨가 와서 ‘왜 문 닫았나’ 물으면 책임지라”고 하자 영업정지가 벌금으로 낮아졌다는 이야기가 주변에 퍼졌다.

7.4 공동성명 등 굵직한 일 때문에 주요 인사들이 오진암을 찾았을 때 종업원들은 미리 방문 사실을 전해들었으나 ‘입만 뻥끗하면 조상까지도 알아서 하라. 절대 비밀로 하라’는 경고와 함께 강도 높은 교육을 받기도 했다.

오진암은 최전성기인 1970∼80년대에 종업원은 70∼80명, 하루 손님 수도 최대 70∼80명에 달했다. 하지만 지난 7월말 오진암이 문을 닫을 때 남은 종업원은 6명가량, 하루 손님은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마지막 주인은 2006년 이후로 줄곧 심한 경영난을 겪었으며 최근 1년여간 집세도 밀리고 종업원이 점점 떠났다고 한다.

김씨는 “2000년까지는 운영할 정도가 됐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성매매 단속을 강화한 이후 서울 시내의 요정이 다 죽고 장사가 잘 안 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관광요정이 10개 있었는데 오진암이 1호였다. 그때 관광 활성화로 일본인도 많이 들어오고 내수 경기가 풀려 손님이 많았다. (최전성기에 요정이) 200개가 넘었는데 지금은 강남 3곳, 강북 2곳뿐”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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