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했던 24시간 정부 대응
북한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행사 취재를 위한 한국 기자단이 23일 방북하기까지 정부는 긴박하게 움직였다. 한국 취재진 8명은 전날 중국 베이징에서 대기하면서도 남북 당국 간 물밑 접촉 결과를 기다리며 북측에 대한 직접 접촉을 삼갔다.북한은 지난 22일 오전 남측을 제외한 미국, 중국, 러시아, 영국 등 외신 취재진을 서우두공항에서 전용기 편으로 방북시키는 과정에서 한국 취재진의 방북에 대한 여지를 남겼다.
●베이징 주재 北 기자 “좋은 소식” 암시
서우두공항 현장에 안내를 위해 나왔던 베이징 주재 북한 노동신문 원종혁 기자는 한국 취재진에게 전용기 편으로는 불가능하지만 남측 취재진의 방북이 가능할 것이라는 것을 암시했다.
원 기자는 “날짜도 23~25일이고 날씨를 보고 하기 때문에 지금 이 비행기에 못 탄다고 해도 내일이든 (한국 기자가 갈) 가능성은 있다”며 “지금 당장은 불가능한 것은 뻔한 것이고 우리야 파격적으로 하니까 제가 보기에는 희망을 품고 내일까지 기다려 보면 좋은 소식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북한 기자가 개인적인 의견을 외신 기자들에게 말한다는 것은 금기사항인 만큼 이 같은 발언의 배경에 남북 당국 간 비공개 접촉의 진행 상황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남북 간 물밑 접촉이 본격화된 것은 지난 16일 북한이 ‘맥스선더’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문제 삼으며 남북 고위급회담을 무기 연기되면서다. 북측은 이후 18일부터 한국 취재진의 방북 명단 접수를 거부하며 한국을 제외한 외신 취재진의 방북 절차만을 진행했다. 청와대는 남북 관계 경색 국면에서 남북 간 모든 채널을 동원해 북한의 의중을 파악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서훈 원장·김영철 통전부장 라인 접촉”
결국 남북 간 공식 창구인 판문점 연락채널을 통한 소통이 한계에 부딪히면서 서훈 국가정보원장과 김영철 통일전선부장 라인의 물밑 접촉이 이뤄졌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대북 소식통은 “그런 국면을 풀어내는 것은 통일부가 절대 못하는 일”이라며 “서 원장과 김 통전부장 라인이 접촉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정부 관계자는 “비핵화 국면인 현 상황에서는 남북 간 공식 창구보다 물밑 접촉이 더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22일 오전 외신 기자단만을 태운 북한 고려항공 전세기가 원산으로 향하면서 정부는 통일부 장관 명의의 유감 표명과 함께 북측의 긍정적 조치를 촉구했다. 그러면서도 북측이 공약한 비핵화의 초기 조치인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가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북·미 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를 돕겠다는 뜻을 재차 밝혔다.
일각에서는 남북 간 물밑 접촉뿐 아니라 22일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뉴욕 채널’을 통한 접촉이 이뤄졌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정부는 이 과정에서 한·미 간 사전 협의를 통해 정부 수송기를 통한 방북 절차를 마치기도 했다. 정부는 이후 22일 오후 9시 30분쯤 북측에 재차 방북 명단을 제출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23일 새벽 이뤄진 한·미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북측도 긍정적인 응답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2018-05-24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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