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살 명령’ 되묻는 北교신… 軍, 손 놓고 듣고만 있었다

‘사살 명령’ 되묻는 北교신… 軍, 손 놓고 듣고만 있었다

손지은 기자
입력 2020-09-29 21:26
수정 2020-09-30 00:14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공무원 피격 당시 ‘北 지시’ 정황 파악
北지휘관, 상부서 시신 훼손 지시받아
軍, 기민한 대처 없이 文에 늑장 보고
靑 “실시간 감청 오보… 첩보 수준 상황”

이미지 확대
29일 오전 해양경찰청 회의실에서 윤성현 수사정보국장이 ‘서해 소연평도 피격 공무원 사건’ 관련 중간 수사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날 해경은 서해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됐다가 북한군 총에 맞아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씨가 월북을 시도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수사 결과를 내놨다.  뉴스1
29일 오전 해양경찰청 회의실에서 윤성현 수사정보국장이 ‘서해 소연평도 피격 공무원 사건’ 관련 중간 수사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날 해경은 서해 소연평도 해상에서 실종됐다가 북한군 총에 맞아 숨진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씨가 월북을 시도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수사 결과를 내놨다.
뉴스1
지난 22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해상에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씨가 북한에 사살될 당시 북한군 보고 및 지시에 관한 정황을 우리 군이 감청 정보를 통해 비교적 상세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북측 현장 지휘관은 상부로부터 사살 지시를 받고 지시 내용을 되묻기도 했으며 ‘시신 훼손’ 역시 지시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국회 국방위원회와 정보위원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군은 이씨가 서해 등산곶 인근에서 북한 선박에 발견된 시점인 22일 오후 3시 30분 전부터 북한군의 교신 내용을 감청을 통해 확보했다. 군은 이씨가 북측에 월북 의사를 전달한 사실을 북한군 내부 교신을 통해 구체적으로 확인했다고 한다. 근거리에서 대화가 오간 것으로 파악되는 만큼 이씨가 ‘80m 밖에서 대한민국 아무개라고만 얼버무렸다’는 북측 통지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군은 판단하고 있다. 이날 군에서 자료를 받아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 해양경찰도 “북쪽이 이씨만이 알 수 있는 이름과 나이, 고향, 키 등 개인 신상정보를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정황상 당시로선 북측의 구조 의도가 비교적 뚜렷해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오후 9시를 넘어 상황이 바뀌었다. 북한 해군사령부에서 현장으로 사살 지시가 내려왔고, 이에 현장 지휘관(경비정 정장)은 지시 내용을 되물어 재확인했다. 이후 오후 9시 40분쯤 사살했다는 보고를 해군사령부에 올렸다. 한 국방위원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밑에서 의아하니 다시 물어보는 정황이 있다고 (국방부로부터) 보고받았다”고 전했다. 이 부분도 총격을 경비정 정장이 결정했다는 북측 주장과 배치된다.

군은 또 북측이 상부 지시에 따라 시신을 불태운 정황도 포착했다. 또 다른 국방위원은 통화에서 “해군 장교가 해군 사령관의 지시로 시신을 훼손했다는 것까지 보고받았다”고 전했다. 북한은 부유물만 태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군은 감청 정보에 ‘사살’이란 단어가 직접적으로 쓰이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우리 군이 획득한 첩보에서 ‘사살’을 직접 언급한 내용은 없다”며 “단편적 첩보를 종합 분석해 추후에 관련 정황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사살 지시를 확인하는 정황까지 포착했다면 군 당국이 더 기민하게 대처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즉각 보고되지 않은 점도 논란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는 “당시 군에서 마치 휴대전화 통화하듯 생생하게 ‘북한 측의 사살 명령을 듣고 있었다’는 보도는 전적으로 오보”라며 “감청 자료에는 완결된 문장이 아니라 수많은 공백이 있었고, 조각난 단편들이 첩보 수준으로 존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밤새 신빙성을 분석한 결과 유의미한 정보로 판단돼 (23일 오전) 대통령에게 보고가 이뤄진 것”이라고 덧붙였다.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2020-09-30 1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