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韓정부, 정책전환 신중해야…포퓰리즘 경계 대상”
도널드 트럼프 미국 신행정부 출범으로 격화될 것으로 보이는 미중 갈등에 대비해 우리 외교가 다양한 시나리오와 대응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18일 조언했다.전문가들은 한미동맹의 미래에 대해서는 일정 수준 변화는 있더라도 굳건한 동맹은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 우선주의나 동맹국에 대한 요구 강화는 우리가 충분히 대응해나갈 수 있는 사안이라고 낙관했다.
전문가들은 아울러 우리 외교가 특정 강대국에 의존하지 말고 다층적 네트워크를 구성해야 하며, 우리만의 외교적 자산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나갈 필요도 있다고 당부했다.
다음은 트럼프 시대에 대비한 외교·국제정치 분야 전문가들의 제언이다.
◇ 윤덕민 국립외교원장
트럼프 신행정부는 지금까지의 미국 정부와 다른 모습을 보인다. 세계 리더로서 지위보다 자국 이익을 우선한다. 지역 정세나 통상, 방위비 분담 등에서 변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한미동맹을 중시하겠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우리의 한미동맹에 대한 기여도가 높은 측면도 있다. 여기에 북핵 문제를 최우선으로 다루겠다는 의지도 강한데 이 사안은 한국과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한미동맹의 기본 틀 차원에서 큰 문제가 야기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지역적으로 트럼프가 중국 때리기에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 강한 미국을 내세우며 중국을 압박하는데, 그런 차원에서 북한만을 겨냥하기보다 지역 차원에서 한국의 협력을 구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처럼 미국과 중국 사이 운신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동북아 균형자’나 ‘미중간 병행’ 등을 이야기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중국은 중화질서를 복원하겠다는 의도가 강하고 미국은 그런 도전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만약 우리가 한미동맹 약화 전략을 택하면 상황이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한미동맹은 중국과의 관계를 관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지렛대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 문제로 바라볼 사안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주변국과의 다양한 네트워크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중국이 큰 나라이지만 주변에 다른 힘 센 나라가 많다. 한미동맹, 중국과의 긴밀한 협력과 함께 인도, 러시아, 일본, 호주 등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중층적으로 우리 안전과 이익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우리 외교의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우리 국내정치 상황이 위험 요소가 될 수도 있는 만큼 관리가 필요하다. 트럼프 정부는 오바마 정부처럼 한국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바탕으로 한미관계를 중시하기보다 미국 이익을 중시하고 단기적 성과에 집착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우리의 국민감정이 나빠지면 한미관계가 악화할 수도 있다.
◇ 김성한 전 외교부 차관(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전체적으로 한미관계는 도전 요소도 있지만, 연착륙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트럼프 정부 안보 정책을 대표하는 슬로건은 ‘힘을 통한 평화’다. 신고립주의는 통상 분야에 한정되는 것 같고 외교·안보에서는 동맹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세계 각지의 동맹국, 유사동맹국 보유가 미국을 떠받치는 중요한 기둥의 하나임을 인식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한 동맹의 하나인 한미동맹의 중요성은 변함없을 것이며, 오히려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동맹 비용을 공정하게 분담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보고 있고, 그런 차원에서 방위비 분담금 문제나 전략 자산 전개 시 비용 등은 동등한 부담에 근접한 수준으로 미국이 요구할 개연성이 높아졌다. 전작권 문제와 관련해서도 비용을 지불하라는 협상가적 접근법을 미국이 취할 수 있다.
우려되는 부분은 ‘하나의 중국’ 원칙과 한미동맹의 관계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들 수 있다는 트럼프의 생각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러시아와 관계를 개선하고, 역내 문제는 물론 미중 통상 관계의 해결을 위한 하나의 레버리지로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흔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상황에 남중국해나 북핵 문제와 하나의 중국 원칙이 연계될 경우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느냐가 어려운 문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사전에 대비책이 필요하다. 하나의 중국 원칙이 언제 어떤 문제와 연계돼서, 미국이 우리에게 어떤 기대감을 갖고 원칙을 흔들지 나름의 시나리오를 갖고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리는 한미동맹을 북한 문제에 한정하고 있지만, 미국 조야는 동맹이라면 중국이나 러시아와 부딪히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할 때 미국 편을 확실히 들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
국내 정치적 차원에서는, 우리 대선 후보들도 한미관계가 어려워지면 외교·안보 정책을 순항시키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여러 정책 추진에서 조심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포퓰리즘 유혹에 사로잡혀 자칫 국익을 그르치는 상황이 빚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여야 후보 막론하고 국익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 김흥규 아주대 교수(중국정책연구소장)
무엇보다도 현 정부가 차기 정부에 부담을 주는 행위를 자제해야 한다. 차라리 복지부동을 더 권고할 만한 상황이다. 대한민국의 핵심 이익은 국민의 물리적 생존을 담보하는 안보 이익과 국민을 먹여 살릴 경제·민생 발전 이익을 포함한다. 안보의 기초는 경제이고, 경제 역량 없이는 국방이나 한미동맹도 지탱할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한국의 안보 이익은 거의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고 있고, 경제 이익은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급하게 사드 정책을 추진하기보다는 우선 상황의 변화를 면밀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 중국, 북한, 일본 모두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불확실성에 대비하면서 관망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우리 역시 가늠할 수 없는 변수가 존재하는 만큼 시간을 두고 상황이 명료해지기를 기다리면서 관찰할 필요가 있다. 또 중요한 결정을 조급하게 추진하지 말아야 한다. 의회와 정부 간 숙의 과정을 거치는 시간을 갖는 게 현재로써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현재 국민적으로 분출되는 에너지를 외교에 활용해 우리에게 불리하게 다가오는 압박을 완화하는 계기로 만드는 현명함도 필요하다.
실무적으로는 사드 배치와 용도를 한반도에 한정 짓는 프레임을 유지하고, 이를 제도화하는 것이 대안이다. 미국과 타결한 ‘북핵 대응용, 1개 포대, 종말 단계 레이더 고정배치’의 원칙을 분명히 하고, 추가적인 용도 변경이나 배치, 비용의 발생은 새로운 협상의 영역으로 남겨둬야 한다. 이러한 정책은 중국과 러시아가 우려하는 사드의 대중, 대러 견제용이라는 우려를 최소화하는 동시에 한국의 외교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방안이 될 것이다.
◇ 장달중 서울대 명예교수
현 상황을 잘 유지하는 것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제기할 것으로 우려되는 무역보복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외교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국내총생산(GDP) 대비 방위비 분담은 독일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절대 적지 않다. 사드배치는 정부가 이미 하기로 했으니 분열된 국민감정과 국가이익을 위한 정책 사이 간극을 메우는 일에 나서야 한다. 정부의 사드배치 결정 과정이 국민의 불신을 일으키기 충분했기 때문이다. 사드배치는 적어도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뒤집기 어려울 것이므로 중국에 사드 배치가 ‘방어용’이라고 잘 설득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이들 국가가 위압적으로 나오면 견뎌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만의 자산이 있어야 하고. 그 자산을 잘 찾아내서 활용하는 일이 중요하다. 예컨대 프랑스가 문화의 힘을 활용해 미국에 맞서는 것이 그런 것이다. 중국과 일본은 한국을 끼지 않고 세계로 나가기 어렵다는 논리를 내세워 중견국으로서의 위상을 높이는 외교를 해야 한다.
북한이 언제 고강도 도발을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당장 대북 제재를 풀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부가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는 대미·대중·대일·대북 접촉에 직접 나서기보다 반관반민 형태의 접촉을 시도하는 전략도 필요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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