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 靑서 文 민정·시민사회수석, 金 정책실장으로 호흡
한 때의 동지가 적으로 마주섰다. 참여정부 시기 노무현 대통령의 우산 아래에서 함께 정책을 논의하며 국정을 이끌었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와 김병준 신임 국무총리 내정자가 얄궂은 운명에 처한 모양새다.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파문을 수습하기 위한 정국돌파 카드로 김병준 카드를 내밀면서 두 사람이 정치적 대척점에 서게 된 것이다.
야권의 유력 대권후보인 문 전 대표가 최순실 파문을 고리로 거국중립내각을 주장하며 박 대통령에게 총리 추천권을 국회에 넘기라고 연일 목소리를 높이던 와중에 박 대통령이 아무런 상의 없이 참여정부 인사인 김 내정자를 내세웠기 때문이다.
최순실 파문으로 벼랑 끝에 몰린 여권을 몰아붙이는 동시에 국정 정상 해법을 내놔야 하는 문 전 대표로서는 ‘박근혜 내각 사령탑’으로 이를 적극 수습하며 방어막 역할을 할 김 내정자와의 한판 싸움이 불가피해졌다.
두 사람은 참여정부 청와대에서 핵심 참모를 지낸 동지였다. 변호사를 하던 문 전 대표는 2003년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을 거쳐 시민사회비서관과 두 번째 민정수석,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역임하며 노 전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한 친노(親盧) 멤버다.
김 내정자는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정책자문단장으로 참여정부와 연을 맺은 뒤 대통령직인수위 정무분과 간사로 참여정부 밑그림을 그렸다.
두 사람이 청와대에서 근무가 겹친 시기는 2004∼2006년이다. 문 전 대표는 시민사회수석과 민정수석으로, 김 내정자는 대통령 정책실장으로 호흡을 맞추며 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문 전 대표가 정무적으로 노 대통령을 도왔다면 김 내정자는 핵심 정책브레인 역할을 했다.
2005년 2월 한 언론의 정치부 기자를 상대로 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영향력을 묻는 설문조사에서 문 전 대표가 1위, 김 내정자가 15위에 오르기도 했다.
참여정부가 막을 내린 후인 2009년 범친노계 모임인 ‘시민주권’에도 두 사람은 나란히 운영위원회에 이름을 올리며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하지만 이후 두 사람의 길은 확연히 엇갈렸다. 문 전 대표가 친노세력을 결집하며 대권가도를 달린 반면 김 내정자는 이 그룹에서 이탈했다.
문 전 대표가 박 대통령에게 석패한 2012년 대선을 앞둔 당내 경선에서 김 내정자는 문 전 대표가 아닌 또 다른 친노인사인 김두관 경남지사를 지지했다.
김 내정자는 이후 친노세력에 대한 쓴소리를 적지 않게 냈다.
2013년 8월엔 새누리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특강을 하는 변신의 모습도 보였고, 올해 4·13 총선에서 민주당의 출마 권유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기도 했다.
이런 악연에도 문 전 대표 측은 “인물에 관해 얘기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조심스레 접근했다. 김 내정자 개인 캐릭터가 아니라 박 대통령이 최순실 국면 타개를 위해 독단적으로 총리를 임명한 절차와 방식이 문제라는 데 방점을 뒀다.
문 전 대표 측은 2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사람에 대한 문제라기보다는 국면을 수습해가는 방식의 문제”라며 “누가 되든지 개각으로 할 문제가 아니다. 국면호도용으로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스스로 TK(대구·경북) 대표주자라고 생각하면서 독자 행보를 보인 분으로, 우리와 관계를 맺어오지 않았다”며 “지난 대선 경선 때 TK 대표주자로 경선 출마도 검토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문 전 대표가 참여정부에서 요직 맡았던 인사와 대척점에 선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는 내년에 여야 대권후보로 맞닥뜨릴 공산이 작지 않다.
반 사무총장은 참여정부에서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발탁된 뒤 ‘세계의 대통령’인 유엔 사무총장까지 올랐다.
문 전 대표는 참여정부 때 외교통상부 장관과 청와대 안보실장을 했던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과도 최근 회고록을 둘러싼 진실 공방을 벌인 바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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