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분산 통해 정치불신 해소해야”…“靑 인식 중요”
정세균 국회의장이 개원사를 통해 개헌 공론화 불씨를 지폈지만 2000년 이후 재임한 우리 국회의장들은 하나같이 열성적인 ‘개헌론자’들이었다.국회도서관 국회기록보존소가 보관하고 있는 역대 국회의장 구술기록 등에 따르면 16∼19대 전·후반기 국회의장 8인은 한목소리로 개헌의 필요성을 주창했다.
이들은 87년 체제가 새로운 시대상을 반영하지 못하는 ‘헌 옷’이라는데 공감대를 이뤘다. 무엇보다 현행 5년 단임의 대통령 중심제에 대해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하고 국정 혼란을 야기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권력구조 개편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김원기 전 의장(17대 전반기, 2004~2006년)은 “모든 권력이 대통령에게 집중된 지금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그대로 두고선 다른 어떤 개혁도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정당과 정치인이 대통령 권력을 차지해야 모든 것을 차지하고, 잃으면 다 잃는다는 가치관을 갖게 됐고, 국회가 합의 도출의 장이 아닌 권력을 위한 전투장이 됐다”며 “권력집중을 완화해 대화와 협상의 정치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임채정 전 의장(17대 후반기,2006~2008년)은 87년 체제에 대해 “당시 민주화로 가는 과정에서 군부정권과 타협을 해서 만들어진 헌법”이라면서 “시대의 변화를 담지 못하고 있어 우리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견제와 균형이란 민주주의의 삼권분립 원칙이 지켜져야 (사회적) 타협이 가능한데 우리는 모든 권력이 대통령에게 가 있다. 그래서 국회는 아무런 권한이 없고, 매일 대선 전초전만 벌이는 것”이라며 개헌을 통한 권력분산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형오 전 의장(18대 전반기, 2008~2010년)은 “87년 이후 직선제 대통령을 배출했는데 모두 임기 초반 하늘을 찌르는 국민적 지지가 있었지만, 후반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이 되고 레임덕도 급속히 전개됐다”면서 “이는 우리의 권력구조, 헌법의 문제라는 결론이다. 헌법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헌은 여당과 야당, 국민과 시민단체는 물론 특별히 청와대가 개헌에 대한 인식을 가져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의화 전 의장(19대 후반기,2014~2016년)은 최근 연합뉴스 인터뷰 등에서 “(87년 헌법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든 기틀이지만 2016년 현재를 반영하기엔 상황이 너무나 달라졌다”면서 “정치 불신과 권력 불균형의 폐단을 막기 위한 개헌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다만 권력구조 개편의 구체적인 형태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했다.
김형오 전 의장은 “현행 대통령 단임제만 아니라면 국민적 합의에 의한 내각제든, 이원집정부제든, 혹은 ‘미국식 대통령제’(국회의 배타적 입법권·예산편성권을 보장하고 행정부에 대한 인사·감사 기능을 강화한 형태)까지 무엇이든 좋다”는 입장이다.
박관용 전 의장은 대통령 4년 중임제와 함께 국회 양원제 도입을 통한 입법부 권한 강화를 강조한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도 양원제 도입을 제안하고 있다.
지난해 작고한 이만섭 전 의장은 이원집정부제를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정의화 전 의장 또한 19대 대선 후보들이 취임 1년 안에 이원집정부제로의 개헌을 공약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박희태(18대 후반기)·강창희(19대 전반기) 전 의장은 내각제로의 전환을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대선을 목전에 둔 개헌 논의에 대해선 회의적인 목소리도 잇따랐다.
박희태 전 의장은 최근 통화에서 “지금까지 개헌은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정권 획득을 목적으로 이뤄졌다. 대선이 코앞에 있는데 개헌의 추진동력이 없다”고 우려를 표했다.
이만섭 전 의장도 생전 연합뉴스 인터뷰 등에서 “(개헌이) 정쟁의 불씨가 돼선 안 된다. 대선을 앞두고 개헌 얘기가 나오면 선거전략에 이용한다는 비난, 무리한 정계개편을 추진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며 신중한 태도를 주문한 바 있다.
또 강창희 전 의장은 지난해 채록한 구술기록에서 “(다음 대선을 앞둔) 지금은 이제 개헌을 할 수 없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 임기 중에는 못한다. (박 대통령이) 할 생각도 별로 없는 것 같다”며 실현 가능성을 낮게 내다봤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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