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제파일’ 분석 결과 ‘뇌관’…진상규명 대신 정쟁으로 끝날 가능성
’사실상의 청문회’로 치러내며 철저한 진상규명에 나서겠다고 벼르는 야당과 이를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억지 공세’라고 규정한 여당간 ‘창과 방패’의 대결이 예고되고 있다.
특히 국정원이 자살한 임모 과장이 생전에 삭제한 파일의 복구를 마치고 27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할 것으로 전해져 그 결과에 따라 ‘해킹 의혹’ 정국이 또한번 출렁일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
여야 지도부의 지난 23일 합의에 따라 정보위와 미방위, 국방위, 안전행정위 등 유관 상임위 4곳이 내달 14일까지 관계기관 현안보고를 받기로 한 가운데 정보위와 미방위가 27일 동시에 첫 테이프를 끊게 된다.
국방위는 내달 11∼12일께 현안보고가 실시될 것으로 점쳐지며 안행위는 여야간사가 금주 중 접촉해 일정을 잡기로 했다.
이 가운데 이목이 집중된 곳은 단연 정보위이다.
국정원은 27일 정보위 현안보고에서 국정원장과 1·2·3차장 등 국정원 간부들이 참석한 가운데 임 과장의 삭제 내역 분석 결과를 여야 정보위원들에게 보고할 예정이다.
하지만 분석 결과는 야당이 제기하는 의혹을 말끔하게 씻어주는 종착점이 되기 보다는 여야 공방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공산이 크다.
복구한 자료에 내국인 사찰의혹을 입증할 단서가 있다면 야당에는 최상의 시나리오지만, 그렇지 않으면 여당은 야당이 무리한 정치공세로 역풍을 맞게 됐다며 반전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국정원이 내국인 사찰의혹은 없었다고 발표하더라도 야당이 이를 곧이곧대로 수긍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야당은 국정원이 스스로 불법행위를 인정하는 보고를 할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자체 분석을 위해 삭제된 데이터 원본과 해킹 프로그램 로그파일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여당은 기밀 유출을 이유로 복구된 원본은 국정원에 직접 방문해야만 확인할 수 있다는 입장이어서 이를 둘러싼 공방도 예상된다.
여권 관계자는 26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로그기록을 포함해 국민이 궁금해하는 부분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의 복원이 다 됐고 이를 분석 중”이라면서 관련 의혹을 해소할 수 있다는 데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러나 정보위 야당 간사인 신경민 의원은 통화에서 “로그파일과 감찰기록에 대해 국정원은 아무 얘기가 없고 여당 간사는 공개적으로 (자료 제출에) 반대하고 있다”며 “청문회에 준하는 상임위가 될지 여부는 여당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전체회의가 잡힌 미방위에서는 국정원의 해킹 프로그램 도입에 대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여부, 해킹 프로그램 구매를 중개한 나나테크의 정보통신망법 위반 가능성 등이 도마 위에 오를 전망이다. 국정원이 SKT 회선 5개 IP에 스파이웨어를 감염시키려 했다는 의혹도 다뤄질 전망이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 백기승 한국인터넷진흥원장, 국가보안기술연구소 측에서 미방위 전체회의에 참석한다.
안행위에서는 숨진 국정원 직원이 발견된 마티즈 차량의 바꿔치기 및 폐차 의혹이 주요 쟁점이 될 전망이다. 자살 경위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임 과장 가족이 경찰에 실종 신고를 하는 과정에서 국정원이 인지하고 개입했는지 등도 도마위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국방위에서는 국방부 사이버사령부의 대북 해킹 방어능력 및 유사한 해킹 프로그램 구매 가능성 등에 대한 현안보고와 질의가 이뤄질 전망이다. 지난 3월 국방부 소속 영관장교 등이 이탈리아 ‘해킹팀’과 접촉한 것에 대한 질의도 나올 수 있다.
여야는 이들 4개 상임위 현안보고 결과를 토대로 정보위를 다시 열어 양당이 합의하는 자의 증언과 진술을 청취하겠다는 내용으로 합의한 바 있으나, 여야간 이견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보여 원만하게 정보위 재개최로 귀결될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야당 일각에서 일정한 시점에서 국정조사 또는 특검 카드까지 꺼내는 방안을 만지작 거리는 가운데 실체적 진실규명 없이 지루한 공방 속에 정쟁으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고조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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