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막판진통에 심사일정 하루 연기…극적 타협 나올지 주목
한국과 일본은 5일 조선인 강제노동 현장인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문제에 대한 막판 협상을 계속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독일 본에서 열리는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는 현지시간으로 5일 오후 3시(한국시간 오후 10시)부터 ‘메이지(明治)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규슈(九州)·야마구치(山口)와 관련 지역)’에 대한 심사에 착수, 세계유산 등재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지난 6월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최종문 유네스코 협력대표(오른쪽)가 일제 강점기 조선인 강제노동 시설이 포함된 일본 근대산업시설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을 놓고 신미 준(新美潤) 외무성 국제문화교류심의관 겸 스포츠담당대사와 한일 2차 양자 협의에 앞서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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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재 심사는 당초 전날 이뤄질 예정이었으나 한일간에 관련 시설에서의 조선인 강제노동 반영을 둘러싼 이견이 해소되지 않으면서 의장국인 독일의 결정으로 심사 일정이 이날로 하루 연기됐다.
전례가 없었던 표대결시 한일은 물론 위원국 사이의 분열을 막기 위해 한일 양국에 마지막 합의할 시간을 준 것이다.
등재 심사 과정에서 우리 정부 대표단이 언급할 발언록을 놓고 일본측이 사전 조율을 요구하고 우리 정부가 난색을 표하면서 마지막까지 진통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측이 사전조율을 요구한 것은 우리 정부 대표단이 강제노동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일본 정부가 우리 정부의 발언록 초안을 미리 받아보고 조율을 요구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양측은 일본 산업유산 등재 결정문에 각주(footnote)나 첨부 형식으로 조선인 강제노동 관련 내용을 반영하는데 사실상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강제노동’이라는 표현 자체가 직접 들어가는지를 포함해 구체적인 내용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일본측이 강제노동이라는 표현 적시에 강함 거부감을 느끼면서 우회적 표현을 쓸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한일 양국은 등재 심사 하루 연기 이후 접점을 찾기 위한 다각도의 접촉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유산위원회가 열리는 독일 본에서의 양국 대표단 간에는 물론, 서울 외교부와 도쿄 외무성 간에도 돌파구를 찾기 위한 막판 조율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본 현지에서의 한일간 협상이 막히면서 본부로 지침을 요청하는 등 긴박한 움직임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일간 막판 협상에서 “일부 진전이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어 막판 극적 합의 가능성이 커진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며, 이를 위해 막바지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고 전했다.
세계유산 등재 결정은 위원국간 합의가 관례다.
회의 절차상 투표가 있긴 하지만 그동안 한 번도 표대결까지 가본 적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일을 포함한 21개 위원국이 실제 표대결로 갔을 때 한일 양국은 ‘외교적 모험’과 결과에 따른 책임을 감수해야 하며, 한일 양국 가운데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 위원국들에도 이만저만 부담이 아니다.
투표에 부담을 느낀 위원국이 기권하면 이는 표계산에 들어가지 않는다. 극단적으로 한일을 포함해 3개국이 투표에 참여해 2표로 등재 여부가 결정되는 시나리오도 상정할 수 있다.
정면 충돌 형태인 ‘표 대결’은 피해야 한다는 인식을 한일 양국이 공유하고 있고, 나머지 19개 위원국도 합의를 통한 해결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 막판 합의의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일본 정부가 등재를 신청한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은 규슈와 야마구치 지역 8개 현 11개 시에 있는 총 23개 시설로 구성돼 있다.
이들 가운데 ‘지옥도’라는 별칭이 붙은 하시마(端島) 탄광을 비롯해 7곳이 대일 항쟁기 조선인 강제징용의 한이 서린 시설이다. 이들 7개 시설에 5만7천900명의 조선인이 강제동원됐고 그중 94명이 강제동원 중에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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