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새로운 진화론을 기존의 과학에 포섭하려 종교 등에 덧씌워 생매장
“원숭이의 후손이라고! 오, 맙소사! 우리 모두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랍시다. 만약 사실이라면 그것이 널리 알려지지 않도록 기도합시다.”다윈의 진화론을 조롱하기 위해 그린 풍자화. 원숭이의 몸에 다윈의 얼굴을 그려놓고 여성의 맥을 짚고 있는 모습이다.
이것은 ‘종의 기원’ 출간 후 우스터(Worcester) 주교의 부인이 토했다는 탄식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열렬한 완고함, 사실이라면 널리 알려지지 않도록 기도하자는 노예 근성 등이 너무나도 잘 담겨 있다. 게다가 공동 조상의 후손일 원숭이와 인간을, 조상-후손 관계로 착각하는 유치한 오류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그래서인지 이 문구는 오늘날까지도 창조론자들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데 널리 애용되어 왔다. 한데 어떨까? 만일 다윈이 ‘종의 기원’을 통해 비판한 게 기독교가 아니라면, 또한 늙고 완고한 성직자와 신학자들을 비판한 게 아니라면 어떻게 될까?
실제로 ‘종의 기원’을 통독해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지만, 이 책은 과학과 과학자들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서다. 협소한 종교 비판서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다윈 하면 종교 비판가요, 열렬한 과학 옹호자를 연상하게 될까?
그 해답은 (과학자들을 비롯한) 근대인들이 다윈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종교(기독교) 비판가로 협소화시켜왔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근대인들은 진화론을 여기저기 손봐서 기존의 과학 체계 안으로 포섭하였다. 다윈이 엄연히 자연선택설이라 명명한 것을 적자생존설 혹은 자연도태설로 바꿔버린 것, 생존을 위한 분투를 생존경쟁으로 협소화시킨 것 등이 그 명백한 증거다.
우리는 지난 150년간, 과학의 신학적 태도를 온존시키기 위해, 종교를 주적으로 만들어온 것이다. 예컨대 현대 천문학의 대표 주자인 ‘빅뱅 이론’을 보라. 태초에 있었다는 ‘말씀’ 대신 엄숙하게 들어앉아 있는 ‘물질’이 보이는가! 니체가 갈파한 대로 신만 몰아내고 신의 자리는 그대로 남겨져 있는 형국. 이리하여 갈릴레오와 뉴턴 이래의 물리학과 천문학은 진화론 혁명의 칼날을 피해 지금껏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10-06-2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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