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이 종교를 비판했다고 누가 말했나?
“수많은 생물들이 지구 표면에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지를 고찰할 때 매우 인상적인 사실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여러 지역에 사는 생물들의 유사성이나 차이가 기후나 그 밖의 물리적 조건으로는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광대한 아메리카 대륙을 미국의 중앙부에서부터 남쪽 끝지점까지 여행해 보면 거의 모든 기온 아래서 습윤한 지역, 건조한 사막, 높은 산, 초원, 삼림, 늪지, 호수, 큰 강 등 극도로 다양한 조건들을 접할 수 있다. 이런 신세계의 기후나 조건들 중 구 세계(유럽)와 평행해 있지 않은 것은 거의 없다. 구세계와 신세계의 모든 조건에는 그렇듯 평행성이 있는데도 살고 있는 생물에는 어쩌면 이리도 큰 차이가 있는 것일까!… 우리는 이런 사실들 속에서 물리적 조건과는 관계없는 모종의 깊은 유기적 유대를 본다.”(‘종의 기원’ 11장 중)젊은 다윈이 갈라파고스 제도를 비롯한 남아메리카 여러 나라를 돌며 동물과 자연을 채집하고 관찰할 수 있게 해준 군함 비글호. 이 탐험을 통해 ‘종의 기원’은 탄생할 수 있었다.
‘종의 기원’ 전편에 걸쳐서 다윈(초상화)은 물리적 조건을 중시하는 당대 과학자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생물이 살고 있는 “지역의 물리적 조건이 생물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뿌리깊은 오해”라고 단언하기도 한다(12장). 물리적 조건을 중시한 당대의 과학자들, 그들은 누구였을까. 바로 창조론자들이다. 뭐라고? 과학자들이 창조론자들이었다고? 그것도 물리적 조건을 가장 중시한 과학자들이?
그렇다. 그러니까 다윈이 창조론을 비판했다는 우리의 통념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나머지 절반은 그 창조론자들이 실은 물리적인 조건을 대단히 중시하는 과학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물리적 조건을 중시한 과학자들이 창조론자들이라….
우리 현대인들은 종교와 과학을 매우 대립적인 것으로 느끼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이해하기가 좀 힘들다. 수많은 수도사나 신부들이 자연과학자였던 사실을 상기하면 좀 나을까? 나아가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 톰슨 경이 다윈을 혹독하게 비판한 창조론자였고, 유전학의 창시자인 멘델부터가 수도사였다는 사실도 떠올리도록 하자. 한마디로 말해 당대의 현실이 지금과 달랐던 것이다.
다윈이 1837년 7월부터 쓰기 시작한 비밀 노트에 그려져 있던 그림. 생명의 계통수 정도로 해석되고 있다.
‘종의 기원’의 머리말에는 또 다른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자연학자들(Naturalists)은 언제나 변이의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기후나 먹이 등 외부적 조건만을 제시한다. 극히 한정된 의미에서는 그 말이 사실일 때도 있다. 그러나 예컨대 딱따구리의 발, 꼬리, 부리, 혀 같은 구조가 나무껍질 밑에 있는 곤충을 잡기 위해서 훌륭하게 적응해 있는 것을 외적인 조건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무리다. 겨우살이는 어떤 나무들로부터 영양을 섭취하고, 그 종자는 어떤 새들에 의해 운반되어야 하며, 그 꽃은 암수가 따로따로여서 꽃가루가 한 꽃에서 다른 꽃으로 운반되려면 어떤 곤충들에 의해 매개되어야 하느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런 기생 식물의 구조와 그것이 몇몇 전혀 다른 생물들과 맺는 관계들을 외적인 조건이나 습성, 식물 자체의 의지 등의 작용으로 설명하는 것 또한 무리한 일이다.”
역시나 다윈이 당대의 과학자들(즉 창조론적 과학자들)을 비판하는 모습이다. 생물들을 연구할 때 외적인 조건을 너무 중시했다는 것이다. 한데 마지막 대목 “식물의 습성, 의지 등의 작용으로 설명”한 사람은 누굴까. 바로 유명한 라마르크다. 뭐라고? 그럼 이거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 다윈이 진화론계의 대 선배님인 라마르크를 비판했다고? 정말 이해하기가 힘들구만!
이렇듯 ‘종의 기원’을 직접 펼쳐보면 우리가 막연히 알던 것과는 사뭇 다른 면모가 도처에서 발견된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 몇 가지만 들어보자.
우선 첫째로, 다윈은 창조론과 진화론을 모두 비판했다. 달리 말하면 다윈은 기존의 진화론을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어 제시한 사람이 아니다. 그가 제시한 진화론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둘째, 창조론적 과학자들이 가장 중시한 것은 물리적 조건(혹은 외적인 조건)이었다. 셋째, 진화론의 대표선수였던 라마르크가 가장 중시한 것은 생물의 습성이나 의지였다. 놀랍지 않은가, 창조론자들은 객관적 조건(즉, 물리적 조건)을 중시하고 정작 진화론자 라마르크는 주관적 조건(즉, 생물의 습성이나 의지)을 중시했다니!
노스요크셔의 히스 언덕에 자리한 일클리 웰스 물 치료 호텔. 다윈은 이곳에서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내며” 편지를 첨부한 ´종의 기원´의 증정본을 지인들에게 보냈다.
뿌리와 이파리 제공
뿌리와 이파리 제공
여러 가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여기서는 어느 것 하나 속시원히 설명할 수가 없다. 대신 ‘종의 기원’이 얼마나 문제적인 책인지는 느낌이 오지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종의 기원’을 직접 읽기 위한 필수 조건을 이미 획득한 셈이다. 고전을 읽을 때 꼭 필요한 것, 즉 수많은 사전 정보보다 꼭 알고 싶다고 하는 마음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는 여기서 마저 얘기하기로 하자. 다윈 말대로, 생물들을 설명할 때 생물들의 객관적 조건이나 주체적 요소를 중시해서는 안 된다면, 그렇다면 대체 무얼 가지고 설명해야 하는가?. 다양한 생물계의 비밀이 생물들의 바깥에도 없고 안에도 없다면, 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자! 과연 다윈의 답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생물이 다른 생물들과 맺는 관계’였다. 즉, 한 종의 생물이 다른 종의 생물과 맺는 관계, 혹은 같은 종의 다른 개체들과 맺는 관계에 그 비밀이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자주 말해온 것처럼 생물 상호간의 관계가 모든 관계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 다윈의 답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나아가 긍정할 수 있겠는가? 한번 생각해보자. 어떻게 생물과 생물의 관계를 통해서 생물의 다양성을 설명할 수 있을까. 심지어 진화론을 정립할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이전의 창조론적 과학자들처럼 물리적 조건과 생물들의 특징을 연관시키는 게 과학적인 설명 아닌가? 추운 기후와 털이 두꺼운 동물, 혹은 적은 일조량과 키 큰 나무들. 이렇게 확연히 관찰되는, 물리적 조건과 생물들의 특징의 연관성을 대체 다윈은 무슨 근거로 부정할 수 있었던 것일까?
그러나 어쨌든 다윈은 그 엄청난 과업을 수행했다. 물리적 조건 대신 생물 대 생물의 관계를 중심으로 자연계의 신비를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 한 인간이 그렇게 하는 데 최소한 20여년의 고투가 필요했으며 결국 500쪽에 달하는 ‘종의 기원’의 출간으로 결실을 맺었다. 그러니 다윈의 여정을 함께 되밟고 싶은 분들은 이 책을 펴들자. 평생 건강이 나빠 하루 2~3시간밖에 짬이 없었던 다윈. 그런 그가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던 질문과 마침내 얻어낸 경이로운 해답들이 그 책 속에 오롯이 들어 있다. 그가 본 근사한 세상이 당신을 유혹하고 있다.
박성관 수유+너머 남산 연구원
2010-06-21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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