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는 보셨나요? 충북의 소도시 증평
읍내 중심가 장뜰시장 안 ‘대장장이 신’ 살고… 사곡리 우물은 ‘말세의 전설’ 머금고… 남하리 구석구석 ‘불교의 숨결’ 숨쉬고… 좌구산 정상엔 ‘별빛’ 내리네좌구산 초입의 삼기저수지. 저수지를 따라 ‘등잔길’이 조성돼 있다. 형설지공의 뜻이 담긴 길이니 학생 자녀와 함께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이름깨나 날린다는 여행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증평을 검색했다. 관광명소가 6곳 정도 검색됐다. 그 가운데 ‘일등’이 목욕탕, 2위가 해수사우나다. 1위가 목욕탕인 것도 그렇지만 나라 안에서 유일하게 바다가 없는 충북에서 해수사우나가 대표적인 여행지로 꼽혔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1위를 차지한 목욕탕엔 아무 게시글도 달리지 않았다. 사람들의 관심이 아예 없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등위는 어떻게 매겨졌을까. 이것도 의문이다.
증평의 각종 토산품들을 엿볼 수 있는 장뜰시장. 읍내 중심부에 있다. 시장 주변으로는 증평을 대표하는 맛집들이 몰려 있다.
‘증평의 헤파이스토스’ 최용진 기능장이 불에 달군 쇠를 다듬고 있다. 그는 장뜰시장에서 40여년 동안 재래식 대장간을 운영하고 있다.
장뜰시장은 읍내 중심가에 형성된 재래시장이다. 시장 안엔 ‘증평의 헤파이스토스’(대장장이 신)가 산다. 증평대장간을 운영하는 최용진 기능장이다. 증평대장간은 2005년 정부 지정 기능 전승자의 집, 증평군 향토유적(9호)으로 각각 지정됐다. 최 기능장 역시 고용노동부의 숙련기술 전수자로 인정받았다. 최 기능장이 대장장이로 나선 건 1974년께다. 이후 40여년 동안 증평을 떠나지 않고 대장간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나이가 공개되는 것을 손사래 치며 극구 반대했다. 실제 나이에 견줘 ‘절대 동안’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십년을 불과 쇠를 다루며 지낸 그가 여태 여성들이 부러워할 피부를 유지하고 있는 게 의아할 정도다. 최 기능장은 잰 체하는 법이 없다. 처음 보는 이들에게도 풀무질 시범을 곧잘 보여준다. 그는 요즘도 여전히 재래식으로 농기구들을 제작한다. 모르는 이는 있어도, 한 번 써 보고 마는 이는 없다는 것이 그의 자랑이다. 관광객들은 식칼과 작은 호미 등 주말농장용 농기구, 기념품 등을 주로 사간다.
사곡2리의 ‘말세우물’(충북 기념물 143호)은 이름 그대로 우물물이 세 번 넘치면 말세가 온다는 전설이 담긴 우물이다. 안내판에 따르면 우물은 세조가 단종을 내쫓고 왕위를 뺏은 이듬해인 1456년 조성됐다. 당시 극심한 가뭄으로 증평 주민들이 고통받고 있을 때 한 법력 높은 고승이 마을 아낙에게 물 한 잔을 얻어 마신 뒤 우물터를 알려줬다고 한다. 물론 고승은 우물물이 세 번 넘치면 말세가 오니 마을을 떠나라는 ‘친절한 주문’도 잊지 않았다. 말세가 닥치는데 마을을 떠나본들 무슨 소용일까만, 어쨌든 이후 우물은 주민들의 생명수 노릇을 하며 줄곧 수위를 유지하고 있다.
우물은 여태 두 번 넘쳤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정초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1910년 1월 중순 등이다. 말세라기보다 나라의 안위가 흔들릴 때 주로 차올랐던 셈이다. 궁금하다. 사드 배치와 북핵 문제를 우물물은 어떻게 보고 있을지.
남하리사지 삼층석탑(왼쪽)과 마애불상군. 둘 다 고려시대 유적으로, 증평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염실마을 뒷산에 있다.
좌구산 쪽으로 가면 제법 번듯한 관광지의 면모가 드러난다. 들머리는 삼기저수지다. 증평, 청원, 괴산 등으로 가는 세 갈림길이 있다고 해서 삼기(三岐)다. 저수지를 따라 ‘등잔길’이 조성돼 있다. 흙길과 목재 데크가 번갈아 밟히는 길이다. 등잔길 곳곳엔 갓 쓴 선비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조선시대 독서광으로 꼽히는 김득신(1604~1684)을 형상화한 동상이다. 김득신은 대단히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는 경상도 관찰사를 지낸 김치, 할아버지는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대첩의 영웅 김시민이다. 출신 배경은 훌륭했지만, 정작 자신은 지진아였다. 천연두 후유증 때문이었다. 그는 이를 반복과 노력으로 극복했다. 김득신은 읽고 또 읽으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책을 잡으면 수없이 반복해 읽었다. 자신의 시를 통해 밝혔듯 ‘사기 백이전’의 경우 무려 1000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등잔길은 등잔불 밝혀 공부하라는, 형설지공의 권유가 담긴 길인 셈이다.
삼기저수지 일대는 예부터 등잔걸이골이라 불렸다고 한다. 이름이 독특하니 전설 한 토막이 빠질 리 없다. 이야기의 얼개야 뻔하다. 낮에도 해가 들지 않을 만큼 음기가 세다는 골짜기에 총명하고 아름다운 처녀가 살았고, 과거 보러 가던 선비와 사랑에 빠졌고, 오매불망 기다리다 망부석이 됐다는, ‘전설의 전형’을 따르고 있다. 새로운 장치라면 밤에도 등잔불을 들고 기다렸는 것 정도. 이 덕에 이 일대가 밤에도 해가 뜨는 양기의 땅이 됐다고 한다. 증평군에서 은근히 밀고 있는 것도 이 대목이다. 처녀가 망부석이 된 4월 그믐 밤에 저수지를 돌면 양기의 덕을 입어 아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등잔길에 조명시설이 설치돼 있긴 하나 달빛 없는 칠흑 같은 밤에 저수지를 도는 게 다소 위험해 보이기도 한다. 배짱 두둑한 이라면 한 번 도전해 보시길. 4월 그믐은 오는 25일께다.
좌구산 중턱의 천문대. 낮, 밤을 가리지 않고 천체관측을 할 수 있다.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43)
→가는 길 :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중부고속도로 증평 나들목으로 나가는 게 가장 간명하다. 보강천과 장뜰시장, 말세우물 등 중심부의 관광지를 먼저 들른 뒤 남하리 일대, 좌구산 순으로 돌아보는 게 효율적이다. 증평대장간(838-3204)은 장뜰시장 바로 옆에 있다. 좌구산 천문대(835-4571)는 하절기에 오후 10시까지 문을 연다. 관람은 태양 관측(5회)과 야간 관측(3회) 등 하루 8회 운영된다. 당일 날씨와 시간을 미리 확인하고 가는 게 좋다.
증평 장뜰시장 일미분식의 쫄면.
→잘 곳 : 율리휴양촌(835-4581~2), 좌구산 자연휴양림(835-4551~3) 등이 깔끔하다. 증평 읍내와 증평 나들목 주변에도 묵을 곳이 산재해 있다. 증평과 인접한 내수읍 초정리 일대는 이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다. 광천수의 유명세에 기댄 대형 리조트, 펜션 등 각종 숙박업소들이 밀집돼 있다.
2017-05-1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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