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인류애 담은 백신, 소아마비 공포 없애

[유용하 기자의 사이언스 톡] 인류애 담은 백신, 소아마비 공포 없애

유용하 기자
유용하 기자
입력 2017-04-25 17:46
수정 2017-10-24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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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계 영웅’ 솔크 박사


백신 개발 뒤 발병률 90% 감소…기술 특허 내지 않고 무료 공개
솔크 박사는 소아마비를 잡을 수 있는 예방백신을 개발해 당시 시사주간지 ‘타임’의 표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솔크 박사의 백신 덕분에 사망률 5~6%의 무서운 전염병인 소아마비는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자취를 감췄다. 타임(1954년) 제공
솔크 박사는 소아마비를 잡을 수 있는 예방백신을 개발해 당시 시사주간지 ‘타임’의 표지로 선정되기도 했다. 솔크 박사의 백신 덕분에 사망률 5~6%의 무서운 전염병인 소아마비는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전 세계에서 자취를 감췄다.
타임(1954년) 제공
“태양을 특허로 신청할 수 있습니까. 나는 내가 만든 백신을 특허 등록하지 않을 겁니다.”

조너스 에드워드 솔크(1914~1995) 박사의 이 한 마디 덕분에 수천년 동안 인류를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질병 중 하나인 소아마비가 사라지게 됐습니다.

요즘은 소아마비가 책에서나 볼 수 있는 질병이지만, 1980년대 중반까지도 초등학교에는 소아마비 때문에 몸이 불편한 친구들이 한둘쯤 있을 정도였습니다.

65년 전인 1952년 미국에서는 소아마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가 5만 8000명이나 됐습니다. 그중 3000여명이 사망하고 2만 1000명은 중증 마비 증상으로 평생을 불편한 몸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한국 역시 1950년대까지는 한 해 소아마비 환자가 2000여명 정도 됐다고 합니다.

이런 심각성 때문에 소아마비 퇴치를 목적으로 미국에서는 1950년 전미(全美)소아마비재단이 만들어져 10센트 은화 모금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모인 연구비는 1947년부터 소아마비 백신을 연구하고 있던 미시간대 공중보건대 전염병학 교수이자 바이러스 전문가 솔크 박사에게 모였습니다. 솔크 박사는 살아 있는 바이러스로 인체면역반응을 유도하던 지배적인 방식을 깨고, 원숭이 신장에서 소아마비를 일으키는 폴리오 바이러스를 배양한 뒤 포름알데히드로 활성을 제거한 사(死)백신을 완성합니다.

솔크 박사는 1952년 백신의 안전성을 검증한 뒤 자신과 부인, 자식들을 포함한 어린이와 성인 10명을 대상으로 1차 임상시험을 했습니다. 이듬해 엄격한 통제 아래 미국 어린이 5000명에 2차 임상시험을 하고, 1954년 바로 오늘(4월 26일) 6~9세 어린이 180만명을 대상으로 그 유명한 대규모 현장 임상시험에 돌입했습니다.

1955년 4월 솔크 백신의 안전성과 효과가 발표되고, 몇 년 사이 대부분의 미국인이 예방접종을 받았습니다. 솔크 백신 발명 후 소아마비 환자 발병률은 전보다 90% 정도 감소했다고 합니다. 감소세를 꾸준히 이어져 세계보건기구(WHO)는 1994년 서유럽, 2000년 한국을 포함한 서태평양 지역에서 완전히 소아마비가 사라졌다고 선언했습니다.

공포의 질병을 퇴치할 절대 무기를 만든 솔크 박사를 두고, 많은 사람들은 ‘백신 특허로 돈방석에 앉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이런 예상을 뒤엎고 그는 백신 기술을 공개했고, 일약 의학계의 영웅이 됐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따 미국 캘리포니아 샌디에고에 설립된 솔크생명과학연구소에서 들어가 죽기 직전까지 묵묵히 에이즈 치료법 연구에 매진한 연구자로 남았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공부를 잘한다는 이과 고등학생들이 과학이나 공학이 아닌 의대에 진학하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어 문제라는 이야기가 잊혀질 만하면 들립니다. 똑똑한 학생들이 모두 의대로 몰리는 것은 문제이기는 하지만, 사회의 직업 안정성이 떨어지다 보니 생기는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아 어린 학생들과 학부모들을 욕할 수만은 없는 일 같습니다. 진로를 바꾸도록 강요할 게 아닙니다. 환자를 만나는 임상의만큼이나 생리학이나 병리학, 감염학 같은 기초의학이 유망하고 직업적으로도 더 낫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솔크 박사처럼 인류애 가득한 의과학자를 한국에서도 많이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edmondy@seoul.co.kr
2017-04-26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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