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 고급화가 쌀개방 극복 ‘관건’
미국산 칼로스 쌀이 시장에서 반품되는 등 국내에서 ‘찬밥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26일 실시된 3차 공매에선 한톨의 쌀도 낙찰되지 않았다. 농민들은 가슴을 쓸어내며 안도의 숨을 쉬었겠지만 국산 쌀값의 ‘동반하락’과 ‘재고처리’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어 꼭 좋아만 할 상황은 아니다.1999년과 2003년, 밥쌀용 수입쌀을 개방한 일본과 타이완에선 서로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됐다. 일본에선 수입쌀이 ‘냉대’를 받아 가격이 일본쌀의 50∼75% 수준에 머물고 있다. 하지만 타이완의 경우 고급쌀과 중저가 시장에서 수입쌀이 좋은 대우를 받고 있다. 왜 이같은 차이가 생길까.
안팔리는 칼로스쌀
미국산 칼로스쌀이 국내시장에서 잘 팔리지 않아 정부가 고민하고 있다. 수입기관인 농수산물유통공사 창고에 칼로스쌀이 가득 쌓여 있다.
농수산물유통공사 제공
농수산물유통공사 제공
일본인이 타이완 사람보다 자국 농산물을 아끼는 애국심이 더 강해서일까. 아니면 나라마다 입맛이 달라서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본은 정부와 농민, 소비자들이 개방을 준비했지만 타이완은 그럴만한 시간적 여유를 갖지 못했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우리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준비된 일본, 서두른 타이완
일본은 1995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의 결과로 6년간 쌀 관세화를 유예받았다. 대신 관세없이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물량(MMA)을 86∼88년 일본내 소비량의 4∼8%로 정했다. 일본은 처음부터 수입쌀의 일부를 밥쌀용으로 풀었다. 개방에 앞서 일본쌀과 수입쌀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을 살펴보겠다는 생각에서다. 우리도 당시 10년간 관세화를 유예받았지만 수입쌀을 밥쌀용으로 풀지 않고 가공용으로만 썼다.
수입쌀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형편없다.”이다. 농업문제를 연구하는 민간연구소 GS&J의 이정환 이사장은 “일본은 개방 이전부터 품질개량과 농산물 안정성에 신경을 써 소비자들의 신뢰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수입쌀이 싸더라도 안팔릴 것이라는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는 것. 당연히 수입쌀 가격은 하락해 10㎏짜리 미국산 중립종은 현재 2700엔(2만 2140원)으로 일본에서 가장 싼 북해도산의 3600엔에도 못 미친다. 가장 비싼 니가타현의 쌀 5340엔에는 절반 수준이다. 가격이 싸지만 인기가 없자 일본 정부는 4년만에 관세화로 전환하면서 쌀시장을 완전개방했다.
반면 타이완은 품질개선을 통해 고급쌀을 내놓을 시간이 없었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치중하느라 관세유예화 기간을 1년밖에 받지 못했다. 의무수입물량도 8%에서 출발했다. 경쟁력을 높이지 못한 상태에서 수입쌀이 들어오자 타이완 쌀값은 폭락했고 농민들은 ‘패닉(공황)’에 빠졌다. 타이완 정부가 지지가격을 설정, 전량수매에 나섰지만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었다.
●희비 엇갈린 수입쌀 관리방식
일본과 타이완은 쌀시장을 개방했지만 고관세(높은 관세율)를 유지했다. 일본은 1000%를 넘고 타이완은 560%에 이른다. 때문에 높은 관세를 물고 들어오는 수입쌀은 거의 없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세가 완전히 철폐되기 이전까지 두나라는 수입의무물량만 잘 관리하면 자국의 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일본은 연간 의무수입물량 76만 7000t 가운데 국영무역으로 들어오는 66만 7000t을 가공용과 사료용, 원조용에 제한했다. 식당 등 외식업체에는 풀지 못하게 했다. 밥쌀용으로 10만t을 할당했지만 연간 소비량의 1.1%에 불과하다. 수입쌀을 언제까지 팔아야 한다는 시한도 정하지 않아 수급을 조절할 수 있었다. 하지만 타이완은 연간 의무수입물량 14만 4720t 가운데 35%를 밥쌀용으로 정했다. 국내 소비량의 4.41%에 해당된다. 또한 일정기간 이내에 수입쌀을 팔도록 해 수확기와 관계없이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국영무역으로 들어오는 나머지 수입쌀들도 학교급식용 등으로 배정, 타이완쌀의 입지를 크게 좁혔다.
●승패는 소비자들의 선택에
농촌경제연구원 박동규 박사는 “일본의 소비자들은 국산 농산물을 차별적으로 선호하는 ‘홈마켓 바이어스’가 유달리 강하다.”면서 “국내 농산물에 대한 불만이 거의 없고 정부와 농가가 지속적으로 추진한 쌀 브랜드화 전략도 성공했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로는 일본의 수입 농산물 안정성 검사가 철저하고 정부가 농산물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지 않아 품질개선 등으로 수입쌀에 대한 ‘내성’을 스스로 키웠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인들은 쌀을 국에 말거나 비벼먹지 않아 쌀 자체의 맛이 소비의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수입쌀은 유통기간이 길어 밥맛이 변질될 가능성이 크다. 때문에 처음부터 경쟁상대가 되기 어려웠다.
타이완은 시장을 개방하기 직전까지 수매제도를 통해 정부가 쌀 가격을 지지했다. 생산하는 물량을 정부가 책임지고 유통마저 관리하다보니 품질개선은 뒷전이었고 경쟁력은 약해졌다. 그런 상태에서 관세화로, 그것도 1년만에 전격 개방되다보니 타이완 쌀시장은 둘로 쪼개졌다. 일본과 미국산 쌀은 고품질 시장을, 중국과 태국·이집트 쌀은 중저가·저품질 시장을 파고들었다. 타이완 쌀은 고관세에만 의지, 사실상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농림부는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타결돼 관세가 낮춰지면 타이완 시장은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도 타격을 받겠지만 관세감축 등에 대비, 비용절감으로 쌀값을 낮추면서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이미 강구하고 있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日, 품질 지속개선… 국민입맛 잡아”
|도쿄 이춘규특파원|주일 한국대사관 김홍우 농무관은 “일본은 쌀시장을 개방했지만 그 영향은 미미하고 최근에는 중국과 타이완, 싱가포르 등지로 일본의 고급브랜드 쌀을 역수출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999년 4월 수입쌀이 들어온지 7년이 지났는데 영향은 어떠한가.
-수입쌀 1㎏당 341엔(약 2800원)씩 부과하는 관세 때문에 의무수입물량 이외의 외국쌀은 거의 들어오지 않고 있다.2003년 수입 쌀값은 1㎏ 기준으로 태국산 209엔, 미국산 226엔, 호주산 231엔, 중국산 255엔 등이다. 여기에 관세를 부과하면 ㎏당 322∼644엔 하는 일본쌀과 경쟁이 안된다. 게다가 소비자들은 일본쌀을 좋아해 영향은 미미하다.
▶일본인들은 왜 자국쌀을 선호하나.
-한마디로 품질이 좋다. 지역 농산물을 소비하자는 ‘지산지소(地産地消)’ 운동도 영향이 있다. 학교급식의 경우 기본적으로는 학부모의 몫이지만 지자체 등의 지원으로 일본쌀을 공급, 어려서부터 일본쌀에 입맛이 들었다.
▶의무수입물량은 어떻게 처리되나.
-95년 4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총 678만t이 들어왔다. 밥쌀용은 10%도 안되는 64만t 뿐이다. 가공용 240만t, 원조용 204만t으로 쓰였고, 재고가 170만t이다.
▶일본 정부의 대응은.
-수입쌀 방어뿐 아니라 공세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 상하이 등 중국 연안과 홍콩, 타이완, 싱가포르 등지에 고급쌀 이미지를 활용, 상류층을 겨냥한 수출을 촉진하고 있다.(우리나라는 일본쌀 수입이 원천규제돼 있다).
▶우리 쌀시장에 주는 시사점은.
-우리 농가는 쌀에 대한 의존도가 일본보다 월등히 높다. 다양한 수입원 개발이 필요하고 학교급식 등으로 우리쌀에 익숙해지도록 해야 한다.
일본은 농가소득에서 차지하는 농업비중이 15% 미만이다. 서비스업 시간제 근무, 공장근무 등 겸업수입 비중이 높다.
taein@seoul.co.kr
■ “타이완, 쌀개방후 생산조정제 시행”
타이완 정부는 쌀 시장 개방에 따른 농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경지면적을 줄이는 생산조정제 등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30일 밝혔다. 다음은 주한 타이베이 대표부 장자샹(江嘉祥) 비서관과의 일문일답이다.
▶수입쌀 시판에 따른 영향은.
-2002년 1월 1일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쌀 수입을 부분적으로 허용했다. 과거 쌀 산업의 생산구조를 변화시키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여러가지 조치를 취했으나 개방을 앞두고 국내 가격이 영향을 받았다. 특히 가격이 통제할 수 없게 되자 쌀 상인들이 쌀을 비축하지 않아 시장에서 쌀 유통이 크게 늘었다. 그래서 쌀값이 크게 충격을 받았다.
▶시장안정을 위해 어떤 정책을 취하고 있나.
-생산조정제를 시행하고 있다. 농가와 협의해 경작 면적을 줄이고 쌀 생산량과 판매량을 예고해 시장에 경보를 주는 제도이다. 농민들로부터 쌀을 사들이는 수매업무도 강화하고 있으며 생산량을 소화하기 위해 연이율 2.5%로 농민회와 쌀 상인들에게 쌀매입 자금을 대여하고 있다.
▶품질개선에 대한 노력은.
-쌀 등급제와 품질 인증제 시스템을 만들려고 한다.
식품을 가공해 부가가치를 높이고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도 타이완 쌀을 팔기 위해 국내외 전시회 참가를 적극 돕고 있다.
▶개방에 앞서 관세화 유예기간을 1년으로 정한 것은 수입쌀 준비에 적절치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 타결되면 쌀 수입이 더 늘지 않겠는가.
-농민들이 정부의 휴경제도에 따르지 않으면 과잉생산으로 쌀 가격이 떨어져 농사짓는 사람들의 수입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을 설득하고 있다. 수급에 따라 생산량을 조정해야겠지만 결국은 품질개선과 경쟁력 제고가 문제 해결의 유일한 길이라 생각한다.
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2006-05-01 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