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머신 타고 30년 전 최 형사한테 ‘왜 그러셨냐’ 따지고 싶어”

“타임머신 타고 30년 전 최 형사한테 ‘왜 그러셨냐’ 따지고 싶어”

김헌주 기자
김헌주 기자
입력 2019-12-29 21:22
수정 2019-12-30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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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권력의 피해자들]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누명 쓰고 20년간 억울한 옥살이 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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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재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0년간 옥살이를 한 윤모씨가 지난 26일 충북 청주의 한 카페에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보며 지난 세월을 돌아보고 있다. 윤씨는 “1989년 나를 범인이라고 한 언론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그때 당시 기자들도 사과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춘재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0년간 옥살이를 한 윤모씨가 지난 26일 충북 청주의 한 카페에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보며 지난 세월을 돌아보고 있다. 윤씨는 “1989년 나를 범인이라고 한 언론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그때 당시 기자들도 사과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20년이란 세월은 짧은 게 아니에요. 강산이 두 번 변했잖아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30년 전 윤모(52)씨는 ‘이춘재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렸다. ‘꽃 같은’ 20대와 30대를 교도소 담장 아래 묻었다. 마흔두 살의 나이에 가석방되면서 바깥세상에 다시 나왔지만 적응은 쉽지 않았다. 출소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인터넷, 컴퓨터는 낯설기만 하다. 지난 26일 충북 청주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윤씨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30년 전으로 시간을 돌려 죽은 최 형사한테 ‘왜 그러셨냐’고 따지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검찰 조사에서도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경찰관들이 가혹행위를 일부 인정하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죽은 사람한테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대체 누가 나를 때렸는지 나중에 법정에서 다 물어볼 거다.”

●‘이춘재 범인’ 밝혀준 경찰 사망 가슴 미어져

-사과를 하면 용서를 한다고 했다. 사과는 직접 받기를 원하나.

“나한테 사과하고 끝날 일이 아니다. 당시 경찰들이 나한테만 그랬을까. 수많은 피해자가 있다고 본다. 말을 안 하고 있을 뿐 고통 속에 사는 그분들을 위해 국민 앞에 나와 진정성 있게 사과를 하라는 얘기다.”

농기구 수리공이었던 윤씨는 1989년 7월 경찰에 붙잡혔다. 10개월 전 윤씨가 살던 동네(경기 화성)에서 발생한 여학생(당시 13살) 살인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면서다. 당시 화성에서 살인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는데 ‘8차 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에서만 유독 현장에서 윤씨의 체모가 나왔다고 했다.

-끝까지 범행을 부인했다면 어땠을까.

“때리고 잠 안 재우는데 버텨 낼 재간이 없었다. 죽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1심에서 무기징역이 나왔다.

“항소심에서 경찰 가혹행위로 허위 진술했다고 항변했지만 소용없었다. 교도소에 있을 때 법원에 탄원서를 써서 보내도 답변이 없었다.”

-항소심에서 진술을 바꾼 배경은.

“안양교도소에 있을 때 옆 방에 수감 중인 (민주화·통일 운동가) 문익환 목사의 도움이 컸다. 한 번은 나를 부르면서 ‘누구 아니냐’고 묻더라. 맞다고 하니까 공소장과 판결문을 갖다 달라고 해서 드렸더니 문익환 목사 제자가 항소심 서류를 다 써줬다. 돌아가신 문 목사를 잊을 수가 없다.”

-무기징역이 확정됐지만 수감 도중 20년으로 감형됐다.

“출소 날짜가 없는 무기징역을 받았더라도 희망을 놓은 적이 없다. 솔직히 그곳(교도소)에서는 희망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종교의 힘에 의지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단기수들이 출소하는 걸 보는 것도 쉽지 않았겠다.

“장기수들에게 가장 예민한 부분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저렇게 나가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그래도 그걸 참아내지 못하면 살 수가 없으니 꾹꾹 눌러야 했다.”

-석방이 최종 목적은 아니지 않나.

“감옥에 있을 때부터 수차례 재심을 요구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은 범인이 잡히거나 증거가 새로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거였다.”

-출소 이후에는 줄곧 청주에서 살았나.

“교도소에서 20년 살고 나왔는데 누가 나를 반겨 주겠나. 이 타이틀 가지고는 어디든 갈 수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청주교도소에서 인연을 맺은 교정위원 덕분에 청주에 살게 됐다. 인근 공장에도 취업해 주야간 교대 근무를 하며 지내고 있다.”

-사회가 바라보는 시선에 힘들지 않았나.

“화를 억제하지 않으면 화병으로 죽는다. 트라우마를 벗어나기는 힘들지만 잊고 살려고 노력한다.”

-이춘재가 자백할 거라고 기대는 했나.

“이춘재가 잡힌 줄도 몰랐다. 다른 사건 증거물에서 이춘재 DNA가 검출됐다고 하는데 자꾸 모방범죄로 8차 사건이 거론되니까 신경이 쓰여 너무 힘들었다. 조용히 살고 싶었을 뿐인데 ‘또 시작이구나’ 싶었다. 더 시끄러워지면 청주를 아예 뜨려고도 했다.”

-이춘재 자백 소식은 어떻게 접했나.

“잠을 자는데 선배한테 ‘뉴스 봤냐’고 전화가 왔다. 잠이 확 깼다. ‘와, 이게 뭐지’ 싶었다. 믿기지 않았다. 다음날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 ‘참고인 조사를 받으셔야겠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30년 전 기억을 끄집어내는 데 머리가 뽀개지는 것 같았다.”

-‘자백해 줘서 고맙다’는 말씀도 하셨다.

“고맙긴 한데 지금으로선 딱히 할 말이 없다. 이춘재가 나를 위해 희생한 것도 아니고 내 존재도 모른다. 재심에 증인으로 출석한다는 의사를 밝혔으니까 그때 가서 무슨 말 할지 들어 보려고 한다.”

-재심은 열릴 수 있을까.

“재심 사유가 안 될 건 없다고 본다. 언제 열릴지는 모르겠지만 기대감을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 만에 하나 재심을 할 수 없다고 하면 긴 싸움이 될 것 같다.”

-왜 재심이 열려야 하나.

“잘못된 건 바로잡자는 거다. 명예는 한 번 떨어지면 주워 담을 수가 없다. 이 명예를 되찾고 싶다. 무죄가 확정되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하지만 ‘돈’이 문제가 아니다. 돈은 내가 벌어서 쓰면 그만이다.”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아직 고려하고 있지 않나.

“일단 재심부터 끝나고 봐야 할 것 같다.”

-안타까운 일도 발생했다. 이 사건을 재수사하던 경찰 간부가 사망했는데.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앞이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 그날 바로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지금도 마음이 미어진다.”

-고인과는 특별히 인연이 있나.

“10월 첫째주로 기억되는데 그때 나를 찾아왔다. 서류를 많이 들고 와서는 ‘이 서류들이 너무 안 맞는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책임지고 수사하겠다’고 했다. 그때 나는 ‘경찰, 안 믿는다’고 했는데 지켜봐 달라고 하더니 결국 이춘재가 범인이라는 걸 밝혀 줬다.”

●아버지 기일 영정 앞에서 작년과 달리 웃었다

-누명을 벗기 전에는 돌아가신 부모님 얼굴 뵐 면목도 없다고 했다.

“진실이 안 밝혀지고 죽으면 죽어서나마 부모님 얼굴을 떳떳이 볼 수 있겠나. 살인자를 반길 부모는 없다. 그래도 지난달 아버지 기일에는 부모님 영정 앞에서 웃을 수 있었다. 지난해와는 확실히 달랐다.”

-최근 3개월은 앞으로도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처음 기자들이 집 앞에 몰려 왔을 때는 도망다녔다. 일주일을 그렇게 전전했던 것 같다. 그러다 도무지 인터뷰를 안 하고는 못 버틸 것 같아 응하기 시작했다. 3개월이 마치 2년처럼 참 길었다.”

●‘감정서 허위 작성’ 검경 공방 지금은 지켜볼 뿐

-외가 친척도 만났다.

“외삼촌 얼굴에서 어머니 얼굴을 봤다. 40여년 만에 다시 만난 것 같다. 경찰이 우리 가족을 찾아 주려고 나흘 밤을 꼬박 새우면서 한자를 대조했다고 들었다. 이런 분들이 있기 때문에 경찰도 좋아지는 게 아닌가 싶다.”

-당시 유죄 근거가 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감정서 허위 작성을 놓고 검경이 대립하고 있다.

“검찰에서 (감정서가) 조작됐다고 했지만 검찰, 경찰 모두 최선을 다해 주고 있으니까 지금은 지켜볼 뿐이다. 중간에 낀 입장이라 뭐라 말할 수도 없고, 어느 쪽이 맞는지도 아직 잘 모르겠다.”

-이 사건이 마무리되면 뭘 하고 싶나.

“여행을 가 본 기억이 없다. 조용히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고 싶다. 솔직히 여행을 갈지 안 갈지 모르겠지만.(웃음)”

글 사진 청주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2019-12-30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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