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것들의 문화 답사기] 헐렁하면 찐따, 불편해야 잘 팔려요… ‘코르셋 교복’ 딜레마

[요즘 것들의 문화 답사기] 헐렁하면 찐따, 불편해야 잘 팔려요… ‘코르셋 교복’ 딜레마

유대근 기자
입력 2018-07-29 23:02
수정 2018-07-30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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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고 핏도 살린 교복 없을까

‘요즘 애들은 뭘 입을까? 왜 저런 걸 먹고 볼까? 돈은 어디에 쓰지?’

서울신문은 유아부터 10대 청소년, 20대 청년 세대까지 젊은층이 최근 즐기는 의식주, 여가, 놀이 등 문화를 소개하고 그 안에 담긴 의미·욕망 등을 해석해 보는 ‘요즘 것들의 문화 답사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첫 회 주제는 교복입니다. 중·고등학생에게 교복이란 ‘패션의 8할’입니다. 붕어빵처럼 똑같은 듯해도 자세히 보면 온갖 방법을 동원해 저마다 개성을 추구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핏’(착용 때 몸에 맞는 정도)을 과도하게 강조해 너무 작아져 버린 ‘아동복 교복’이 도마에 올랐습니다. 업체가 비정상적으로 몸매를 강조하는 옷을 내놔 아이들을 옭아맨다는 지적도 있지만, 오히려 아이들이 슬림한 교복을 선호한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무엇이 맞는 말일까요. 학생과 교사, 교복업체 등의 이야기를 토대로 ‘요즘 것’들이 가진 교복에 대한 진짜 생각을 살펴봤습니다.
“옛날에는 계절이 바뀔 때면 교복 바지통이나 재킷, 셔츠의 품을 줄여 달라는 손님이 일주일에 4명은 왔단 말이야. 근데 요즘은 많이 줄었어. 애초부터 워낙 작게 나오니까….”

지난 27일 서울 서초구 주택가의 8평 남짓한 세탁소에서 만난 70대 수선사 김인호(가명)씨는 스팀 다리미로 양복바지를 꾹꾹 누르며 푸념 섞어 말했다. 그가 말한 ‘옛날’은 불과 4~5년 전 일이다. 그는 “여학생 재킷이나 셔츠는 몸에 착 붙게 디자인돼 나오는 데다 남학생 바지는 같은 치수인데도 몇 년 새 통이 1인치는 준 것 같다”고 덧붙였다. 물론 그 작은 옷을 더 줄이려는 학생도 간간이 온다. 김씨는 “윗옷보다는 여학생은 치마 길이, 남학생은 바지통을 줄이러 온다”면서 “치마를 무릎 위 15~20㎝ 길이로 줄여 달라거나 바지 종아리부터 발목 부분을 슬림하게 해달라는 요구가 많다”고 말했다.

수선사 김씨의 말속에는 2018년 한국 사회가 학생 교복을 보는 두 시선이 담겼다. ‘활동이 불편할 정도로 작게 나온다’, ‘하지만 더 줄여 입으려는 학생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3일 국무회의에서 “여학생들이 편한 교복을 입게 해주자”고 발언한 뒤 딱 붙는 교복은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가 됐다.

서울신문이 직접 만난 여학생들은 대부분 “요즘 교복이 너무 타이트해 불편하다”는 데 동의했다. 지난 20일 교정에서 만난 서울 강북 지역 A여고 학생들은 교복 대신 체육복 반팔·반바지 차림이 많았다. ‘라인’(몸매가 드러나는 선)을 강조한 교복이 너무 불편해서다. 이 학교에서 만난 학생 60여명이 꼽은 불편함의 ‘원흉’은 하의(치마)보다 상의(재킷·블라우스)였다. “재킷과 블라우스는 가슴팍을 너무 조이게 만들어 단추 잠그기도 힘들다”거나 “윗도리 소매가 너무 짧아 등굣길 버스 손잡이를 잡으려 하면 겨드랑이가 보일 지경”, “윗옷 색상이 흰색이라 땀을 흘리지 않아도 속이 비쳐 더운데도 속 티셔츠를 입어야 한다”는 등의 불만이 쏟아졌다. 이 학교 2학년인 한 여학생은 “고1 때는 체중이 별로 안나갔지만 앉아서 공부하다보니 살도 찌고 키도 크는데 교복은 3년 내 같은 걸 입어야 해 불편하다”고 하소연했다.

치마 교복에 대한 불편함도 있었다. “허벅지에 딱 붙는 H라인 치마라 불편하다”, “바지 교복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많았다. 겨울엔 교복 치마가 춥고 불편해 고3들이 치마 안에 체육복 바지를 입고 공부하는 모습은 일상이 됐다. 다만 치마 길이에 대해서는 취향이 갈렸다. 고2인 한 여학생은 “애초 교복은 무릎을 덮을 정도로 나오는데 한 반 친구들의 3분의1은 더 짧게 줄여 입는다”고 했다. 멋을 내기 위해서다. “치마를 2개 사서 하나는 등교용(수선하지 않은 긴 치마), 다른 하나는 학원용(길이를 짧게 하고, 앞뒤 주름을 박음질해 몸에 더 붙게 수선한 치마)으로 입는다”는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의 아우성을 듣는 교복업체의 생각은 복잡하다. 자신들이 파악한 현실과 다르기 때문이다. 업자들은 “매출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국내 대형 교복 업체인 A사의 판매 담당 부장은 “몇 해 전부터 ‘교복 치마가 너무 짧다’는 얘기가 나와 속바지를 넣은 치마를 내놨었는데 잘 안 팔리더라”면서 “학생들이 타이트하고 짧은 교복이 ‘불편하다’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그래도 슬림해야 예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B 교복업체 관계자도 “교복 크기는 3단위로 촘촘히 나뉘어 사이즈가 13개나 된다”면서 “학생들이 본인 사이즈보다 작게 사니 불편한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학부모를 직접 만나 교복을 파는 대리점주들도 ‘작은 교복’ 논란이 다소 억울하다고 했다. 서울 강남권역에서 4대 교복업체 중 한 곳인 C사 대리점을 하는 한 점주는 “학생 10명 중 1~2명이 불편하다고 할 수 있지만 나머지는 ‘더 작게, 더 짧게’ 요구한다”면서 “교복을 사러 온 엄마가 아이에게 ‘3년 입으며 공부해야 하니 크고 편한 치수로 사라’고 얘기해도 ‘큰 옷 입으면 ‘찐따’ 취급 받는다’며 맞서 싸우는 건 흔한 광경”이라고 귀띔했다.

슬림한 교복을 둘러싼 해석은 각자 다르지만 모두 동의하는 게 있다. 학생들에게 교복은 직장인의 정장처럼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면서도 멋낼 수 있는 ‘패션의 완성’이라는 점이다.

학생들과 업계 의견을 종합해 보면 현재 유행하는 여학생 교복 스타일은 무릎에서 15~20㎝쯤 올라온 짧은 치마에 허리를 약간 덮는 길이의 재킷을 기본으로 한다. 한때 허리가 보이는 짧은 재킷을 많이 입었지만 유행이 지났다. 이 위에 외투를 입는데 가을에는 모자가 달린 후드집업, 겨울에는 패딩을 사실상 교복처럼 입는다. 여기에 흰 양말과 흰색 운동화를 신고, 큰 백팩을 착용하면 ‘교복 룩’이 완성된다. 남학생은 몸에 적당히 맞는 슬림한 재킷을 단추를 푼 채 입으며, 바지 종아리부터 발목까지 다소 타이트한 스키니핏을 선호한다. 마스크나 쿨토시 등을 하는 학생도 있다. 전체적으로 깔끔한 맵시를 선호한다. 유니클로·H&M 등 가격이 싼 패스트패션은 학생들이 애용하는 브랜드다. A 교복업체 디자인팀 관계자는 “교복은 2000년쯤부터 계속 타이트해지기 시작했고 2000년대 후반 긴 치마나 통 큰 바지 등 박시하게 입는 유행이 잠시 있었지만 이후 다시 좁고 짧아졌다”면서 “3~4년 전 정점을 찍은 뒤 최근에는 반바지·반팔 등 편한 디자인으로 넘어가는 추세”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학생들이 진짜 바라는 교복은 무엇일까. 학교 현장에서 확인한 의견은 치마와 바지, 통 큰 교복과 슬림한 교복 중 하나가 아닌 “자유로운 선택권을 달라”는 것이었다. 치마 교복과 바지 교복, 정장형 교복과 생활복을 모두 채택해 학생들의 취향과 선호에 따라 입도록 해 달라는 요구가 많았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아직도 학부모 중 복장이 자유로운 학교는 학생생활 지도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서 “교복이 자유로운 학교로 비치는 것을 학교 측에서 부담스러워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서울교육청은 학생들에게 편한 교복 채택을 위해 30일 ‘편안한 교복 공론화 추진단’을 발촉하고, 시민 토론 결과를 토대로 오는 11월쯤 ‘편안한 교복 가이드라인’을 내놓을 예정이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2018-07-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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