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도두동 도두항 방파제에서 태양이 떠오를 무렵 자연이 빚는 도두봉의 풍광이 너무나 아름답다. 제주 강동삼 기자
#진정성 있는 악수를 했던 그날처럼… 알프레도가 토토의 얼굴에 화상입은 손을 댔을 때처럼…
<12>일출과 일몰이 아름다운 도두봉
어느날 같은 출입처 기자들과 점심 먹다가 느닷없이 영화 ‘시네마천국’ 얘기가 나왔을 때 비슷한 감정과 추억에 사로잡혔던 것 처럼, 그 ‘시네마천국’(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1990년 개봉작)의 소년 토토(살바토레 카스치오)를 만났을 때 처럼 찌릿했다. 알프레도(필립 느와레)가 어린 토토의 얼굴에 화상입은 손을 갖다 댔을 때처럼 무한한 애정을 느꼈다.
“눈을 잃고 나니 더 잘 보인다”면서 여기를 떠나라고 말하는 알프레도. “절대 돌아오지 마, 우리 생각도 하지 마, 돌아보지 말고 편지도 쓰지 말고. 향수병 따위는 너한테 없는 거다”고 말하던 토토의 어른 친구의 역설적인 사랑. 그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남긴 키스신만 모아 놓은 필름을 돌렸을 때 처럼, 그때 흘러나오던 엔니모 모리코네의 음악처럼 애잔했다. 오래 전 프레데릭 베크먼의 소설 ‘오베라는 남자’를 만났을 때,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앤디(팀 로빈스)가 들려줬던 ‘피가로의 결혼’ 아리아를 들었을 때 느꼈던 가슴 뭉클함이다.
#마치 헤밍웨이처럼… 도두항에서 도두봉 바라보면서 밤바다 파도소리에 위로받은 그날처럼…
일출과 일몰이 모두 아름다운 도두항에서 바라본 4가지 빛깔의 도두봉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해발 높이가 65.3m에 불과해 탐방로에서 10분이면 정상에 올라가는 낮은 도두봉(도들오름)에서 그런 비슷한 감정이 밀려왔다. 도두항의 빨간 등대와 하얀 등대 사이로 만선을 꿈꾸며 바다로 항해하는, 그 사이에 떠오르는 태양이 그랬다.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배는 가장 안전하지만, 배들은 멈춰 있으려고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박했던 어선들은 하나 둘 출항했다. 어느 책에서 읽은 한 구절처럼 출항하지 않으면 기회는 없다. 좌절했던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출항할 힘을 선물 받는 기분이 들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의 ‘노인과 바다’ 작품 배경이 되는 쿠바 하바나가 이렇지 않을까. 어쩌면 도두해안은 이에 견줄만 하지 않을까. 대어 청새치(Marlin)와 대결한 뒤 ‘인간은 파멸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A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defeated)는 문장을 떠올리며, 멍하니 바다를 바라본다. 산티아고처럼 87일동안 고기가 잡히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듯, 도두항에 나와 언제나 낚시찌를 바라보며 흔들리지 않는 강태공들이 부러웠다. 이른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고 도두항 등대로 와 투망을 건져 올려 소득이 없는 날, 어부의 욕심없는 표정은 더 부러웠다.
제주시 도두봉 정상에서 바라본 일출 장관. 해뜰 무렵 제주국제공항 활주로에서 비행기가 이륙해 힘차게 비상하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해가 뜨고 지듯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곳…얼음처럼 차가운 오래물이 있어 이륙 소리도 잊는 곳
노을
도두항과 이호해변에서 바라보는 석양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도두봉은 장안사로 올라가는 길과 도두항에서 올라가는 길, 또는 무지개해안도로 주차장에서 올라가는 길 등 코스가 다양하다. 가장 힘들지 않는 길은 장안사로 올라가는 완만한 오르막길일 것이다. 장안사는 도두봉 동남쪽 입구에 있다.
한국불교 태고종 장안사는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에 해당한다고 한다. 한라산을 안산, 도두봉은 배산, 용두암은 좌청룡, 외도포구는 우백호로 이어진 사찰이다. 공항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 관광객들에게 인기 많은 장소이기도 하다. 참나를 찾아 떠나는 ‘보시의 길’ 안내판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제주 애월읍에서 삼양동까지 45.15㎞의 불교 성지순례길이라고 적혀 있다. 탐라국시대부터 제주에 불교가 전래돼 부처에 의지해 살아왔던 민초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길이란다.
도두봉 입구 태고종 장안사. 제주 강동삼 기자
세종실록 (1453)에 따르면 약 550여년전에 형성된 도두동에는 도두봉보다 더 유명한 오래물 용천수가 흐른다. 마르지 않는 샘, 얼음처럼 차가운 오래물을 테마로 2001년부터 축제가 열린다. 올해는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펼쳐졌다. 2015년 문화체육관광부 유망축제 선정에 이어 2018년과 2022년 제주도우수축제로 선정될 정도로 사랑을 받고 있다. 오래물 광장엔 야외 풀장이 마련돼 어린아이들이 물놀이에 빠진다. 여름 한철 오래물 목욕탕에서는 단돈 2000원으로 얼얼한 얼음물 용천수에 더위를 식힐 수 있다. 8월말 마지막 휴일까지 운영될 예정이란다.
#키세스존에 빠지고 도두봉 일출에 빠지고 도두항 일몰에 빠지는 곳
키세스존 밖에서 바라본 돈나무의 모습(위)과 안에서 바라본 돈나무의 모습. 제주 강동삼 기자
도두봉 초콜릿 모양의 키세스존. 제주 강동삼 기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두봉 둘레길에는 닭 한쌍이 탐방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적이 있다. 근래 어느날 이 암탉과 수탉이 사라졌다. 암탉이 먼저 안 보이더니, 얼마 후 수탉마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인근에 사는 주민이 방목해 키웠던 듯, 물그릇과 모이를 준 흔적이 있었는데, 이제 그 마저도 자취를 감출 걸 보니 초복에 닭의 생명(?)이 다한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사방이 뻥 뚫려 한라산은 물론 동쪽으로는 사라봉, 북쪽으로는 추자도까지 보이고 외도 끝까지 보이는 도두봉에 올라 멍 때리다 내려오는 것 자체가 힐링이다. 유난히 관광객들이 수시로 오르락내리락 한다. 심심할 겨를도 없다. 공항 활주로에선 비행기 이착륙을 밥먹듯 하고, 멀리 고깃배들은 항구를 들락날락한다.
도두항을 바라보는 전망데크가 최근 사라졌다. 도두항을 바라보는 풍광과 노을을 볼 수 있는 명소였는데 삐걱거리고 낡아 위험한 상황이어서 공사중이다. 나무데크는 다 뜯어내고 공사 안내판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둘레길도 1년째 이곳에서 끊겨 아쉽다. 데크 밑에서 돌덩어리들이 도두항 쪽으로 자꾸 떨어져 위험해지다 보니 이곳 역시 바닥을 재정비하느라 출입금지 노란띠가 에워싸고 있다. 둘레길 정비는 무슨 이유인지 더디기만 해 어르신들은 하루속히 다시 온전하게 길이 열리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해가 뜨는 도두동 무지개해얀도로 바닷가 전경. 제주 강동삼 기자
도두동 추억愛거리에는 굴렁쇠 놀이 동상과 땅따먹기, 딱지치기, 말타기 놀이하는 석고상이 줄줄이 산책로 펼쳐져 어린시절로 돌아가게 한다. 제주 강동삼 기자
도두봉 둘레길 나무데크가 삐걱거리고 낡아 탐방객들이 위험해지자 전망대 데크(왼쪽)를 없애고 공사(오른쪽)가 진행되고 있다. 제주 강동삼 기자
마치 ‘노인과 바다’처럼 관광객들이 몰려든 항구에서, 빈 맥주캔이 가끔 나뒹구는 포구에서,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잠깐 여기서 쉬었다 갈래… 순옥이네집·도두해녀의집에서 모듬물회 먹고 전복죽 먹으며?
도두항에서 도두추억애거리를 거쳐 이호해변으로 저녁 산채길에 나서면 뼈만 앙상한 물고기 모양의 다리와 발을 대면 소리를 내는 피아노거리 등 각양각색의 LED조명쇼가 펼쳐진다. 제주 강동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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