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이주민 리포트-코리안드림의 배신] <4>법정에 선 코리안 웨딩
10년간 판결문으로 본 국제결혼의 비극26만명에 이르는 국내 결혼 이주 여성들은 중첩된 마이너리티(소수자성)를 안고 한국 땅에서 살아간다. 여성인 동시에 이주민으로서 일상적 차별과 혐오에 맞닥뜨리면서도 대부분은 버텨 내지만, 일부는 극단적인 범죄의 피해자가 돼 한국에서의 삶을 비극적으로 마감한다. 서울신문은 결혼 이민자들이 국내에서 겪는 비극의 원인을 역추적했다. 그 자료로 판결문을 택했다. 대법원 판결 데이터베이스에서 ‘결혼 이주’, ‘외국 아내’ 등의 키워드로 검색해 2009~2019년 사이 발생한 결혼이주 가정의 강력범죄(살인·강간·감금·폭력 등) 40건을 찾았고, 서울·대전 등 각 법원으로부터 이 판결문을 입수, 분석했다. 판결문에는 남편·시댁 식구가 휘두른 상상할 수 없는 폭력에 생을 마감했거나 겨우 살아남은 40명의 이주여성(가해자 1명 포함) 이야기가 등장한다. 전문가들은 “이주여성을 온전한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 인식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결혼 이주민들이 언제든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주여성들이 범죄에 노출된 이유를 키워드별로 정리했다.
사진은 아이가 보는 앞에서 베트남 결혼이주여성을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한국인 남편 A(36)씨가 지난 7월 8일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2019.7.8 연합뉴스
몽골에서 한국으로 결혼해 온 A씨는 1년간 남편 노모(46)씨의 소유물로 살았다. 남편은 아내를 배우자로 대하지 않고 외국에서 사 온 기념품 취급했다. A씨가 향수병을 호소하며 “몽골에 잠시 다녀오고 싶다”고 하자 남편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너 여기 데려오는 데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 알아?” 이후 남편의 무차별적 폭행이 이어졌다. 외로움을 달래려고 몽골에 사는 친구와 채팅만 해도 주먹이 날아왔다. 우즈베키스탄 출신 이주여성 B씨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그는 남편 최모(53)씨에게 “고향에서 친정엄마가 오는데 택시비 좀 달라”고 말했다가 사정없이 맞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왜 택시를 타느냐”는 게 이유였다. 폭행 혐의로 법정에 선 남편은 “국제결혼으로 인해 내가 경제적 타격을 입었다”며 오히려 피해를 주장했다.
두 여성이 겪은 비극은 결혼 이민자들이 집안 내에서 겪는 갑질이 극단적으로 곪아 터진 사례다. 브로커를 통해 아내를 소개받은 남편 측은 중개비 등으로 1000만원대의 금액을 지출하는 데다 가정 내 경제권까지 틀어쥐고 있다 보니 출신국에 따라 이주여성을 하위 계급의 사람처럼 대하기도 한다. 황정미 강원대 사회과학연구원 교수는 “국제결혼을 하면 문화나 언어가 달라 서로 이해하려고 더 많이 노력해야 하는데, 잘되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아내가 도망갈까 봐 감금한 남편도 있다. 김모(53)씨는 자신이 밖에서 일하는 하루 18시간 동안 우즈베키스탄 출신 아내 C씨를 비닐하우스에 가뒀다. 비닐하우스 바깥문은 자물쇠로 잠그고, 쇠사슬 등으로 꽁꽁 묶기까지 했다. 재판부는 김씨에게 “개인의 폭력성에 기인한 문제라기보다는 외국인 아내에 대한 그릇된 편견과 의심에서 비롯된 범행”이라고 판시했다.
범죄 피해를 당해도 가해자인 남편을 오히려 처벌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는 기현상도 확인됐다. 본국 가족들의 기대 속에 먼 곳으로 결혼해 왔는데, 남편이 처벌받으면 기댈 곳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분석 대상 40건의 판결 중 폭행, 상해 혐의 등을 받은 5건은 아내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고 밝혀 ‘공소기각’(형사소송에 형식적 흠결이 있어 재판부가 소송을 종결시키는 것) 처리됐다. 반의사불벌죄(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가해자를 벌하지 않는 죄)가 아닌 감금·강간치상 등의 혐의를 받는 남성도 아내가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해 감형받기도 했다.
판결문에는 일부 한국인 남편들이 외국인 아내를 성적 만족감을 채워 주는 대상으로만 여기는 듯한 흔적도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 6월 발표한 결혼이주민 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정폭력을 경험한 여성 가운데 27.9%는 남편으로부터 ‘(원치 않는) 성행위를 강요받았다’고 답했다.
중국인 여성 D씨와 결혼한 정모(63)씨는 아내와 성관계를 시도하다가 마음대로 되지 않자 “너 필요 없다. 가!”라며 윽박질렀다. 엉덩이는 물론 은밀한 부위까지 수차례 때렸다. 아내가 뛰쳐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자 폭력이 되풀이됐다.
시댁 식구로부터 강간 등 극악 범죄를 당한 이주여성들도 있다. 캄보디아 출신 E씨는 남편의 형 신모(53)씨로부터 수차례 성폭행당했다. “나는 이미 남편이 있지 않느냐”며 울며 호소했지만 소용없었다. 악몽 같은 상황은 몇 년간 반복됐다. 재판부는 “외국인이라 도움을 청할 곳조차 없는 상황임을 이용해 피해자를 오랜 기간 자신의 성욕 해소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가해자 신씨는) 비난받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지적했다. 이주민지원공익센터 ‘감동’ 소속 이현서 변호사는 “정부가 애초 국제결혼을 권장하기 시작한 건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인구절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차원이었다”면서 “이 때문에 `이주여성을 존엄한 인간이 아닌 출산의 도구 또는 노동력쯤으로 치부하며 착취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진단했다.
#독이 된 오해
이주여성들이 우리말에 서툰 건 당연하다. 문화에 대한 이해도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남편이나 시댁 식구들이 인내심을 갖고 적응 때까지 기다려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례가 많았다. 분석 판결 40건 중 10건에서는 문화 차이와 의사소통 문제 탓에 오해가 커져 극단적 범죄까지 이어진 정황이 포착됐다.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받은 이모(68)씨가 베트남 출신 아내 F씨를 살해하려고 한 것도 말이 통하지 않았던 탓이 크다. 부부는 평소 손짓이나 전자 번역기 등을 활용해 의사소통을 했다. 소통이 원활치 않은 상황에서 이씨는 젊은 아내의 외도를 지속적으로 의심했고, 싸우다 지친 아내가 짐을 싸 집을 나가려 하자 쇠망치로 때려 살해하려 했다.
베트남에서 온 결혼 이주여성 G씨의 시아버지인 김모(84)씨는 며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하고 적응이 느리다며 타박하는 날이 늘어 갔다. 며느리가 요리한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아 밖에서 사다 먹게 되면서 불만은 더 커졌다. 특히 며느리가 아들과 자신의 사이를 이간질한다고 오해했다. 아들과 크게 다툰 날 김씨는 흉기로 자는 며느리의 목을 찔러 살해했다.
왕지연 한국이주여성연합회장은 “이주여성이 한국 국적을 딴 뒤 위장이혼한다는 의심이 많은데, 대부분은 한국에서 건실한 가정을 꾸리려고 온 것”이라면서 “부부가 서로 맞춰 살면 이주여성이 굳이 이혼하거나 돌아가려 할 이유가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죽음으로 치닫는 결혼
외국인 배우자를 얕잡아 보는 인식 속에 의사소통마저 어려워 오해가 쌓이다 보면 살인 범죄로 치닫기까지 한다. 판결문에 등장한 결혼 이주여성 40명 중 5명은 남편 또는 시댁 식구에 살해당했고, 죽음의 문턱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살인미수 피해자들도 3명 있었다.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통해 임모(45)씨와 결혼한 베트남 여성 H씨는 한국에 온 지 겨우 9개월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넉넉하지 않은 가정형편 탓에 아내와 자주 다투던 임씨는 어느 날 아내가 홧김에 “이혼하자”고 말하자 방바닥에 넘어뜨리고는 흉기로 무참히 살해했다. 재판부는 “낯선 이국땅에 오면서 믿고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남편으로부터 이처럼 끔찍하게 살해당하면서 느꼈을 공포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이모(60)씨는 망상 탓에 자신과 재혼한 이주여성 I씨를 살해했다. 전처가 자신의 재산을 빼앗아 가려 했다고 오해했고, 새 아내도 헤어지면 자신에게 해를 입힐 것으로 생각했다. 망상의 정도가 심해지자 I씨는 남편에게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수차례 권했다. 하지만 화만 키웠다. “병원에 가지 않고 버티면 정신병원에 입원시키겠다”고 강하게 말하자 남편 이씨는 흉기로 아내를 찔렀다. 재판부는 “남편이 가졌던 결혼 이주여성에 대한 편견, 멸시, 혐오감정 등이 작용해 범행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5년(2015~2019월 7월)간 다문화가정의 가정폭력 검거 건수는 4529건에 달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언어적 어려움 때문에 신고를 제대로 못 하는 이주여성 특성상 숨은 범죄는 훨씬 많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드문 경우지만 지속적으로 학대받던 이주여성이 가해자로 돌변하기도 한다. 베트남 이주여성 J씨는 한국인 남성과 21살에 결혼해 딸을 낳고 시숙, 조카 2명과 함께 살았다. 그는 가족 부양을 모두 자신이 떠맡은 상황에서 시어머니가 자주 고성을 지르며 구박하자 지쳐 갔다. 베트남의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지만 가지 못했고, 설상가상 둘째마저 유산했지만 아무도 돌봐 주지 않았다. 가족들은 친정에 연락하는 것조차 막았다. 스트레스가 지속되자 시어머니 밥에 독극물을 타 죽이는 꿈을 꿨고 현실에서 실행했다. 이를 눈치챈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경찰에 신고했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던 이 사건에서 국민배심원들은 “이주여성이 언어 장벽에서 오는 반복적 오해와 힘겨운 시집살이로 인해 피해자와 갈등을 겪던 중 우발적으로 범행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형을 내렸다. 최 부연구원은 “서로 전혀 알지 못한 채 바로 결혼한 중개 국제결혼의 특성은 부부 갈등 요인을 강화한다”면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촘촘한 네트워크나 외부와의 교류가 있다면 이런 상황에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나상현 기자 greentea@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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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2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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