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씨유로 스테로이드 제조… 구매한 선수 15명 전격 조사

포도씨유로 스테로이드 제조… 구매한 선수 15명 전격 조사

최영권 기자
최영권 기자
입력 2020-02-05 18:00
수정 2020-02-06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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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처, 도핑방지위에 명단 통보

무허가 상가 건물서 금지약물 만들어
근육 키우지만 성기능 장애·불임 유발
선수들 탐욕에 스테로이드 수요 급증
식약처 “불법 의약품 복용 엄정 대처”
도핑방지위, 명단 공개 4~5개월 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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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약품안전처 위해사범중앙조사단이 지난해 10월 충남 천안 도심 대로변에 있는 한 건물 임대사무실에서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포도씨유, 공업용 화학약품 등을 이용해 불법 스테로이드 약물을 제조하는 현장을 적발한 뒤 제조 시연을 하고 있다.  식약처 제공
식품의약품안전처 위해사범중앙조사단이 지난해 10월 충남 천안 도심 대로변에 있는 한 건물 임대사무실에서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포도씨유, 공업용 화학약품 등을 이용해 불법 스테로이드 약물을 제조하는 현장을 적발한 뒤 제조 시연을 하고 있다.
식약처 제공
지난해 10월 식품의약품안전처 위해사범중앙조사단이 충남 천안 도심 한복판에 있는 한 상가 건물에 들이닥쳤다. 겉으로는 멀쩡한 사무실처럼 보였지만 내부에서는 A씨 등 3명이 조악한 장비로 불법 스테로이드를 만들고 있었다. 조사 결과 이들은 정제유 대신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포도씨유로 약품을 중화했고,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공업용 유기용매 등 대여섯 가지 화학약품을 함께 끓여 스테로이드제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이를 일선 헬스장 트레이너와 회원들에게 팔았다. 결국 A씨는 구속됐다.
식약처가 압수한 불법 스테로이드 약품. 식약처 제공
식약처가 압수한 불법 스테로이드 약품.
식약처 제공
식약처는 5일 기자회견을 갖고 지난해 4월부터 10개월간 6건을 수사한 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와 성장호르몬 등 약 100개 품목 30억원어치의 불법 약물을 유포한 16명을 약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이 중에는 자신이 운영하던 유소년야구단 교실 소속 청소년 7명에게 스테로이드를 투여한 전직 프로야구 선수 이여상(36)도 포함돼 있다.

식약처는 또 운동선수 15명이 이 같은 불법 스테로이드를 구매한 것을 확인하고 이날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에 명단을 넘겼다. 15명은 식약처가 5일 검찰에 불구속 의견으로 송치한 불법 스테로이드 관련 책 저자 B씨가 스테로이드를 판매한 사람 중에 포함돼 있었다.

아나볼릭 스테로이드는 황소 고환에서 추출해 합성한 남성호르몬제의 일종이다. 세포 내 단백 합성을 촉진해 벌크업(근육 크기 성장) 등 운동 능력 향상에 탁월한 효과가 있지만 고환이 수축되고 정자가 감소돼 성기능 장애와 불임을 유발하는 등 인체에 미치는 부작용이 커 국내외에서 치료 목적 등으로 사용을 제한하고 있다.

하지만 불법적인 약물의 힘을 빌려서라도 근육을 키워 보디빌딩 대회에서 입상하거나 프로 스포츠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는 선수들의 탐욕이 스테로이드의 수요를 부추기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까지 이런 불법 약물에 노출되는 경우가 확산되고 있어 스테로이드의 범람이 위험수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심지어 개인에 따라 맞춤형으로 스테로이드 약물을 조합하고 약물 복용 일정을 디자인해 주는 ‘스테로이드 디자이너’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으로 식약처와 도핑방지위는 불법 약물 판매유통책뿐만 아니라 운동선수 등 단순 구매자에 관한 정보까지 공유하기로 했다. 조지훈 식약처 수사관은 “과거에는 불법약물 구매자 중 운동선수가 있어도 복용했음을 단정할 수 없어 대한체육회 등에서 징계 없이 유야무야 넘어갔다”며 “앞으로는 불법의약품 구매자 중 운동선수가 있으면 KADA에 통보하며 긴밀히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번에 적발된 15명의 선수들이 도핑방지규정 1차 위반으로 최종 판정될 경우 최소 4년에서 최대 영구 자격 정지를 받는다. 전인상 도핑방지위원회 조사결과관리부장은 “통상적으로 위반 확인 절차는 2달 이내가 소요되지만 명단 공개까지는 4~5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2020-02-0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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