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컨을 만지작거리다가 우연히 한 채널에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가수 이승철이 예상 밖의 곳에서 예상 밖의 사람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있더군요. 그곳은 소년교도소였고 노래를 배우는 사람들은 어린 수형자들이었습니다. 이승철은 오디션 프로에 나와서 거침없이 독설을 내뱉던 사람인데 과연 무슨 일로 저곳까지 가게 됐을까요? 더구나 소년수들의 얼굴도 모자이크처리 없이 그대로 공개한 것이 의외였죠.
프로그램 제목은 ‘기적의 하모니’였습니다. 교도소에 갇힌 소년들의 닫힌 마음을 노래로 열어보자는 취지였겠죠. 그런데 왜 하필 이승철이었을까요? 그는 뛰어난 가창력의 소유자이지만 한때의 실수로 잠시 구치소에 머물렀던 전력이 있죠. 흠결 없는 고고한 사람이 와서 가르치는 것보다 과거에 잘못을 저질렀지만 철저히 반성하고 현재는 자신감 넘치게 사는 인생선배가 더 어울린다는 게 제작진의 판단이었을 겁니다. 물론 이승철도 그런 기획의도에 공감했을 테고요.
닫힌 마음의 원인은 다친 마음입니다. 다친 부위를 낫게 하려면 특단의 치료제가 필요합니다. 합창은 이런 질환에 특효약입니다. 올라갈 땐 같이 올라가고 내려갈 땐 함께 내려가는 게 멜로디입니다. 쉬어갈 땐 같이 쉬어가는 게 리듬이죠. 그래야 하모니가 제대로 나오는 겁니다. 더구나 아름다운 노래 속엔 보석 같은 메시지가 들어 있잖아요. 화면에 비친 이승철은 의사 같기도 했고 성직자 같기도 했고 정 많은 이웃집 형 같기도 했습니다. 소년수들의 표정도 마냥 천사 같았고요.
제목을 왜 ‘기적의 하모니’라고 했을까요? 사랑의 하모니, 우정의 하모니, 희망의 하모니는 후보에 없었을까요? 아마도 기적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린다고 결론지었을 겁니다. 사랑의 기적, 우정의 기적, 희망의 기적을 한데 모은 바로 그 기적. 그래서 문득 기적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세 가지 명제가 거의 동시에 떠올랐습니다.
첫째, 기적이 없다면 기적이라는 말도 없을 것이다.
둘째, 쉽게 이루어진다면 그건 기적이 아니다.
셋째, 기적의 씨앗을 뿌린 자에게 기적의 열매가 돌아온다.
첫 문장은 헬렌 켈러가 한 말로 기억합니다. 그분은 기적의 당사자입니다. 하지만 기적의 주인공은 두 사람입니다. 기적을 만난 사람은 헬렌 켈러이지만 기적을 만든 사람은 그분의 스승인 앤 설리번이거든요. 설리번 선생님은 어떻게 기적을 만들었을까요?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게다가 성질까지 나쁜 어린이를 소개받았을 때 그는 어떤 결심을 했을까요?
우선 변화의 가능성을 믿었을 겁니다. 그리고 극단의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실천했습니다. 내가 죽으면 누군가 그 뒤를 이어서 이 일을 할 거라는 믿음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기록에 따르면 설리번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에 다른 분(폴리 톰슨)이 헬렌을 계속 돌보았습니다. 돌봄을 받기만 하고 돌려주지 않는다면 그건 기적이 아니겠죠. 헬렌이 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을 고통 받는 다른 사람들에게 돌려주었기에 세상을 감동시킨 기적의 스토리가 된 것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일수록 기적을 바랍니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기만 한다면 그건 요행을 바라는 것에 가깝습니다. 사랑이나 희망조차도 그저 바라기만 하고 목표를 향해 움직이지 않는다면, 마치 병원에 가지 않고 자연치유 되기를 기도하는 환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고난이 크다면 그건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바로 그때 농부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때 맞춰 씨앗을 뿌려야 추수의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모내기, 김매기도 제때에 해야 합니다. 씨도 안 뿌리고, 모도 안 내고, 김도 안 맨다면 수확은 정녕 내게 오지 않습니다.
채널을 돌리다 보면 마술 프로그램도 가끔 만나게 됩니다. 어떻게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나 싶지만 마술은 마술일 뿐 결코 기적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마술은 순간에 일어나고 순간에 사라집니다. 마술사는 마술의 비밀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마술은 감탄의 영역이지 감동의 영역은 아닙니다. 마술사의 손놀림과 아이디어는 놀랍지만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인생이 고단할수록 기적의 기회는 오히려 가깝습니다. 흩어져 있는 기적의 요소를 찬찬히 모으십시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누군가를 위해 나의 재능과 정열을 아낌없이 바칠 때 우리는 그 누군가와 함께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준비기간이라고 치고 지금부터 실행기간으로 설정하세요. 만약 기적을 원하신다면.
글 주철환|그림 최석운
주철환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소한 일과 풍경에서 교훈을 포착하는 날카로운 마음의 눈과 남다른 ‘감동 탐지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국어교사에서 PD로, 다시 교수에서 방송사 사장으로 변신을 거듭했고, 현재는 중앙미디어네트워크의 편성본부장을 맡아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친절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는, 친절하고 부지런한 사람에게 행운도 찾아온다고 믿습니다.
프로그램 제목은 ‘기적의 하모니’였습니다. 교도소에 갇힌 소년들의 닫힌 마음을 노래로 열어보자는 취지였겠죠. 그런데 왜 하필 이승철이었을까요? 그는 뛰어난 가창력의 소유자이지만 한때의 실수로 잠시 구치소에 머물렀던 전력이 있죠. 흠결 없는 고고한 사람이 와서 가르치는 것보다 과거에 잘못을 저질렀지만 철저히 반성하고 현재는 자신감 넘치게 사는 인생선배가 더 어울린다는 게 제작진의 판단이었을 겁니다. 물론 이승철도 그런 기획의도에 공감했을 테고요.
닫힌 마음의 원인은 다친 마음입니다. 다친 부위를 낫게 하려면 특단의 치료제가 필요합니다. 합창은 이런 질환에 특효약입니다. 올라갈 땐 같이 올라가고 내려갈 땐 함께 내려가는 게 멜로디입니다. 쉬어갈 땐 같이 쉬어가는 게 리듬이죠. 그래야 하모니가 제대로 나오는 겁니다. 더구나 아름다운 노래 속엔 보석 같은 메시지가 들어 있잖아요. 화면에 비친 이승철은 의사 같기도 했고 성직자 같기도 했고 정 많은 이웃집 형 같기도 했습니다. 소년수들의 표정도 마냥 천사 같았고요.
제목을 왜 ‘기적의 하모니’라고 했을까요? 사랑의 하모니, 우정의 하모니, 희망의 하모니는 후보에 없었을까요? 아마도 기적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린다고 결론지었을 겁니다. 사랑의 기적, 우정의 기적, 희망의 기적을 한데 모은 바로 그 기적. 그래서 문득 기적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세 가지 명제가 거의 동시에 떠올랐습니다.
첫째, 기적이 없다면 기적이라는 말도 없을 것이다.
둘째, 쉽게 이루어진다면 그건 기적이 아니다.
셋째, 기적의 씨앗을 뿌린 자에게 기적의 열매가 돌아온다.
첫 문장은 헬렌 켈러가 한 말로 기억합니다. 그분은 기적의 당사자입니다. 하지만 기적의 주인공은 두 사람입니다. 기적을 만난 사람은 헬렌 켈러이지만 기적을 만든 사람은 그분의 스승인 앤 설리번이거든요. 설리번 선생님은 어떻게 기적을 만들었을까요?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게다가 성질까지 나쁜 어린이를 소개받았을 때 그는 어떤 결심을 했을까요?
우선 변화의 가능성을 믿었을 겁니다. 그리고 극단의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실천했습니다. 내가 죽으면 누군가 그 뒤를 이어서 이 일을 할 거라는 믿음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기록에 따르면 설리번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에 다른 분(폴리 톰슨)이 헬렌을 계속 돌보았습니다. 돌봄을 받기만 하고 돌려주지 않는다면 그건 기적이 아니겠죠. 헬렌이 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을 고통 받는 다른 사람들에게 돌려주었기에 세상을 감동시킨 기적의 스토리가 된 것입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일수록 기적을 바랍니다. 그러나 기적이 일어나길 바라기만 한다면 그건 요행을 바라는 것에 가깝습니다. 사랑이나 희망조차도 그저 바라기만 하고 목표를 향해 움직이지 않는다면, 마치 병원에 가지 않고 자연치유 되기를 기도하는 환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고난이 크다면 그건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 최고의 조건을 갖춘 것입니다. 바로 그때 농부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때 맞춰 씨앗을 뿌려야 추수의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모내기, 김매기도 제때에 해야 합니다. 씨도 안 뿌리고, 모도 안 내고, 김도 안 맨다면 수확은 정녕 내게 오지 않습니다.
채널을 돌리다 보면 마술 프로그램도 가끔 만나게 됩니다. 어떻게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나 싶지만 마술은 마술일 뿐 결코 기적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마술은 순간에 일어나고 순간에 사라집니다. 마술사는 마술의 비밀을 공개하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마술은 감탄의 영역이지 감동의 영역은 아닙니다. 마술사의 손놀림과 아이디어는 놀랍지만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인생이 고단할수록 기적의 기회는 오히려 가깝습니다. 흩어져 있는 기적의 요소를 찬찬히 모으십시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누군가를 위해 나의 재능과 정열을 아낌없이 바칠 때 우리는 그 누군가와 함께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준비기간이라고 치고 지금부터 실행기간으로 설정하세요. 만약 기적을 원하신다면.
글 주철환|그림 최석운
주철환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소한 일과 풍경에서 교훈을 포착하는 날카로운 마음의 눈과 남다른 ‘감동 탐지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국어교사에서 PD로, 다시 교수에서 방송사 사장으로 변신을 거듭했고, 현재는 중앙미디어네트워크의 편성본부장을 맡아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친절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그는, 친절하고 부지런한 사람에게 행운도 찾아온다고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