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조선에도, 독재 탄압에도 포기 않던 여성들의 노동 연대기

식민지 조선에도, 독재 탄압에도 포기 않던 여성들의 노동 연대기

김기중 기자
김기중 기자
입력 2024-08-23 03:22
수정 2024-08-23 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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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공녀 연대기 1931~2011
남화숙 지음/남관숙 옮김
후마니타스/392쪽/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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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첫 여성 용접사였던 김진숙은 1981년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에 입사한다. 노동운동을 하다 1986년 해고됐고, 부당해고를 규탄하며 복직 투쟁을 이어 갔다. 그가 세상에 알려졌을 때는 2011년 35m 높이 크레인에서 309일간 고공농성을 벌이면서다.

하늘에서 회사의 부당함을 외치는 김진숙의 모습은 1931년 고무공장 파업을 주동하다 평양 을밀대 지붕 위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인 여성 노동운동가 강주룡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신문·잡지에서는 강주룡을 ‘공중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로 ‘체공녀’(滯空女)라 이름 붙였다. 둘의 모습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여성 노동운동의 모습은 제바닥을 차지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책은 강주룡부터 김진숙에 이르기까지 한 세기에 걸친 공장 여성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사를 살핀다. 일제강점기 평양부터 1930년대 사회주의 바람 속 노동자들, 1950년대 조선방직 노동자들, 1970~80년대 민주노조원, 1990년대 신발산업 파업 노동자의 운동, 그리고 김진숙까지 따라간다.

지난한 역사를 살펴본 저자는 여성들의 노동운동에는 ‘배후가 있다’는 말이 항상 뒤따랐다고 지적한다. 예컨대 1970년대 여성 노동운동가를 다룬 신문 기사에는 ‘그들의 무지를 이용한 외부 세력의 조종 때문’이라는 시선이 가득하다.

1990년대부터 불어닥친 신자유주의화 과정은 노동자로서 여성의 가치를 떨어뜨렸다. 저자는 남성 중심 노동자들이 국가 형성 과정에 동원되거나 저항을 조직하는 방식 등에서 젠더 담론을 배제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김진숙이 도드라지는 이유는 노조 운동 내 남성 중심 문화를 비판하고,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목소리를 높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간 제대로 자리매김하지 않았던 여성 노동운동의 기억을 복원하고, 한국 산업화와 노동운동의 역사를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다시 썼다. 박정희 시대의 민주노조운동과 대한조선공사를 파헤친 전작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에 이어 소외당하는 이들을 다시 한번 정당한 자리에 올려놓는다.
2024-08-2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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