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화부터 비트코인까지… 역사 이면엔 ‘돈’ 있었다

금화부터 비트코인까지… 역사 이면엔 ‘돈’ 있었다

김기중 기자
김기중 기자
입력 2024-06-14 00:07
업데이트 2024-06-14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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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돈이다/강승준 지음/잇콘/540쪽/3만 3000원

제1차 세계대전 세계 자금 몰려
英 38년 치 예산 전쟁비용 투입
美 126억 달러 채권국으로 부상

‘무역’ 기록용 문자 알파벳 기원설
로마 기독교 공인 배경엔 ‘재정난’

부에 대한 개인·가문·국가의 갈망
명분·위선 걷어 낸 역사 다시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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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가혹한 세금에 시달리다 유대인들을 이끌고 탈출에 나선 모세를 묘사한 귀스타브 도레의 석판화 ‘십계명이 적힌 석판을 깨는 모세’.  퍼블릭 도메인
이집트의 가혹한 세금에 시달리다 유대인들을 이끌고 탈출에 나선 모세를 묘사한 귀스타브 도레의 석판화 ‘십계명이 적힌 석판을 깨는 모세’.
퍼블릭 도메인
사라예보의 총성으로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 참전국들은 천문학적인 전쟁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특히 영국은 무려 38년 치 예산을 전쟁에 투입했을 정도였다. 당시 미국의 막대한 자금이 유럽의 전쟁통으로 흘러들어 왔다.

이전까지 세계 최대 채무국 중 하나였던 미국은 프랑스에 빌려준 96억 달러를 포함해 총 126억 달러의 채권국이 됐다. 세계경제의 중심축도 영국에서 미국으로 이동했다. 책은 고대 중동 국가의 금속 주화부터 시작해 현대의 비트코인에 이르기까지 화폐의 역사는 물론 금융의 측면에서 수천년 세계사의 56가지 주요 사건을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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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역사는 돈이다’는 종교적 이유로 시작됐지만 유대인에게 진 빚을 갚지 않으려 잔혹한 학살을 벌인 중세 십자군 전쟁 등 역사적 사건 56가지를 돈의 관점으로 분석한다. 퍼블릭 도메인
신간 ‘역사는 돈이다’는 종교적 이유로 시작됐지만 유대인에게 진 빚을 갚지 않으려 잔혹한 학살을 벌인 중세 십자군 전쟁 등 역사적 사건 56가지를 돈의 관점으로 분석한다.
퍼블릭 도메인
알파벳의 발명도 사실은 돈 때문이었다고 한다. 유능한 상인이었던 페니키아인들은 소금을 팔아 금과 주석을 얻으려 지브롤터해협을 지나 대서양 그리고 영국까지 다녔다. 장사한 내용을 기록하기 위해 글자가 필요했다. 알파벳은 표음문자인데 교역을 위해 다른 나라 언어를 소리 나는 대로 빨리 적는 데 유용했다.

성경의 출애굽기를 종교가 아닌 세금의 관점에서 분석해 보면 어떨까. 고대 유대인들은 이집트에 450년간 정착했는데 인구가 늘어나고 점차 부유해졌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이집트의 파라오는 징벌 수준의 세금을 부과했다. 모세가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유대인들은 세금을 내지 못해 노예 신분으로 전락한 상태였음을 돌아보면 세금을 피해 탈출한 난민들의 이야기로 볼 수 있다.

로마를 통일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서기 313년 기독교를 공인한 배경에는 재정난이 있었다. 당시 로마제국은 재정 악화로 국가 통치마저 어려울 지경이었다. 황제는 기독교에 수익의 10분의1을 내는 ‘십일조’의 전통이 있음을 눈여겨보고 기독교를 받아들여 세제 개혁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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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역사는 돈이다’는 1077년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가 자신을 파문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에게 용서를 구한 ‘카노사의 굴욕’ 등 역사적 사건 56가지를 돈의 관점으로 분석한다. 퍼블릭 도메인
신간 ‘역사는 돈이다’는 1077년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4세가 자신을 파문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에게 용서를 구한 ‘카노사의 굴욕’ 등 역사적 사건 56가지를 돈의 관점으로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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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이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사 여러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카노사의 굴욕’, ‘아비뇽 유수’ 등 황제와 교황의 갈등, 환전상에서 유래한 ‘은행’의 어원, ‘성전’(聖戰)을 내세웠지만 ‘성전’(聖錢)을 위해 변질한 십자군 전쟁 등에서 공통점을 찾아낸다. 정치, 민족, 종교, 사상 등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진짜 원인은 바로 ‘돈’이었다는 것이다.

화약 무기와 용병 시스템으로 근세 세계를 제패한 서유럽의 국가들, 신대륙 발견으로 대항해시대를 연 벤처사업가 콜럼버스, 후추와 황금을 위해 세계를 누빈 포르투갈의 부흥과 동인도 항로 개척, 무적함대 에스파냐의 쇠퇴, 뉴욕까지 소유했던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활약에 대한 분석도 흥미진진하다. 이어 선진 기술과 자본으로 산업혁명을 이끈 대영제국이 자유무역 시대를 꽃피우며 근대에 전성기를 맞는 과정과 이에 맞서 미국이 현대에 세계 패권을 잡기까지를 두루 살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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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관점에 맞는 사건들을 주로 선별한 탓에 역사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긴 부족하다. 사건들끼리의 인과관계 역시 미흡하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기획재정부에서 일한 저자가 쓴 터라 경제 관점만 강조해 역사적 시각이 한쪽으로 치우치는 측면도 있다.

그런데도 부에 대한 개인·가문·국가의 갈망이 인류를 움직였다는 주장에 반대하기는 어렵다. 책의 부제대로 ‘명분’과 ‘위선’을 걷어 내면 포장된 역사를 좀더 신랄하게 바라볼 수 있겠다. 예컨대 노예해방이라는 성과를 남긴 미국의 남북전쟁을 따져 보자. 당시 정말로 흑인 노예들의 인권에 관심을 뒀던 위정자는 몇이나 됐을까.

책의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읽다 보면 돈이 인류에 미친 영향의 범위가 우리 생각을 훨씬 넘는다는 것 하나만은 인정할 수밖에 없겠다.
김기중 기자
2024-06-14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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