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가자서 ‘늑대의 아이들’ 되살아나다

우크라·가자서 ‘늑대의 아이들’ 되살아나다

오경진 기자
오경진 기자
입력 2023-12-10 23:42
수정 2023-12-10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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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슐레피카스 ‘늑대의 그림자 속에서’ 한국어판 출간

제2차 세계대전 ‘전쟁고아’ 취재
역사 속에 잊힌 비극 생생히 묘사
러·우크라, 이·하마스 전쟁에 ‘울림’
“우리 서로가 평화 위해 노력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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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주한독일문화원에서 ‘늑대의 그림자 속에서’ 한국어판 출간 간담회를 연 리투아니아 국민 작가 알비다스 슐레피카스는 “한국은 경제·문화적으로 아주 강해서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다른 나라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며 “‘오징어게임’과 ‘기생충’을 재밌게 봤고 김기덕 감독의 영화도 유명하다”고 말했다. 양철북 제공
지난 6일 주한독일문화원에서 ‘늑대의 그림자 속에서’ 한국어판 출간 간담회를 연 리투아니아 국민 작가 알비다스 슐레피카스는 “한국은 경제·문화적으로 아주 강해서 리투아니아를 비롯한 다른 나라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며 “‘오징어게임’과 ‘기생충’을 재밌게 봤고 김기덕 감독의 영화도 유명하다”고 말했다.
양철북 제공
“원고를 처음 읽은 밤, 소설의 장면들이 꿈에 나타나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비몽사몽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한국어판 제안서를 넣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있었던 잊혀 가는 비극적인 이야기를 우리가 알았으면 했다. 기억은 힘이 세니까. 그리고 기억은 다짐이니까.”

리투아니아에서 국민 작가로 불리는 알비다스 슐레피카스의 ‘늑대의 그림자 속에서’(사진)를 한국어로 펴낸 출판사 양철북의 조재은 대표가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 일부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어느덧 1년 10개월째, 얼마 전부터는 이스라엘과 하마스도 양보 없는 싸움을 이어 가고 있다. 전쟁이라는 단어가 익숙해지고 있는 요즘 리투아니아의 역사소설이 우리에게 주는 울림은 적지 않다.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지난 6~7일 방한한 슐레피카스는 다시금 전쟁 상태에 돌입한 인류를 향해 “과거의 실수에서 배우는 것이 하나도 없다”며 비판의 날을 세우면서도 “개인이 바꿀 수 있는 게 없더라도 우리 서로가 평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설은 리투아니아에서도 점점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져 가는 ‘늑대의 아이들’ 이야기를 다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4년 소련군이 리투아니아와 폴란드의 국경 지역인 동프로이센을 점령했는데, 당시 독일인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면서 1만명에 이르는 고아가 생겨났다. 국경을 넘나들며 먹을거리를 구걸하던 이 늑대의 아이들 실화를 작가가 15년에 걸쳐 꼼꼼히 취재해 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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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리투아니아어 원제는 ‘내 이름은 마리톄’다. “독일인은 어른이고 아이고 다 죽이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소련군에게서 살아남기 위해 독일인 소녀 레나타가 ‘마리톄’라는 리투아니아식 이름으로 살면서 겪었던 일들이 시적인 문장과 함께 암울하고도 위태롭게 펼쳐진다.

슐레피카스는 “수차례 사실을 확인했고 복수의 증인이 없다면 쓰는 걸 자제할 정도로 확실한 사건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라면서도 “이 책은 문학인 만큼 제가 과거에 겪었던 배고픔 등의 경험과 감정도 충실히 활용했다”고 말했다. 영국 ‘더타임스’는 2019년 이 책을 그해 최고의 역사소설로 꼽으며 “역사 속에서 잊힌 비극을 흔들림 없이 묘사하는 이 소설을 잊을 수가 없다”고 평했다.

조 대표는 “늑대의 아이들을 기억하는 것이 비참한 시간을 살아 낸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고 연대라고 생각했다”며 “우크라이나 전쟁, 팔레스타인에서 일어나는 전쟁이 지금 내가 겪는 일이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나를 질책하는 마음으로 책을 펴냈다”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한국도 이데올로기 차이로 가족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눴던 역사가 있다”며 “이런 슬픔을 나누는 것으로도 친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덧붙였다.
2023-12-11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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