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계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작품세계는

타계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작품세계는

입력 2014-04-18 00:00
수정 2014-04-1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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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환상 넘나드는 ‘마술적 사실주의’ 창시자

17일(현지시간)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외곽의 코요아칸에 있는 자택에서 87세를 일기로 타계한 콜롬비아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명으로 존경받아왔다.

’백년 동안의 고독’(1967), ‘족장(族長)의 가을’(1975), ‘콜레라시대의 사랑’(1985) 등을 남긴 그를 거론하지 않고서는 지금의 현대소설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마술적 사실주의’의 창시자로서 그가 현대 문학에 끼친 영향은 지대했다.

마르케스는 1927년 3월 6일 콜롬비아 북부의 작은 해안 마을 아라카타카에서 태어났다. 아라카타카는 바나나 농장을 독점하기 위해 미국의 유나이티드 프루트 컴퍼니가 진출했던 곳으로, 콜롬비아 역사상 가장 비극적 사건이었던 바나나 농장의 노동자 학살이 일어났던 마을이다.

그는 어린 시절 사업 때문에 고향을 떠나야 했던 부모님과 떨어져 8살 때까지 외할머니를 비롯해 외가 친척들과 함께 이곳에서 살았다. 이들에게서 들은 환상적인 이야기들은 그의 문학적 자양분이 됐다.

1950년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보고타국립대 법학과를 중퇴한 그는 바랑키야 지역의 신문기자로 일하던 중 외갓집을 팔러 가자는 어머니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곳을 다시 찾았다가 노동자 학살 사건 이후 완전히 변해버린 고향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곳에는 마르케스의 기억 속에 있던 “인디오들이 인생을 즐기기 위해 코카인 열매를 씹었던” 마을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희미하게 흩날리는 뜨거운 먼지를 뒤집어쓴” 황량한 거리뿐이었다.

마르케스는 고향 마을을 둘러보며 점차 과거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외할아버지가 들려준 전쟁터에서의 모험담과 콜롬비아의 역사, 외할머니와 집안 여인들이 들려준 온갖 신기하고 기괴한 이야기 등을 떠올렸다.

부엔디아 가문의 역사를 통해 중남미 역사를 그려낸 그의 대표작 ‘백년 동안의 고독’은 이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콜롬비아 내전인 천일전쟁에 참여했던 퇴역군인인 외할아버지는 이 소설에서 부엔디아 장군의 모델이 됐고, 소설의 무대인 ‘마콘도’라는 가상의 마을 이름은 외가에서 기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바나나 농장 이름에서 따온 것이었다.

전신기사였던 아버지와 강인하면서 유머러스한 어머니의 연애담은 한 여자를 좋아했던 남자의 사랑이 결실을 보게 되는 과정을 그린 ‘콜레라시대의 사랑’으로 재탄생했다.

마르케스는 자서전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에서 “나에게 영감을 주었던 가장 좋은 출처는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내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내 앞에서 나눈 대화들”이라고 회고했다.

작가의 길을 가기로 한 마르케스는 문학 청년들과 어울려 윌리엄 포크너, 버지니아 울프, 프란츠 카프카, 허먼 멜빌 등의 작품에 대해 토론하고 밤마다 술과 여자에 빠지는 청춘의 열병을 앓는다.

그러나 첫 소설 ‘낙엽’이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은 뒤 작가로서 좌절에 빠졌던 그는 기자로서 먼저 두각을 드러냈다. 1955년 발생한 해군 구축함 침몰사건에 대해 끈질기게 의혹을 제기하는 등 정부 비판적인 기사를 쏟아내 주목받았다.

당시 콜롬비아의 정치상황은 자유당과 보수당이 극심하게 대립하며 자유당 지도자 암살사건 등 흉흉한 사건이 끊이지 않던 불안한 시기였는데, 마르케스의 신변 위협을 우려한 신문사에서는 그를 유럽 특파원으로 발령했다.

그가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신문사는 폐간됐고 이후 그는 반평생 동안 유럽과 멕시코를 떠돌며 살았다.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신변의 위험을 느껴 귀국하지 못했다.

기자로서의 경험은 그의 어린 시절의 추억과 뒤얽혀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원시 토착신화를 결합한 ‘마술적 사실주의’란 특이한 장르를 낳았다.

’가보’(Gabo)라는 애칭으로도 통했던 그는 생전에 장편소설 6권, 중편소설 4권, 단편소설집 6권, 논픽션 7권 등을 남겼다. 그의 책들은 남미뿐만 아니라 미국 등 전 세계에서 베스트셀러에 올라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1967년 발표한 ‘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3년 뒤 내놓은 ‘콜레라시대의 사랑’ 역시 세계 35개국 언어로 번역돼 5천만 부가 팔려나간 ‘백년 동안의 고독’에 못지않은 커다란 성공을 거뒀다. 이 작품은 2007년 하비에르 바르뎀이 주연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마르케스는 역사의 관찰자로서 우리 앞에 시대를 넘나드는 사랑 이야기를 펼쳐보였다. 그 속에 그가 마법처럼 부린 환상의 세계는 무한한 진실로 통하는 문이었다. 그의 책은 앞으로도 세대를 뛰어넘어 읽힐 것이다. 그가 ‘백년 동안의 고독’에서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처럼 끝은 단지 시작을 의미할 뿐이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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