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양심 펜도 꺾이지 않는다

日 양심 펜도 꺾이지 않는다

입력 2015-01-09 23:54
수정 2015-01-10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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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히 前기자 우에무라 “1991년 첫 위안부 보도 날조 아냐… 부당한 공격에 불복” 소송

 “나는 날조 기자가 아니다. 부당한 공격에 굴복하지 않는다.”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최초로 공개한 고(故)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을 특종 보도한 우에무라 다카시(56) 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자신의 기사를 ‘위안부 날조’로 매도한 주간지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9일 도쿄재판소에 제기했다. 그는 이날 소송 제기 후 도쿄 주일외국특파원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나의 인권, 내 가족의 인권, 친구들의 인권, 근무처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처음으로 보도한 우에무라 다카시(56) 전 아사히 신문 기자가 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주일 외국 특파원단 기자회견에서 당시 신문의 사본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처음으로 보도한 우에무라 다카시(56) 전 아사히 신문 기자가 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주일 외국 특파원단 기자회견에서 당시 신문의 사본을 들어 보이고 있다.
 그가 제기한 소송의 피고는 지난해 2월 1991년 당시의 기사를 날조라며 비판한 일본 주간지 슈칸분슌의 발행사인 문예춘추사와 주간지 기사에 코멘트를 제공한 니시오카 쓰토무 도쿄기독교대 교수다. 우에무라 전 기자는 그를 지원하는 170여명의 변호인단과 함께 “의도적으로 사실을 날조했다”고 자신을 비판한 니시오카 교수의 논문을 인터넷에서 삭제 사죄 광고 게재 손해배상액 1650만엔(약 1억 5000만원) 등을 요구했다.

 우에무라 전 기자는 “당시 내 기사에서 ‘증언 여성의 얘기에 따르면 중국 동북부에서 태어나 17살에 속아서 위안부가 됐다’고 썼지만 니시오카 교수는 슈칸분슌 기사에서 이를 언급하지 않고 ‘강제연행이 있었던 것처럼 기사를 썼으며 위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면서 “슈칸분슌에서 나를 ‘날조 기자’로 만들어 지난해 근무하던 고베의 대학과 지금 근무하는 홋카이도 호쿠세이가쿠인 대학에 협박 전화가 쇄도했고 딸의 사진이 인터넷에 공개되는 등 가족도 협박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슈칸분슌의 기사와 니시오카 교수의 언설이 이같은 일을 초래했다고 생각한다”면서 소송 제기의 이유를 밝혔다.

 우에무라 전 기자는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양순임 회장의 사위라는 이유 등으로 위안부 기사를 날조한 매국노 기자라는 비난을 받았고, 지난해 8월 아사히신문이 위안부에서 조선 여성을 강제연행했다고 증언한 요시다 세이지(사망) 관련 기사를 일부 취소하면서 더 많은 우익의 협박에 시달려왔다. 이 때문에 지난해 초에는 고베의 한 여자대학 교수로 내정됐다가 취소됐고, 비상근 간사로 재직 중인 호쿠세이가쿠인대학에도 협박문이 잇따라 우송돼 학교 측이 지난해 10월 재고용 불가 방침을 밝혔다. 그러나 우에무라 전 기자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지난해 말 당초 결정을 뒤엎고 재고용을 결정했다.

 우에무라 전 기자는 “그제(7일) 일어난 파리 신문사 테러를 보며 같은 기자로서 이런 폭력에 굴복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글·사진 도쿄 김민희 특파원 haru@seoul.co.kr
2015-01-1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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