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지킬 것” 해외 도피 거절한 ‘코미디언 대통령’ 젤렌스키 재평가

“조국 지킬 것” 해외 도피 거절한 ‘코미디언 대통령’ 젤렌스키 재평가

이정수 기자
이정수 기자
입력 2022-02-26 21:27
수정 2022-02-26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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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침공에도 키예프 남아 저항 의지 다져
페이스북에 ‘영상 인증’… 도피설·항복설 일축
WP “젤렌스키, 미국의 도피 지원 제안 거절해”
탈레반 피해 도주한 아프간 대통령 등과 대조

‘정치 초보’ 부정평가서 ‘항전 구심점’ 재평가
연예계 진출 전 명문대 법학 전공 이력 주목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운데)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의 전투 진지에서 군인들과 만나고 있다. 이날로부터 일주일 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명령으로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됐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제공 AP 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운데)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 17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부 도네츠크주의 전투 진지에서 군인들과 만나고 있다. 이날로부터 일주일 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명령으로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됐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제공 AP 연합뉴스
“나는 아직 여기에 있다. 우리는 무기를 내려놓지 않을 것이며 조국을 지킬 것이다.”

25일(현지시간) 늦은 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이 우크라이나 국내외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수도 키예프가 러시아군에 함락될 위기에도 끝까지 수도를 지키며 항전 의지를 다지는 모습에 외신의 평가도 180도 달라지는 분위기다.

지난해 10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주변에 10만명에 이르는 병력을 배치하며 위기가 본격화한 때부터 지난 24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명령에 러시아군의 대대적인 침공이 시작된 최근까지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외신 평가는 ‘무능력한’ 지도자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운데)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에서 “나는 아직 여기(키예프)에 있다”며 해외도피설을 부인하는 한편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항전 의지를 다지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운데)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5일(현지시간)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영상에서 “나는 아직 여기(키예프)에 있다”며 해외도피설을 부인하는 한편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항전 의지를 다지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젤렌스키 대통령이 23일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 친러 반군이 러시아에 군사적 지원을 요청한 직후 한 긴급 연설에서 러시아어로 “전쟁 가능성은 당신들(러시아 국민)에게 달렸다. 전쟁을 지지하지 말아달라”고 한 것에 대해 AFP통신 등 외신들은 “매우 감정적인 호소”였다고 평가절하했다.

러시아의 침공을 초래한 우크라이나 사태의 원인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에만 목을 매며 러시아의 심기를 건드린 그의 균형 잡지 못한 외교술에 돌리는 분석도 많았다.

그에게 늘 따라붙는 ‘코미디언 출신’ 대통령이란 수식어 역시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치 경험과 능력 부재를 강조하는 장치로 활용된 게 사실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오전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키예프에 남아 있다는 인증 영상을 올리면서 “(해외도피설 등) 가짜 뉴스에 속지 말라”고 당부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6일(현지시간) 오전에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키예프에 남아 있다는 인증 영상을 올리면서 “(해외도피설 등) 가짜 뉴스에 속지 말라”고 당부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페이스북 캡처
그러나 전쟁 발발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의 남다른 행보에 이 같은 평가는 잦아드는 분위기다. 워싱턴포스트(WP)는 이날 미군이 러시아군에 체포당하거나 살해될 위협에 처한 젤렌스키 대통령의 피신 방안을 준비하고 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를 거절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의 이번 침공 목표 중 하나는 우크라이나 정부 수뇌부를 몰아내고 친러 성향 인사로 구성한 꼭두각시 정부를 세우는 것으로 알려졌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제거하고 교체하는 게 (러시아의) 목표라는 점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메시지와 수사를 본다”라고 말했다.

러시아군이 젤렌스키 대통령을 최우선 공격 목표로 삼고 있는 가운데 그는 아직 키예프에 남아 있다는 ‘인증 영상’을 올리면서 해외 도피설 혹은 항복설을 일축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키예프의 대통령궁을 배경으로 찍은 영상에서 “밤사이 무기를 버리고 탈출했다는 등 가짜 뉴스가 엄청나게 퍼졌다”라며 “나는 여기에 있다. 이것이 현 상황”이라고 전했다.

지난 2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운데)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안제이 두다(왼쪽) 폴란드 대통령, 기타나스 나우세다(오른쪽) 리투아니아 대통령과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 참석해 악수하고 있다. 이날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의 친러 반군 공화국을 독립국으로 승인하고 이 지역에 러시아군 진입을 명령한 다음 날이었다. 키예프 로이터 연합뉴스
지난 23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운데)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안제이 두다(왼쪽) 폴란드 대통령, 기타나스 나우세다(오른쪽) 리투아니아 대통령과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에 참석해 악수하고 있다. 이날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돈바스 지역의 친러 반군 공화국을 독립국으로 승인하고 이 지역에 러시아군 진입을 명령한 다음 날이었다. 키예프 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군의 칼끝이 턱밑까지 온 상황에서도 그에게 맡겨진 자리를 떠나지 않는 모습은 비슷한 위기 상황에서의 여타 지도자들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지난해 8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재점령하던 당시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던 아슈라프 가니는 가족과 함께 아랍에미리트로 도주한 것이 대표적인 반례다.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와 함께 코미디언으로 진로를 정하기 전 이력도 주목받고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직장 때문에 4년간 몽골에서 보낸 그는 우크라이나 최고 명문대 중 하나인 키예프국립경제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부터 코미디에 관심이 많아 진로를 연예계로 잡았지만 경제학 박사 아버지와 공학자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으며 자란 수재였다. 시사 풍자 드라마 ‘국민의 종’에서 대통령 역할로 큰 인기를 끈 것이 그의 당선 원인 전부는 아니라는 평가가 따르는 이유다.

다만 대통령 당선 후 국정 운영의 주요 보직에 시나리오 작가와 PD, 영화제작사 대표 등 전문성과는 거리가 먼 측근들을 채운 점은 여전히 비판의 도마에 오르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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