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의회 야누코비치 대통령 국제형사재판소 제소 추진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실각하고 기존 야권이 중심이 된 의회가 권력을 장악한 우크라이나에서 25일(현지시간) 새 대통령 선출을 위한 5월 조기 대선 선거전이 시작됐다.우크라이나의 새 집권 세력은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기 위한 절차에 착수했다.
러시아는 친서방을 표방한 우크라이나 새 집권 세력에 압박 공세를 강화하며 서방에 우크라 사태에 개입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이런 와중에 유럽연합(EU)은 키예프에 외교안보 고위대표를 파견해 정국 위기 해법을 논의하고 경제 지원 의사를 밝혔다.
옛 소련권 국가들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파장이 자국에까지 미칠 것을 우려해 바짝 긴장하고 있다.
◇ 우크라 조기 대선 선거운동 시작
우크라이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조기 대선 선거 운동이 시작됐다고 공식 발표했다.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몰아내고 권력을 장악한 의회는 앞서 5월25일을 조기 대선일로 선포한 바 있다.
대선 후보로는 야누코비치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를 이끌어온 기존 야권 지도자들이 대부분 거론되고 있다.
전 헤비급 권투 챔피언 출신으로 ‘개혁을 위한 우크라이나 민주동맹’(UDAR) 당수인 비탈리 클리치코는 오래전부터 대선 출마 의사를 밝힌 상태다. 최대 야당 ‘바티키프쉬나’(조국당) 대표 아르세니 야체뉵과 또다른 야당인 ‘스보보다’(자유당) 당수 올렉 탸그니복 등도 출마가 유력하다.
지난 22일 의회 결의로 출소한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의 출마설도 돌았으나 티모셴코 측은 그녀가 대선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야누코비치는 원하더라도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우크라이나 선거법은 조기 사퇴한 대통령의 대선 재출마를 금지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의회는 지난 22일 야누코비치가 대통령직을 스스로 포기했다면서 그의 퇴진을 결의했다.
◇ 의회, 야누코비치 국제형사재판소 제소 추진
우크라이나 의회는 이날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측근들을 헤이그 ICC에 제소하는 결의안 심의에 착수했다.
의원들은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전 정권의 고위 공직자들이 지난해 11월 30일부터 지난 2월22일까지 벌어진 우크라이나 야권의 반정부 시위 과정에서 시민들의 평화적 시위를 무력 진압해 대규모 인명 피해를 야기한 책임이 있다며 이들을 대량 학살 혐의로 국제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야누코비치 정권과 싸워온 주요 야당 ‘스보보다’(자유당) 당수 올렉 탸그니복은 이날 의회 회의에서 야누코비치 ICC 제소를 위한 서류들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의회는 또 이날 최근 유혈 사태에 책임이 있는 인사들의 목록을 발표하면서 국경 수비대에 이들의 출국을 허용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 러시아, 우크라 압박 공세 강화
친러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몰아내고 친서방 성향의 야권이 권력을 잡은 우크라이나에 대해 러시아가 영향력 유지를 위해 압박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러시아 하원 독립국가연합(CIS·옛 소련권 국가 모임) 문제 담당 위원회 위원장 레이니트 슬루츠키가 이끄는 의회 대표단이 이날 우크라이나 남부 크림반도를 방문했다.
의회 대표단은 크림 지방 정부 및 지역 의회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러시아 당국이 크림반도에 거주하는 러시아계 주민들을 대상으로 자국 여권을 간소화한 절차에 따라 발급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대표단은 또 크림 주민들의 투표나 지역 의회 결정으로 크림을 러시아에 병합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면 러시아는 이를 신속히 검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의원들의 이 같은 발언은 우크라이나가 정치 위기의 와중에 친러 성향의 동남부 지역과 친서방 성향의 중서부 지역이 충돌해 국가 분열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진 가운데 나와 주목된다. 향후 우크라 정국 추이에 따라 러시아가 크림반도 병합을 시도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우크라이나 중앙 권력이 크림반도의 분리·독립 시도를 저지하기 위해 군사 작전에 나서고 러시아가 이에 맞서 군대를 파견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경제 제재 차원에서 우크라이나산 식료품 수입을 잠정 중단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러’외무 “서방 우크라 사태 개입 말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우크라이나의 5월 조기대선은 시기상조라며 대선 계획은 지난 21일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야권 지도자들이 서명한 정국 위기 타개 협정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야누코비치 대통령과 야권이 협정을 통해 오는 9월까지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개헌을 실시하고 그 이후에 연말까지 조기 대선을 치르는 방안에 합의했었다며 “5월 조기 대선에 관한 의회 결정은 합의 파기”라고 비판했다.
라브로프는 이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에 개입할 생각이 없으며 서방국도 같은 태도를 취해주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그는 러시아가 지난해 말 약속했던 우크라이나에 대한 150억달러 차관 지원 문제와 관련, 향후 우크라이나 상황을 봐가며 추가 지원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하루 전 우크라이나에 약속한 차관 2차분 20억달러의 전달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 EU 대표 키예프 방문해 경제 지원 등 약속
캐서린 애슈턴 EU 외교안보 고위대표는 이날 키예프를 방문해 최근 출소한 티모셴코 전 총리 및 야권 지도자들과 과도 정부 구성문제, 우크라이나에 대한 서방의 경제 지원 문제 등을 논의했다.
애슈턴은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가 경제위기를 극복하도록 하기 위해 파트너들과 적극적으로 협의하고 있다”면서 “국제통화기금(IMF) 등과 장단기 차관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그러면서 EU는 우크라이나가 서둘러 과도정부를 구성하고 차관을 지원받기위한 경제 개혁안을 제출하길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애슈턴은 우크라이나가 영토적 단일성을 유지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점과 밀접하게 연결된 러시아와의 관계 유지도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 옛 소련권 국가들 긴장
우크라이나 정권 교체 사태에 충격을 받은 이웃 옛 소련 국가 벨라루스는 반정부 시위 사태에 대비해 관련 법률을 강화하는 등 긴장된 모습이다.
벨라루스 의회는 24일 반정부 시위 사태 등으로 인한 비상사태 선포시 진압에 나서는 경찰과 군인의 발포에 대해 형사 책임을 면제해 주는 ‘비상사태법’ 개정안의 검토에 본격 착수했다.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란 평을 받는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앞서 23일 혁명이 빵 문제를 해결해 주지못한다며 우크라이나 야권을 비판한 바 있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일부 러시아 극우 정치인들이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 카자흐를 포함한 옛 소련 국가들이 러시아와 재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데 주권 침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