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NSA, 35개국 정상 도청 파문… ‘성토장’된 EU 정상회의

美 NSA, 35개국 정상 도청 파문… ‘성토장’된 EU 정상회의

입력 2013-10-26 00:00
수정 2013-10-26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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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 가디언 “총 200개 전화번호 일상적 감시” 보도

미국 국가안보국(NSA)이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뿐 아니라 세계 35개국 지도자의 전화통화도 도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 정보기관이 테러 위협을 핑계로 사실상 우방 정상들까지 감시 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24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럽연합(EU) 정상회의에서는 문제 해결을 위한 성토가 쏟아졌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전 중앙정보국(CIA) 직원 에드워드 스노든의 기밀문서를 토대로 NSA가 미국 정부 관리들로부터 외국 지도자 35명을 포함해 모두 200개의 전화번호를 받아 일상적으로 감시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이 기밀문서는 조지 W 부시 2기 행정부 시절인 2006년 10월 작성된 것으로 NSA 소속 신호정보부(SID) 직원들에게 전달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건에는 “때때로 SID는 미국 관료들의 개인적인 연락망에 대한 접근권을 받으며, 여기에는 외국의 정치·군사 지도자의 직통전화, 팩스, 거주지, 휴대전화 번호가 포함된다”고 적혀 있다. 문건에는 번호 소유자가 구체적으로 적혀 있지 않았으나 이들이 즉각 NSA의 도청 대상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NSA와 백악관은 가디언 보도에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을 통해 “(NSA에 관한) 보도들이 분명히 미국과 몇몇 국가 간의 관계에 긴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며, 우리는 외교적인 채널을 통해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며 도청 사실을 우회적으로 시인했다.

EU 정상들은 유럽 지도자에 대한 잇따른 불법 감시 폭로에 분노를 표출했다.

헤르만 반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25일 프랑스와 독일이 연말까지 미국과 정보 관계에 대한 새로운 규칙들을 합의하기 위한 회담 개최를 요구했다고 밝혔다.

반롬푀이 상임의장은 EU 정상회담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EU 28개국 지도자들이 정상회의에서 미국과 정보기관 문제에 대한 양자 회담을 원하는 프랑스와 독일의 의도에 주목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프랑스와 독일은 미국에 첩보 활동 금지를 요구할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뒤 영국과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 4개국과는 첩보활동 금지에 합의했지만 다른 서방 국가들의 합의 요구는 외면해 왔다.

앞서 유럽의회 시민자유위원회는 지난 21일 EU 시민의 개인정보를 미국으로 전송하는 것을 제한하는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개정안은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미국의 인터넷 업체들이 EU 당국의 허가 없이 무단으로 사생활 정보를 유출시키면 최대 1억 유로(약 1452억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 골자다.

최재헌 기자 goseoul@seoul.co.kr

2013-10-26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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